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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경전을 외우고 있는 티베트 라마승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경전을 외우고 있는 티베트 라마승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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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까마귀가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북인도 맥간에서 머무는 내내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길가에서 라마승 한 명이 경전을 외우고 있다. 오늘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좀 더 깊숙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어렸을 때 그랬다. 저 산 너머에 뭐가 있을까. 저 계곡 아래에는 뭐가 살고 있을까, 낯선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면 뭐가 나올까, 냇가를 따라가면 어떤 강이 나올까.

인적이 없는 호젓한 산길, 오로지 울창한 숲과 짐승의 발자국, 새들의 노래 소리만이 존재하는 곳, 거기서 자연의 일부인 나를 만나고 그런 나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눈다. 온갖 시간과 사물과 물질문명에 정신을 빼앗겨 살아가는 나를 바로 본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 소유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려져 있는 나를 본다. 인적 없는 숲길은 그런 나로부터 벗어나는 두려움 없는 공간이다.

그런 나를 온전히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한 시간도 채 못 걸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맥간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면서 기력이 많이 회복 됐다 싶었는데 다친 무릎이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기름칠 하지 않은 기계처럼 무릎 관절이 삐걱거렸다.

산책길 주변에 쓰레기통이 놓여 있는데 거기서 여전히 원숭이와 까마귀들이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오거나 말거나 쓰레기통에 집중하고 있다. 저만치 떨어져 사진기 초점을 맞춰놓고 녀석들을 지켜본다. 나무 위에 앉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원숭이가 쓰레기 통으로 내려서면 까마귀들이 여지없이 달려든다. 원숭이는 결국 쪽수에 밀려 다시 나무 위로 물러서고 만다. 원숭이가 물러서면 까마귀들끼리 또다시 먹이 쟁탈전을 벌인다.

 쓰레기통을 앞에 놓고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원숭이와 까마귀
 쓰레기통을 앞에 놓고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원숭이와 까마귀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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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쟁탈전은 인간도 마찬가지, 대량살상 무기까지 만들어

동물들의 먹이 쟁탈전은 어디서건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히말라야 설산이 올려다 보이는 맥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쓰레기통처럼 썩은 냄새 풀풀 풍기는 먹잇감이 있는 곳에서는 더 많은 다툼이 벌어진다. 인간 세상 또한 다를 바 없다. 부패한 정부, 부패한 사회에서는 먹잇감 쟁탈전이 더욱더 극심해진다.

먹이 다툼에는 사람과 동물이 따로 없다. 가족끼리 먹잇감을 놓고 싸우기도 한다.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람은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먹잇감 쟁탈전이 치열하다. 동물은 먹이를 쌓아두는 일이 흔치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쪽에선 먹거리가 없어 굶주리고 또 한쪽에서는 먹고 또 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평생 먹고도 남을 먹잇감을 쌓아둔다. 그것도 부족해 좀 더 많은 먹잇감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더 대량살상 가능한 무기를 만들어 전쟁까지 일으킨다.

지구상에서 사람만큼 머리 좋고 지혜로운 동물이 없으며 또한 사람만큼 어리석은 동물이 없다. 사랑할 시간조차 짧은 한 생을 살면서 사람이라는 종족, 인류는 진화할수록 좀 더 많이 먹기 위해 대량학살이 가능한 무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구상에서 먹잇감을 위해 자신들의 종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런 어리석은 종족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람쥐는 가끔씩 도토리나 밤 같은 먹잇감을 땅 속에 파묻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장소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한다. 자신의 먹잇감만큼은 알토란 같이 챙기는 사람들은 확보해놓은 먹잇감을 잊어버리는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으로 더 많은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숲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람쥐의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사라진 도토리나 밤들이 봄이면 새싹을 틔워 나무가 되고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숲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을 위해 숲을 망가뜨리지만 동물들은 그 어리석음으로 숲을 살린다.

 비가 그치자 미얀마 스님이 숙소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있다.
 비가 그치자 미얀마 스님이 숙소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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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가 그치자 맥간에 잠깐 동안 무지개 떴다.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가 그치자 맥간에 잠깐 동안 무지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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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장신구가 아주 많은 배낭 여행자

산책에서 돌아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6월 하순, 우기가 닥쳐오면서 틈틈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장마철로 접어든 것은 아니다. 가뭄에 타들어가는 델리 근교의 논밭을 적시기에는 턱도 없다. 호랑이 장가 가듯 잠시 잠깐의 빗줄기가 그치고 금세 볕이 쨍쨍해진다. 맥간은 해발 1800에 가까운 고지대이지만 한낮의 기온은 무덥다.

비가 그치자 미얀마 스님이 숙소 베란다로 나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저만치 맥간 하늘에 무지개가 솟아올랐다.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바라고 있다가 뒤돌아설 무렵 한국의 젊은 여성이 헝크러진 머리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내 옆방에 거처를 잡은 안경 쓴 여성이다. 처음에는 나와 말 상대를 하지 않다가 아침저녁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면서 말문을 텄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경 쓴 여성은 한 달 전쯤에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왔다고 한다. 아래층에 기거하고 있는 사자머리의 한국 여성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

사자머리의 여성은 잠시 잠깐의 정전에 씩씩거리며 베란다로 올라선다. 강원도 억양의 사자머리 여성은 온갖 장식품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다. 그녀는 종종 여러 개의 실 통을 들고 베란다 의자에 걸터앉아 손목에 두르는 오색실 장식물을 꼰다. 여행길에서 그 장식물을 여행객들에게 팔아 여비에 보탠다고 한다.

