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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이 쏘아올린 작은공이 탄핵으로 돌아왔다"(all****) 시작점은 이화여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경희 전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나선 일에 학생들이 반대했고, 강고한 농성투쟁을 벌였다. 최순실 딸의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이대의 정부지원 싹쓸이 등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일각이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대'는 아직 멀었다. 비리 은폐에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고 학생들은 아직 아프다. 박근혜를 파면한 한국의 내일이 지금의 이대일 수 있다. [편집자말]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철학상담을 하는 김 교수를 지난달 22일에 만나 ‘이대 농성이 남긴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해 들었다.
▲ 김선희 교수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철학상담을 하는 김 교수를 지난달 22일에 만나 ‘이대 농성이 남긴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해 들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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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는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치유할 수 있다. 개인이 노력하고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이든 촛불집회에 참가자든 이대 농성에 참여한 학생이든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김선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사회가 준 상처는 사회가 바뀌어야 아문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이화여대(아래 이대) 농성에 참여한 후 수면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철학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농성에 참여한 학생들의 요구대로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이 철회됐고 최경희 총장 역시 사퇴했으니 누군가는 이대 농성이 성공했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학생들은 '승리감'이 아닌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의 특혜의혹이 불거지며 정씨에게 특별대우를 한 이대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이는 고스란히 학교 구성원들이 감내할 몫이 됐기 때문이다.

총장선출 등을 두고 이사회, 학교본부 등과 갈등을 겪으며 '농성 이후 변한 것이 없는 학교'에 대한 실망도 학생들의 트라우마에 기름을 부었다. 김 교수는 "농성장에 진입한 경찰을 마주한 이후 경찰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심할 경우 발작을 하는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학생들의 농성을 지지한 교수협의회가 이들을 위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의 병원 치료와 심리치료, 철학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철학 상담을 하는 김 교수를 지난달 22일에 만나 '이대 농성이 남긴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트라우마 치료에 나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교수협의회 요청이 있었다. 이대 농성 때문에 시위 트라우마 겪는 학생들이 있는데, 철학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농성 이후 학생들이 너무 힘든 상태라고 하니까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철학 상담이 무엇인가. 좀 낯설다. 
"심리 상담이 심리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면, 철학 상담은 지금 현재의 '나'를 살핀다. 지금, 현재 내가 왜 힘들어할까. 내가 왜 반응할까, 스스로 이유를 묻는 것이다. 결국 철학 상담은 자기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그 이유를 검토하며 감정을 살핀다. 감정은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태도와 행위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이때 상담가는 학생들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치료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노출을 꺼린다. 보통 철학 상담을 할 때 자신의 인적사항 쓰고, 상담윤리를 설명하고 서명받는데, 이 학생들에게는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질문지를 주고 스스로 답을 쓰게 한다. '어떤 삶을 바라는지', '내가 무엇을 이루기 바라는지', '돈, 명예, 학문 등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서면으로 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무엇을 원하며 어떤 신념을 갖고 사는지 이해하는 질문들이다. 이렇게 작성한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자신이 일치할 수도 있지만 바뀌기도 한다. 내가 추구한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상담 전에 자기가 알고 있는 '내 모습'과 상담을 통해서 드러난 '내 모습'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철학 상담은 장기적으로 하는 상담이 아니라 보통 10회 안에 상담을 마무리한다."

이대 곳곳에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적힌 벽보가 붙어있다.
▲ 학내민주화 이대 곳곳에 학내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적힌 벽보가 붙어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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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공통적인 증상이 있나.
"학생들이 지금은 마스크를 안 쓰고 오는데, 처음에 상담하러 왔을 때는 다 가리고 왔다.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전부 가린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랐다. 아마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구속에 대한 두려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좌절감, 내가 무엇을 위해 했는지 내가 한 것에 비해 결과가 별로 없다는 상처,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 등.

학생들이 이런 감정을 자기 비난으로 느끼기도 한다. 학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거다. 정유라와 관련된 특혜와 비리들이 나오면서 이대가 '비리의 온상'처럼 여겨지는 것에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한다. 동시에 내 시위 때문에 학교가 이런 비난을 받나 생각한다. 학교를 위해 나선 행동 때문에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과 처음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
"시위를 왜 했는지부터 돌아보자고 한다. 시위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보자고 하는 거다. 본관 농성이 86일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 이 친구들이 농성을 3개월 겪고, 다시 3개월 지났더니 부정적인 경험만 남았다고 하더라. 하지만 사실 부정적 경험만 있지는 않았을 거다. 천천히 학생들은 농성장에서 겪은 긍정적인 경험을 찾아 나가기 시작하더라.

결국, 정유라의 부정입학, 다른 사람들이 하는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우리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그냥 기분만 좋아져서는 안 된다. 철학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인정하고 나빴던 것은 나빴다고 정확하게 봐야 한다. 외부의 비판적인 시각에 압도되지 않고 정확하게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봐야 한다."

