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흔... 마흔... 이 낯설고 무게감 있는 나이가 날 찾아왔다. 무심코 방문을 열었는데 커다랗고 검은 실루엣을 마주한 것 같은,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나인.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나이에도 적용되는 듯한데 체감의 방향은 반대다. '남이면 고작 마흔, 내게는 무려 마흔!'. 이 나이의 또다른 이름 '불혹'이 무색하게 흔들리고 있는 나를 내가 인터뷰한다. - 필자 

마흔이다. 느낌은? 

'누구냐 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음……, 어제 진탕 술 먹고 오늘 새벽 화장실에 앉아 생각했는데. 처음 두 자릿수가 된 열 살 때도, 처음 법적 성인이 된 스무 살에도, 그리고 이번 만큼은 아니지만 뭔가 '와, 진짜 나도!' 했던 서른 살에도 나이에 대한 낯설음과 막연한 두려움…… 아님 당혹감 같은 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마흔은 느낌이 많이 달라. 비유하자면 평평했던 판이 기우는 듯한. 삶과 죽음에서 후자 쪽으로. 하지만 스스로 체감하기론 이제 막 삼십대가 된 듯도 해.

마흔의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예순 넘은 엄마도 젊다고 생각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남이 나이 먹는 거랑 내가 나이 먹는 게 다르다니까. 엄마도 요즘은 글쎄,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예전에 엄마가 마흔 살 되면서 "이제 머리 안 땋을 거야. 나이 들어서 뭐." 했던 게 떠올라. 그때 울엄마 하얀 저고리에 분홍 치마 한복 입고 머리 땋으면 무지 예뻤거든. 난 속으로 '어제까지도 해놓고. 변한 것도 없는데 왜 저러지?' 했지. 이후로 정말로 그 모습을 다시 못 봐서 꽤 서운했던 게 기억 나.

그리고 요즘은 가끔 방송 볼 때나 아님 밖에서 사람 만날 때, 그 사람 나이 알곤 당황할 때가 있어. 한참 나보다 위일 것 같았는데 동갑이거나 심지어 세네 살 어릴 때도 있거든. 그러니까 반대로 '나도 저렇게 아님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걸까? 그런데 그걸 나만 못 느끼는 걸까?' 자문하게 돼. 특히 여자들이 누가 봐도 자기보다 어린 상대한테 "언니" 할 때 있잖아. 그게 뭔 저의가 있어서보다 순전히 착각일 수 있단 생각도 들어.

또래들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는 건?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누구라도 한 명 볼라치면 서울까지 가야 하고. 귀향해 벌써 5년차인데 새 친구 하나 없는 것도 내 탓이지 싶어. 예전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하는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늙어 말동무 하나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해. 길가에 혼자 앉은 노인 분들이 미래의 나 같기도 하고. 여튼 다행히 동갑 싱글 친구가 몇 있긴 한데, 최근에 새롭게 안 사실이 그 중 하나가 오래 전부터 염색을 하고 있었다잖아.

최근에 나도 새로운 첫 경험을 했지?

그렇지. 했지. 그러니까 태어나 처음, 내 머리에서 자연산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거지. 뿌리부터 통째로 하얀. 처음 세상빛 보고, 처음 두 발로 걷고, 처음 말을 하고, 처음 반항하고, 처음 사랑하고……, 그렇게 처음 흰 머리도 났어. 누군가에게 처음 "할머니"라 불리는 순간도 전부터 상상한 적이 있는데, 요즘은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면서도 노인이 보호와 존중 받는 시대가 돼야 할텐데 하고 진지하게 바라. 내 문제기도 하니까. 실은 모두의 현실이지만.

첫 자연산 흰 머리카락
 첫 자연산 흰 머리카락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엄마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래. 요즘 엄마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돼. 같은 여자 사람으로. '엄마는 그때 어땠을까?'. '엄마 요즘 심정은 어떨까?' 하고. 부모들이 자식을 늘 아이처럼 여긴다는데, 나도 울엄마는 늘 젊고 현명하다 여겼어. 그런데 지금은 글쎄……. 근래 들어 나로선 이해도 용납도 안 되는 억지나 짜증을 부리실 때가 많아졌거든. 최근엔 서울 언니네나 바로 곁에 사는 내 집에 보내는 음식이 너무 많다고 했더니 "그래, 그럼 이제 아무것도 안 보낼게!" 이래서 또 대판 했지.

