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지시하는 유도훈 감독 지난 1월 2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동부화재 프로미의 경기에서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작전 지시하는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 연합뉴스


전자랜드 제임스 켈리는 지난해 12월 20일 안양 KGC와 맞대결에서 발목에 부상을 당하며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팀을 떠나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리그 평균 23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해결사가 부족했던 전자랜드의 '에이스'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재활을 거치면 복귀는 당연했다.

그런데 켈리의 일시 대체 선수로 전자랜드에 합류한 아이반 아스카가 수비와 조직적인 농구에 잘 적응하면서, 유도훈 감독은 켈리의 완전 교체를 결정했다. 켈리는 당황스러웠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켈리는 한국을 떠났고, 최소한 다음 시즌에서야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랬던 켈리가 79일 만에 돌아왔다. 켈리는 여전히 '해결사'의 모습을 잃지 않았고, 팀을 승리로까지 이끌며 전자랜드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전자랜드가 지난 9일 오후 7시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6라운드 서울 SK와 경기에서 77-76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전자랜드는 원주 동부와 함께 공동 5위로 올라섰고, 최근 6경기 5승 1패의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반면 SK는 집중력에서 아쉬운 모습을 드러내며, 사실상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다.

제임스 켈리, 여전히 빛났던 공격과 아쉬운 수비

켈리는 1쿼터 1분 53초가 남은 상황에서 코트에 들어섰다. 그는 투입 후 첫 공격 상황에서 득점과 함께 상대의 반칙까지 얻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정확한 중거리 슛을 통해 팀 공격을 이끌었다. 자신보다 신장이 큰 제임스 싱글톤을 상대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포스트업에 이은 페이드 어웨이 슛과 활발한 움직임으로 손쉬운 골밑 득점을 만들어냈다.

특히 켈리의 존재감은 승부처였던 4쿼터 막판 절정에 달했다. 켈리는 경기 종료 31.2초를 남긴 74-74 동점 상황에서 자신을 수비하던 최부경을 상대로 득점과 함께 반칙까지 얻어냈다. 이후 자유투까지 깔끔하게 성공하면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고, 유도훈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날 켈리는 21분 36초를 뛰며 20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자랜드의 주득점원으로서 존재감을 뽐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해결사의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했다. 공격에서는 골밑에서 싸워주기보다 중거리슛 시도가 굉장히 많았다. 아직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탓인지 충분히 골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모습이 잦았고, SK 골밑의 뒷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으로 손쉬운 득점을 만들어낸 모습 외엔 골밑 공격을 볼 수 없었다.

192cm에 불과한 커스버트 빅터로는 골밑 플레이에 한계가 있으므로 켈리의 적극적인 골밑 돌파와 득점이 필요해 보인다. 만약 이날 켈리의 야투율이 좋지 못했다면, 전자랜드는 승리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수비도 개선이 필요하다. 켈리는 3쿼터 종료 6분 50초가 남은 상황에서 테리코 화이트에게 반칙을 범하며 너무 일찍 파울 트러블에 걸렸다. 체력적으로 완전치 않아서인지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데 힘겨워 보였고, 슛 페이크에도 쉽게 속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학 시절 센터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는 아니지만, 전자랜드 골밑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만큼, 수비에서 조금 더 집중력 있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유도훈 감독의 선택이 박수 받아야 하는 이유

KBL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퇴출한 외국인 선수를 그 시즌에 다시 불러들인 경우 말이다. 그만큼 유도훈 감독의 선택은 이례적이었다. 켈리를 다시 불러들일 경우,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도훈 감독은 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꼭 농구계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과'에는 집착하지만, 실패나 실수에 대한 '인정'에는 매우 인색하다. 그래서 더욱 유도훈 감독의 선택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지도자는 자신의 명예를 위한 직업이 아닌 자신을 믿고 따르는 다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듯했다.

켈리를 대신했던 아스카가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신장의 한계와 득점력이 너무 떨어졌다. 골밑에서 힘을 더해줄 수 있는 빅터가 있었지만, 그 역시 신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물론 최근 전자랜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최근 5경기에서 4승 1패로 좋은 흐름을 보였고, 6강 플레이오프 진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유도훈 감독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이상의 성적을 위해 켈리를 다시 불러들였다. 높이에 대한 아쉬움과 해결사의 부재, 외국인 선수의 저조한 득점력 등의 문제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켈리의 복귀 무대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분명했지만, 전자랜드가 원하는 모습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켈리와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유도훈 감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스포츠 세계에서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오직 팀을 위했던 이번 결정이 이전보다 더 좋아진 전자랜드를 볼 수 있게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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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훈 전자랜드 전자랜드 VS 서울 SK 제임스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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