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취임식날, 진돗개 선물에 활짝 웃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날, 진돗개 선물에 활짝 웃는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해 청와대를 떠나게 되면서 청와대에서 키워지던 진돗개 9마리가 덜컥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당시 '희망이'와 '새롬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한 쌍을 선물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으로 종로구에 반려견 동물등록이 되어 있다. 암컷 새롬이가 지난 1월 두 번째 출산을 하며 새끼 7마리가 태어나 현재 청와대의 진돗개는 총 9마리가 되었다. 첫 번째 출산 당시 태어난 새끼들은 청와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이름을 공모하였으며 모두 일반인에게 분양되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며 이 9마리 진돗개들을 삼성동 사저로 데려가지 않았다. 상황상 당장 반려견을 챙길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으나 이후에도 진돗개들을 모두 데려가 돌보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이 개들은 일반인들에게 분양되거나 보호시설에 맡겨질 예정으로 보인다.

이에 동물보호단체 '케어'에서는 개들을 새로운 주인에게 입양 추진하고 싶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원래 주인이 챙겨가지 않으니 단체에서라도 남은 강아지들이 한순간 유기 신세가 되지 않도록 챙기겠다는 뜻이다.

반려동물의 운명은 결국 주인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반려견 입양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그 생명이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갈 수 있는지가 한 사람의 손에 달리기 때문에. 한 나라의 원수였던 전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 하에 있던 생명들이 주인 잃고 보호소 신세가 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불어 박 전 대통령의 반려동물로 정식 등록한 희망이, 새롬이를 결국 유기한다면 이는 동물보호법 위반에도 해당된다.

함께 이사 가지 않는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은 5마리의 개는 입양되었으나, 여전히 청와대에는 9마리의 진돗개가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은 5마리의 개는 입양되었으나, 여전히 청와대에는 9마리의 진돗개가 남아있다.
ⓒ 박근혜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굳이 박 전 대통령이 전국민 앞에서 대표적인 예를 실행해줄 것도 없이, 이사 가면서 키우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일은 이미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이사 가는 곳이 반려동물 금지라서, 아파트라서, 너무 멀어서, 심지어 '답답한 집안에 갇혀 사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라'라는 정신승리형도 있다.

예전에는 취재 중 알게 된 한 캣맘이 어느 날 나타난 길고양이를 돌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그 고양이를 보러 와 이름을 부르더란다. 알고 보니 고양이의 주인이었다.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갔는데, 잘 지내고 있는지 보러 왔고 캣맘이 밥을 주는 걸 확인하곤 안심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키우던 동물을 버리고 가는 데에 죄책감마저 없는 그 뒷모습에 대고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고양이는 결국 캣맘이 구조해 키우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함께 이사 가지 못하고 길에 버려진 동물들은 대개 길에서 떠돌다 금방 죽거나, 강아지들의 경우 신고당해 보호소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의 개들이 길거리에 유기되지는 않았겠지만, 대형견일수록 재입양이 어렵고 보호소에서 공고기한이 지나면 결국 안락사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진돗개 같은 대형견들은 입양되더라도 자칫 도축업자에게 흘러가 개고기로 도축되는 경우도 흔하다.

'청와대'라는, 금수저 출신이라 한들 갈 곳 없는 개들은 결국 보호소행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이 대지면적 484㎡, 건물면적 317.35㎡가 된다는 데도 불구하고.

동물복지의 꽃길이 오기를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성명문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성명문
ⓒ 동물보호단체 케어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지난번 큰 경주 지진 이후 많은 반려인들이 위급 상황에 대해 걱정하여 '지진 시 반려동물 대비 지침'을 공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해에 대한 반려동물 대책이 거의 없어, 대부분은 일본 환경성에서 배포한 내용을 번역한 것이었다. 사람도 위급한 재해 상황에 반려동물 대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들이 내 책임이고 가족이기 때문이다.

늘 '나는 가족이 없다'고 말했던 박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충분히 아우르고 보살피지 못했다면, 적어도 취임하면서 가족으로 입양한 작은 생명들이나마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직접 손길 뻗어 키운 것은 아닐지라도 엄연히 박 전 대통령 책임의 동물들인데, 그저 임기 동안만 청와대에서 키우려던 것이라면 왜 두 번이나 번식까지 시켰는가.

케어에서는 입양 추진 의사를 밝히며 '제대로 된 동물보호정책 하나 펼치지 못했던 박근혜 정부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한 나라의 원수였던 이마저 취임하면서 입양한 강아지들을 청와대를 떠날 땐 두고 가는 세상이다. 이런 나라에서 동물유기를 금지하고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공허하기만 한 일이 아닐까. 퇴임 후의 길어지는 침묵이 여러모로 아쉽고, 어쩌면 사소할지라도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뒷모습이 영 씁쓸하다.

사람의 일에 영문도 모르고 주인을 잃은 진돗개들에게는 안타깝지만, 사실상 유기된 상황이라면 진돗개들이 더 늦기 전에 새 가족을 만나 행복해지길 바란다. 동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사회적 약자도 존중받는 세상이 되리라고 누군가 말했다. 더불어 작은 촛불이 모여 실제로 세상을 움직인 지금, 다음에 올(거라 믿어 마지않는) 꽃길에선 대한민국의 동물복지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한 단계 성숙해지리라 믿고 싶다.


태그:#진돗개, #박근혜, #청와대, #동물보호
댓글9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