안경 쓴 여성과 죽이 잘 맞은 그녀는 밤늦게까지 뭘 하고 다니는지 부스스한 머리채로 아침 열시나 열한시쯤에 일어나 베란다로 올라온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오색실 장식물을 꼬거나 샤워장을 오가며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한다. 빨래는 거의 매일 한다. 배낭 여행자가 무슨 옷이 그리 많은지 매일 색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빨래를 한다.

그녀의 커다란 배낭은 내 것보다 두 배 가까운 길쭉한 배낭과 더불어 작은 배낭이 하나 더 있다. 배낭의 내용물들 중에 반쯤은 옷과 온갖 장신구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외국, 특히 물가가 저렴한 인도나 동남아로 돌아다닌다고 하니 한 살림 장만해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녀는 안경 쓴 여성과 마주 앉아 오색실 장식물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가며 내가 옆에 앉아 있거나 말거나 여행길에서 만난 남자들 얘기를 하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밥을 먹으러 나간다. 다시 돌아와 음악을 듣거나 손전화기에 집중하다가 수다를 떤다. 다시 저녁 무렵에 나갔다가 외박을 하거나 늦은 밤에 돌아온다.

여행길에서 직장을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찾아 인도로 여행 온 젊은 청춘들을 보면서 종종 한 편의 영화를 떠올리곤 했다. 인도 여행길에서 운명처럼 스쳐간 남자를 잊지 못하고 찾아 나서는 영화, '김종욱 찾기'와 줄리아 로버츠가 열연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2010년)라는 영화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저널리스트인 서른 한 살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안정적인 직장에 괜찮은 남편까지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찾고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가슴 설레는 사랑은 물론이고 기도하고 진실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청춘들이 얼마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즐기는 젊은 청춘들은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처절하도록 들여다보며 기도하는 청춘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숙소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향을 피우는 티베트 여성
 숙소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향을 피우는 티베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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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을 피우고 나서 기도하는 티베트 여성. 내가 아침마다 명상을 하듯 기도는 티베트 사람들의 일상이다.
 향을 피우고 나서 기도하는 티베트 여성. 내가 아침마다 명상을 하듯 기도는 티베트 사람들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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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서양 여성, 미소와 눈빛에 닿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숙소 건너편 옥상에서 백발의 티베트 할머니가 향을 피우고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내가 아침마다 명상을 하듯 기도는 티베트 사람들의 일상이다. 부처님을 향한 티베트 할머니의 마음을 가늠해 가며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맥간에서 머물며 종종 찾아 갔던 식당, 피스 카페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썹, 맑은 눈빛의 온화한 외모, 부드러운 미소에서 중후함마저 느껴져 오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서양 여성이었다. 사실 그녀를 만나 말 한마디 나눠 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내가 앉아 있던 식당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마주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녀와 어쩌다 눈빛이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미소와 눈빛에 닿기라도 하면 내 가슴은 한 없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과 마주하고도 차마 말 한마디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짧은 영어 한마디가 까마득하기만 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아무런 대화도 없이 단 하루만이라도 그녀와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려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은 고사하고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공연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야채 우동을 먹으면서 딸꾹질을 했고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나 역시 공연히 부끄러워 붉어진 얼굴로 웃음을 보냈다. 그렇게 그녀의 어떤 모습이든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오십대 중반의 사내, 어쩌란 말인가.

50대 중반의 내 가슴 속에도 이성에 대한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살아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여행길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내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바라보는 명상, 기도만 했을 뿐이었다. 먹는 것을 억제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나름 자비심으로 아낌없이 사랑했지만 낯선 여성을 만나 이성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야채 우동을 다 먹고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커피를 시켜놓고 마냥 앉아 있다. 이따금씩 눈길 마주치다가 부끄러워 서로 싱겁게 웃어줄 뿐 여전히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나 역시 평소 마시지 않던 커피까지 시켰다.

커피 맛이 뭔 맛인지 모르겠다. 단지 뜨겁기만 하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나서 크게 기침을 한다. 그리고 나와 눈길이 마주치고 서로 웃는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기침과 함께 코를 풀어 제킨다. 그 소탈한 모습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나도 그녀의 무안을 덜어주기 위해 덩달아 크게 코를 푼다. 내 의중을 알아차린 그녀가 함박 웃는다.

그녀가 가지고 갈 음식이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가 내내 앉아있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숙소에서 이불도 채 걷어치우지 않고 여전히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한 남자를 위한 식사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 속에서 그녀가 일어서는 순간 찬바람이 불어온다. 아니 뜨거운 바람이었던가. 한 젊은 대학생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주요섭의 단편소설 '아네모네 마담'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저 음식은 그녀 자신을 위한 저녁식사일 것이라고 그녀의 남자를 애써 외면해 본다. 그녀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그 환한 미소를 던져놓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가자 나는 무작정 그녀의 뒤를 따라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이성적인 두 다리는 식당 테이블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3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속에서 영화 '김종욱 찾기'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한꺼번에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온 그녀와의 만남은 단지 한 여름밤의 꿈이었던 것이다. 잠시 잠깐 스쳐가는 내 한 생이 그렇듯이. 하지만 그날 50대 중반의 나는 짧은 시간 속에서 이 생에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 없는 가슴 설레는 청춘의 꿈을 꾸고 있었다. 순간순간 기도하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한 생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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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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