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로써 지난 수개월의 촛불이 헛되지 않았음을 국민은 확인했다. 8대 0 만장일치. 대한민국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비로소 '승리의 추억'으로 남게 된 광장에서의 날들을 돌아보면 그곳엔 항상 '노래'가 있었다. 시대를 반영하고 위로한 노래가 함께했기에 시민들은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충격으로 광장에 모인 10월부터 10일 헌재가 대통령 탄핵안 인용 결정을 내리기까지 광장에서 촛불시민과 함께한 가수들을 돌아봤다.

촛불 무대에 적극적으로 올랐던 가수 이승환은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자마자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게재하며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인권부터 이은미까지, 묵직한 목소리들

 가수 전인권이 19일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에서, 전국으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석해 노래 '행진'을 시민들과 함께 열창한 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가수 전인권이 19일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에서, 전국으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석해 노래 '행진'을 시민들과 함께 열창한 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 유성호




전인권의 애국가는 이미 선곡에서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 어떤 노래가 더 필요할까 싶을 만큼 애국가의 열창은 시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인권 특유의 소탈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창법은 광장에 모인 마음들을 아우르는 힘이 있었다. 애국가를 '합창'했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였다. 지난 3.1절 '친박' 집회의 태극기가 오버랩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태극기 외에 대형성조기와 이스라엘기, 육사 관련 단체 깃발 등을 흔들며 '탄핵무효! 특검구속!탄핵각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해 11월 19일 광화문 광장, 제4차 범국민행동 무대에 전인권이 올랐을 때 그는 '상록수'를 첫 곡으로 불렀다. "평화의 시위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였다. 이어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른 전인권은 시민들에게 "너는 내 맘 아니 '에이', 나는 네 맘 안다 '에이'"라며 말을 건넸고 시민들도 "에이~ 에이~" 하고 호응하며 소통을 이뤘다. 이후 전인권은 12월 31일에 10차 범국민행동 무대에 또 섰다. 이날은 신대철과 함께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강산', '미인' 등을 부르며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시민들과 함께 마무리했다.

안치환, "박근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안치환이 공연을 하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안치환, "박근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안치환이 공연을 하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해 11월 26일 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선 안치환과 양희은이 무대를 꾸몄다. 안치환은 자신의 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에 동참했다. '자유가 꽃보다 아름다워',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시민들과 한 목소리로 외쳤고, 현장은 뜨거워졌다. 안치환 역시 전인권과 마찬가지로 평화적 촛불집회를 응원하며 "비폭력 시위를 이어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침이슬'과 '상록수' 양희은과 100만의 합창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양희은이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열창하고 있다.

▲ '아침이슬'과 '상록수' 양희은과 100만의 합창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수 양희은이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열창하고 있다. ⓒ 이정민



이날 양희은의 무대도 큰 감동을 주었다. 첫 곡으로 부른 '아침이슬'에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아침이슬'은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탄압의 시위현장에서 불려왔던 곡이기에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곡이었다. 양희은은 '행복의 나라로'와 '상록수'도 연달아 불렀는데 무대에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음악으로써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은 무대였다.

박근혜즉각퇴진 무대 오른 가수 한영애 가수 한영애가 3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 촛불집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 박근혜즉각퇴진 무대 오른 가수 한영애 가수 한영애가 3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 촛불집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 권우성



가수 한영애도 촛불무대에 동참했다. 지난해 12월 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한영애는 '갈증', '내 나라 내 겨레', '홀로 아리랑', '조율' 등 네 곡을 불렀다. 한영애는 "여러분 지치지 마십시오. 1000년의 어둠도 촛불 하나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라며 시민들에게 힘을 북돋았다. 

12월 10일. 104만 촛불이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역시 광장에 모였다. 시민들은 지치지 않고 7차 촛불집회를 채웠다. 첫 무대를 꾸미기 위해 등장한 가수 권진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해 "우리 국민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고 말하며 시민들과 마음을 나눴다. 권진원은 '살다 보면'을 부르며 어려운 고비를 지혜롭게 '함께' 넘기자고 말했다.'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뭉클한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광장에 선 이은미 "당장 내려와라" 가수 이은미가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서 무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애국가'를 부르며 등장한 이은미는 "국민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라고 구호를 외쳐,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 광장에 선 이은미 "당장 내려와라" 가수 이은미가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서 무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애국가'를 부르며 등장한 이은미는 "국민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라고 구호를 외쳐,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 남소연



이날 무대에 이은미도 깜짝 등장했다. 반주 없이 침묵 속에서 애국가를 부른 후 "대한민국이여 새롭게 깨어나라!" 하고 구호를 외쳤다. 그는 '깨어나'를 비롯해 '비밀은 없어' '가슴이 뛴다' 등을 이어서 불렀다. 그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늘 깨어있으시겠습니까?" 시민들은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이은미는 "국민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 구호를 외쳤고 "지치지 말자"라는 말을 남긴 후 히트곡 '애인 있어요'를 불렀다.

이승환부터 DJ DOC까지,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들

크라잉넛. '박근혜 하야'하라! 크라잉넛이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며 공연을 하고 있다.

