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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동안 내 곁에는 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나는 아무에게나 목숨을 걸고 썼다고 말하고 다녔다. -178p, 작가의 말

소설과 시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처음엔 명확한 경계가 없었을 문학적 창작물은 오랜 시간 동안 각각의 특성을 강화하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서도 소설과 시는 대표적인 문학 장르로 각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소설의 경우엔 이야기가, 시는 형식과 내용에서 압축적인 멋과 감상을 살리는 게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특징이 뚜렷해질수록 형식은 정형화됐다. 상대적으로 형식이 자유로운 시에 비해 서사가 중심인 소설이 더욱 그랬다. 이야기나 문장을 통해 충분한 차이를 구현했으나 형식면에선 이렇다 할 개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던 시절, 몇몇 작가의 파격적 시도가 있기도 했으나 시간의 냉엄한 심판을 뚫고 살아남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홍학이 된 사나이 책 표지
▲ 홍학이 된 사나이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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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이 된 사나이>를 쓴 오한기는 소설과 시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발현하는 서른셋 젊은 작가다. 독특한 스타일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한국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2016년엔 김중혁, 김애란 등 걸출한 소설가를 배출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도 받았다.

신작 <홍학이 된 사나이>는 오한기의 첫 장편소설이다. 스스로를 홍학이라 믿는, 혹은 정말 사람 몸에 깃든 홍학이 겪는 일련의 일들이 중심된 이야기다.

외삼촌에게 물려받은 펜션에 살며 글을 쓰는 주인공은 스스로가 점차 홍학으로 변해간다고 인식하는 남성이다. 그가 사는 펜션 인근엔 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종종 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되거나 직원이 죽어나간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마을엔 노인이 운영하는 햄버거가게도 하나 있다. 노인은 종종 펜션을 찾아 원전반대운동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하곤 한다. 주인공은 이 노인이 홍학의 천적 물수리라고 확신한다. 주인공은 또 원전 경비로 일하던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소녀 DB와도 우연히 만난다. 그는 그녀를 펜션에 들이고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는 물수리로부터 그녀를 지켜내려 한다.

이와 별개로 주인공은 인근 동물원을 찾아 우리에 갇힌 암컷 홍학과 사랑에 빠지지만 창살을 넘어 그녀를 구출하지도 자신이 완전한 홍학이 되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 받는다.

소설은 무엇을 사실로 믿어야 할지 모를 초현실적 이야기와 시적 문장, 시각적으로 특징적인 문장의 배치 등 정형화된 형식을 파괴하는 시도들로 가득하다. 스스로를 홍학이라 생각하는 주인공과 자신이 암소가 되어간다고 믿는 DB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시종일관 쏟아내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인공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비현실적 사건들도 독자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이끌어간다.

DB는 둥지를 세탁소라고 한다.
DB는 둥지를 낙엽이라고 한다.
DB는 둥지를 앰뷸런스라고 한다.
DB는 둥지에 가고 싶다고 한다.

5월 22일

사랑을 하고 있죠?
DB가 묻는다.
사랑이 무엇인가?
내가 되묻는다.
코끼리가 달력을 보는 것.
DB가 말한다.
시력검사를 하는 할머니.
또 DB가 말한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죠?
DB가 묻는다.

-68, 69p

이 소설의 제일가는 미덕은 정형화된 독법으로 소설을 해석하려는 독자들의 시도를 수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소설은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서사의 지평을 탐색하고 나름의 성취를 이룩해내기까지 한다.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겐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귀한 경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물에서 건진 총과 피살된 경찰관이 말을 하고 동물원 홍학과 30대 남성이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범상한 독자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넘어선 곳에는 비현실과 현실이 절묘하게 얽혀 서로의 표면을 보듬는 매력적인 결말이 자리하고 있다. 오직 인내심 깊은 독자들만이 이토록 색다른 희열을 마주할 것이니 <홍학이 된 사나이>는 참으로 흔치 않은 작품이라 하겠다.

책엔 문학동네 소설에 통상적으로 실리는 문학평론가의 우호적 평론 대신 한 독자의 애정 어린 리뷰가 실렸다. 소설을 풀어내 소개하는 솜씨로 봐선 평범한 독자는 아닌 듯한데 글쓴이는 짧지 않은 글에서 '이 소설을 두 번째로 읽고는 곧 매혹이 된 까닭에 부득이 리뷰를 쓴다'고 고백한다. '써야지만 떨쳐질 것 같고 조금은 떨쳐내야 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단 한 명의 독자일지언정 타인을 매혹시켜 마침내는 열광적인 고백을 이끌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소설은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열광은 오직 리뷰를 쓴 독자 한 명에 한정된 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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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학이 된 사나이 / 문학동네 / 오한기 지음 / 2016. 11.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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