"농성장이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장이었다" 

-어떤 점이 좋았다고 하던가.
"이 학생들이 최초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스스로 안건을 만들고 의제를 설정하며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자치를 했다고 하더라. 농성장인 본관 1, 2, 3층에 모두 자기만의 역할이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언론 대응팀, 자원봉사팀을 꾸리고 공부방도 있고 놀이방도 운영했다. 취업한 선배들이 퇴근 후에 들러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봐주기도 하고 취업 멘토링도 해주고. 그렇게 '유토피아'를 이루어 나갔다며, 자기들끼리 '이토피아'라고 했다더라. 개인이 겪은 것이 다 달랐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이 나왔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공동체에 대한 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처음으로 이대에 대한 소속감, 결속을 느꼈다고 했다. 연대감을 맛본 것이다. 경찰 진압 말고는 농성 기간에 좋은 점도 많았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왜 생긴 것인가.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학생 개개인에게 많이 영향을 미쳤다. 밖에서 이대를 '비리의 온상'으로 여기며 공격한다고 했다. 사실 이대의 비리가 드러났다고 해서 이대가 모두 비리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유라 부정입학사건은 하나의 사건이지 이화여대 전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대의 구성원은 학생도 있고 교직원도 있고 이사회도 있고 다양하다. 그렇다면 누가 문제를 일으켰고 비리를 저질렀는지 봐야 하는데, 제대로 볼 힘이 없는 거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자기가 짊어지게 된다.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많이 지쳐있겠다. 
"한 학생은 처음에 '모든 게 싫어요'라고 했다. 이대가 계속 뉴스에 나오면서 남자친구랑 싸우게 되고, 다른 학교 학생들도 이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거 같아 싫다고 울기만 하더라. 네 번째 상담에서 그 학생에게 차라리 분노하라고 말했다."

이대의 한 건물 입구에 새로운 총장 선출을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이 담긴 벽보가 붙어있다.
▲ 해방이화의 주역은 학생 이대의 한 건물 입구에 새로운 총장 선출을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이 담긴 벽보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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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극복이 아닌 사회 개혁이 필요해"

-왜 분노인가.
"분노는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분노가 있다. 정당한 분노는 '공정하지 않은 대우'를 받았을 때 나타난다. 부당한 분노는 분노를 통해서 남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집에서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면 나머지 가족들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지 않나. 가정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화를 내면 자기 의견을 낼 수 없다. 결국, 가장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끌고 갈 수 있다.

자신의 분노를 통해 다른 사람을 조정하는 것이 부당한 분노다. 정당하지 않다. 분노는 이성적이고 자신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분노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분노는 사라진다. 물론 분노도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불의한 구조에 대해 분노하면 그걸 바꾸기 위한 에너지를 낼 수도 있다.

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했고 학생들이 이를 바로잡으려 나섰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과 차분히 나누다 보면 "아 그럼 제가 건강한 이화를 만들려고 노력한 거네요"라고 답이 나온다."

-자기혐오가 아니라 정당한 분노를 하게 되면, 극복되는 건가.
"아니다. 누군가 어떤 일을 공통으로 겪었고 그 때문에 상처가 생겼다면, 그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대 농성은 대학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치유가 어렵다. 자기극복에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 극복이라는 것도 우리가 정의로운 제도,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면 그 안의 개인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 개인들이 제대로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개인이 혼자 행복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무리 수양한다고 해도 혼자 행복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잘 상담을 받아도 완벽할 수 없다. 정의로운 제도,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 개인의 행복도 보장받을 수 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시스템이 하나도 변하지 않으면 트라우마 치료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맞다. 촛불시위도 그렇다. 몇 달 동안 많은 사람이 모여 매주 집회를 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며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집회를 하고도 변화가 없다면 이 많은 사람,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이 우울감과 자괴감 겪게 될 수 있다. 변하는 게 하나도 없다면 참여한 사람들의 상처가 생길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시위했나?" 싶은 마음도 들고.

다시 말하지만, 개인이 선거를 잘하고 노력하는 것에서 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제대로 바꿔 나가야 한다. 세월호도 그렇지 않나. 3년째 이어오는데 이분들의 고통 상상하기 어렵다.

그 고통은 우리 모두의 추측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유가족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풀어주려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나. 사회 문제 안에서 생긴 트라우마는 시스템, 구조의 문제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학생들과 상담에서도 이런 이야기도 나누나.
"상담 마지막에 늘 이 얘기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정의로워야 한다고. 문제의식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건 누가 해주는 게 아니니까. 각자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제의식을 느끼자고 말한다.

내 모든 것을 팽개치고 바꾸기 위해 나서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라는 뜻이다. 촛불 집회가 됐든 세월호 농성장 방문이 됐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발을 내딛는 거다. 같이 변화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 참여, 이대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태그:#이대 농성, #김선희, #최경희, #민주주의,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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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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