음식이 아니라 소통의 문제잖아. 내가 서울 살 때부터 차로 30분 거리 사는 지금까지 지겹도록 반복했어. 이젠 내가 정말 뭘 모르거나, 그냥 나쁜 자식 같기도 해. 무엇보다 동의할 수 없고 마음 아픈 건 엄마가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는 것. 일흔 가까운 나이에 번듯하게 자기 사업하고, 경제력도 있고, 비교적 건강하시고, 여지껏 너무 잘 살아왔는데 말이야. 난 누구한테든 진심으로 내 엄마 존경한다고 해. 그런데 본인은 아니래. 내가 평범하게 안 살아서 그럴까?

스스로 안 평범하다고 생각해? 이번엔 내 삶에 대해 얘기해보자. 

아니 난 지극히 평범해. 엄마 관점에서 아닌 것 같다는 거지. 너무 평범해서 일생에,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은 아예 못 할 것 같단 주제 파악……이라고까진 아직 말하고 싶지 않군. 여튼 그런 생각도 들고. 나는 서울에서 당시 중간쯤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글 쓰는 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훌륭한 생각으로 신생 잡지사에 들어갔다가 이후 줄창 망하는 회사만 다녔고, 인지도도 월급도 그 중 최고였지만 '가장 망해야 할 회사'를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접었지.

그리고 귀향했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자'는 당연하지만 실로 쉽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정답이라 믿는 목적을 갖고. 이후 빚을 내 임대한 내 집을 개방해 아주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고, 현재까지 소꿉장난 하듯 운영하고 있지. 어쩌다 돈이 좀 모이면 여행을 하고. 인간들 때문에 괴로운 동물도 돕고. 하지만 좀처럼 돈이 모이질 않아 요즘은 진지하게 보다 안정적인 수입원 창출을 고심 중야. 현실은 여전히 돈 안 되는, 지금 같은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점은? 

좋은 질문이야. 지금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나 쓰고 있는 날 위해 긍정이 필요한 때야.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건……, 그래도 나를 잃지 않고, 나름 소심껏 능력껏 남도 돕고 내 삶도 여기까지 꾸려온 거? 쓰고 보니 뭐 없다는 느낌도 드네.

가장 후회되거나 아쉬운 점은? 

역시 부모님께 좋은 자식이 못 되드린 점. 남들처럼 회사 계속 다니고 적당한 때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았음 지금보다 부모님 속은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난 매번 다른 걸 원했으니까. 아님 내 생각에 '틀렸다', '아니다' 싶은 언행 하실 때도 그저 받아넘기고 살갑게 대해드렸다면 서로에게 좋았겠지만 내 인내로는 여전히 안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예전에 사겼던 남자들한테 못 되게 군 거. 좋은 친구들한테 옹졸하게 군 거.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 

이것도 오늘 새벽 화장실에서 생각한 건데, 그냥 살던대로 계속 살 것 같아. 마흔이라서 바뀌는 건 내 심경과 외모 정도. 결국엔 나도 삶도 같으니까. 앞서 죽음 쪽으로 기운 듯한 느낌이라 했지만 가는 데 순서 없잖아. 하루하루 허락되는 삶을 지금처럼 감사하면서, 하지만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많이 부지런하고 긍정적으로. 계속 공부하고, 계속 시작하고. 그리고 시작한 일은 꼭 끝내기. 어떤 식으로든.

이루고 싶은 바람은? 

부모님과 화해하기. 지금으로선 전혀 자신 없지만. 그리고 무척 사랑한 고양이를 위한 그림책 만들기. 뭐든 좋아하는 일로(그림책이 대박이 나도 멋지겠지. 아님 매번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은 이런 글쓰기로라도) 돈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기. 같이든 따로든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기. 나도 한 여든이나 재미있게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장수한 뒤 편안하게 죽기. 사람 때문에 고통 받는 생명 없길. 좋은 남자 사람과 여생 함께 하기. 그밖에도 많다.

어김없이 마흔을 맞이할 이들에게? 

말해봤자. 하지만, 정말 빨리 온다는 거. 그러니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자만하거나 자신 없어 말고. 나도 남도(동물도 자연도 포함해서) 존중하고 아끼며 사는 날까지 잘 살자고.

마흔이 된 나
 마흔이 된 나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태그:#마흔, #불혹, #셀프인터뷰, #돌아보기 , #일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