▲ 크라잉넛. '박근혜 하야'하라! 크라잉넛이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며 공연을 하고 있다. ⓒ 이정민


크라잉넛은 지난해 11월 12일 '박근혜 하야 촉구 콘서트'에서 노래했다. 광장의 100만 명의 시민과 함께한 김제동의 만민공동회 토크콘서트 이후 이어진 무대였다. 크라잉넛은 "우리는 청와대로 달리려고 한다"며 히트곡인 '말 달리자'를 불렀고 이어서 '룩셈부르크', '좋지 아니한가' 등을 시민들과 함께 불렀다. 열광의 무대였다. 크라잉넛은 "이러려고 크라잉넛 된 건지 자괴감이 든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이날 크라잉넛 외에도 이승환, 조피디, 정태춘, 연영석, 우리나라 등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승환 "하야하라 박근혜"  가수 이승환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무대에 오른 그는 '덩크슛'의 가사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를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로 개사해 불러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 이승환 "하야하라 박근혜" 가수 이승환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무대에 오른 그는 '덩크슛'의 가사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를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로 개사해 불러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 남소연


집회 전날인 금요일마다 전야제 격으로 무대가 꾸며지기도 했다.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였다. 지난해 11월 25일 '물러나SHOW'에선 이승환이 또 한 번 무대에 올랐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도 그는 반팔을 입은 채 열정적인 무대를 꾸몄다.

발언도 거침 없었다. "다른 나라 언론에서 (우리나라 국정농단을) 조롱 삼아 이야기하는 보도를 접했는데…. 쪽팔려서 못 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미친 세상이니까…. 우리가 만드는 (영화) '매드맥스 콘셉트'를 기대해본다"고 힘주어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선곡도 개성 있었다. 그는 "이 시국에 '사랑인가요' 불러서 뭐하겠느냐"며 "이럴 땐 '하야하거라! 내려오거라!' 외치면서 불끈불끈 힘나는 노래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날 이승환은 자신의 곡들 중 '록 스피릿'이 장착된 노래 '슈퍼히어로', '물어본다', '덩크슛', '단독전쟁', '개미혁명', '소통의 오류'를 부르며 시민의 마음을 뻥 뚫었다.
 
크라잉넛과 이승환 등은 꼭 가사 안에 현 시국에 들어맞는 메시지가 없다고 해도 '록 정신'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단 걸 보여주었다. 이들은 집회가 하나의 '문화'이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줬다.

광장에 선 DJ DOC, '하야'를 외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7차 촛불집회가 예정된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수호대회' 무대에 오른 DJ DOC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광장에 선 DJ DOC, '하야'를 외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7차 촛불집회가 예정된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수호대회' 무대에 오른 DJ DOC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남소연



DJ DOC의 '악동스러운' 무대도 빠질 수 없다. 지난해 12월 10일 7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 시청 앞 서울광장 촛불집회 사전행사 무대에서 오른 DJ DOC는 특유의 흥 넘치는 곡들로 시국을 비판했다. 최순실-박근혜를 겨냥해 만든 신곡인 '수취인분명'도 무대에서 선보였다. 문제가 된 '미스박' 등 일부 가사를 수정한 버전이었다. 이밖에도 'DOC와 춤을', '삐걱삐걱', '알쏭달쏭' 등을 부른 이들은 재치 있는 발언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엔 "박근혜 하야, 준비됐나요? 시작할까요?"라며 호응을 유도했다. DJ DOC의 노래들은 '삐걱삐걱'을 비롯해 '알쏭달쏭' 등 시국 비판에 들어맞는 가사가 많았다.

"윗대가리 우물 안의 개구리 잔대가리/ 나리 이제 그만 하쇼. 쇼도 이제 그만 하쇼" - '알쏭달쏭' 가사 중

밴드 노브레인도 지난 1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황교안 퇴진! 3.1절 맞이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무대에 올랐다. 히트곡 '넌 내게 반했어' 등을 부르며 열정 넘치는 목소리를 더했다.

많은 가수들이 보탠 목소리, 어둠을 몰아내다

 가수 강산에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가수 강산에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남소연


 가수 마야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조기 탄핵·적폐 청산-9차 촛불집회'에 앞서 사전공연 '물러나쇼'에 출연해 노래 <진달래꽃>을 열창하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가수 마야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조기 탄핵·적폐 청산-9차 촛불집회'에 앞서 사전공연 '물러나쇼'에 출연해 노래 <진달래꽃>을 열창하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많은 가수들이 촛불을 응원하고 무대에서 노래로 마음을 더했다. 강산에, 마야, 넥스트, 이한철, 브로콜리너마저, 권나무, 단편선과 선원들, 해리빅버튼, 김원중, 권윤경, 솔가와 이란, 타카피 등 많은 가수들이 함께 했다.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도 뭉클함을 주었다.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지난해 11월 18일 '제1회 물러나Show' 무대에 서서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등을 열창했다. 뮤지컬 배우 오소연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의 첫 파트를 부르며 등장해 무대 아래 앉은 시민들에게 '불'을 나눠주기도 했다.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전인권-이승환-이효리가 힘을 합쳐 발표한 노래 '길가에 버려지다'도 광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료로 음원이 공유 됐고, 집회에서 영상과 함께 흘렀다. '국민위로송'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조PD-윤일상이 합작해 만든 '시대유감2016'도 무료로 배포됐는데 '순실의 시대'등 날카롭고도 재치 넘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무대에 서든 서지 않든 많은 가수들이 촛불과 함께 했고, 노래로 참담한 시국을 비판하고 시민을 위로했다. 촛불과 함께 한 가수들과 이들의 노래는 시민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결국 탄핵이 인용되고 촛불이 이긴 오늘, 승리의 노래가 광장에 울려퍼질 차례다.


촛불집회 전인권 양희은 이은미 이승환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