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색
클럽아이콘0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길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처받은 또 다른 국민들'에게 예의에서 벗어나 그들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자제해야 한다. 해서 가능하면 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판결했다. 현 대통령 박근혜가 더 이상 국가원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온당치 않다고. 그들이 그 근거로 확정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심플하고 문학적이다. 해서, 슬프고도 아름답다.

"지금까지 박근혜의 언행을 볼 때 앞으로도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무려 100일 가까운 시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 의해 결정된 이후, 이 땅은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져 서로를 혐오하고 조롱했다. 뿐이랴, 누군가는 "기각되면 (죽음을 전제로 하는) 혁명밖에 없다"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구는 "인용되면 한국의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극단적인 견해를 쏟아놓았다.

하지만, 그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정치인들의 '자가당착적 발언'이었을 뿐. 그들의 '오버액션'과 국민의 깊은 뜻은 크게 관계가 없었다. 우리는 지나온 역사의 체험을 통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국민의 뜻은 곧 천심(天心)이다. 어떤 정치인도 하늘과 국민의 뜻을 이길 수 없다.

오늘(2017년 3월 10일) 헌재의 판결은 이러한 국민의 뜻이라 할 '천심'을 간명하고도 심플하게 담아내고 있다. 보수적이라고 하면 누구도 거기에 앞서기 힘든 헌재가 '하늘을 거스를 수 있는 정치권력은 세상에 없다'는 전제(前提)를 말하고 있다. 놀랍고 기이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헌재의 판결문 중 가장 빛나는 것은 이 문장이다.

"지금까지 박근혜의 언행을 볼 때 앞으로도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오늘 오전 11시. 한 달 내내 일해 167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나부터, 그보다 더한 착취의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 모두가 '헌재의 판결'을 가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내 동생도, 내 친구들도, 나의 동창들도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는 이정미 헌재 재판관의 목소리. 처음 10여분간 우리는 고민했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언론사 탄압,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은 막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탄핵 인용의 결정적 근거는 될 수 없다"는 이 재판관의 설명은 슬픔과 동시에 환멸을 줬다.

그러나, 22분 동안 이어진 판결문 낭독의 마지막. 이정미의 이런 말은 '힘이 정의가 아닌 정의가 힘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온 이들에게 환호를 부르게 했다. 나를 포함한 가난하고 슬픈 생을 살아가는, 그러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꿈꿔온 이들의 안도를 부른 문장이기에 다시 여기 소환한다. 내 나이 47살. 판사의 문장에 감동해보기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박근혜의 언행을 볼 때 앞으로도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한 고비를 넘었다. 그렇다면, 이젠 무엇이 남았는가? 누구의 지지자였음을 떠나 냉혹하게 떠올려 볼 때다. 향후 전개될 '권력다툼의 이전투구'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심란하다. 박근혜를 징벌한다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신이 전라도라고 차별받는 나라에서, 당신이 여자라고 차별받는 나라에서, 당신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차별받는 나라에서? 당신이 서울에 소재한 주요대학 졸업자가 아니라고 차별받는 나라에서?

여기서 감히 말한다. 앞서 3번 언급한 '헌법 수호의 의지'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혹은, 잊어서는 안 될 금과옥조다. 모두가 알고 있는 '헌법'의 1조를 재차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이겼다. 그러나, 승리는 '패배를 잊지 않는 사람들'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