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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이 쏘아올린 작은공이 탄핵으로 돌아왔다"(all****) 시작점은 이화여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경희 전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나선 일에 학생들이 반대했고, 강고한 농성투쟁을 벌였다. 최순실 딸의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이대의 정부지원 싹쓸이 등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일각이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대'는 아직 멀었다. 비리 은폐에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고 학생들은 아직 아프다. 박근혜를 파면한 한국의 내일이 지금의 이대일 수 있다. [편집자말]
지난달 21일 이화여대 대강당 앞, 이 대학 졸업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이화여대 지난달 21일 이화여대 대강당 앞, 이 대학 졸업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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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승리하지 않았다. 최경희 총장이 사퇴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총장에 줄 선 사람들이 여전히 학교를 장악하고 있다. 보직 교수도 이사회도 최 총장 라인이다. 이들이 정유라와 관련된 비리를 아예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동의했거나 방관한 것이다. 촛불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요구하듯이 이대도 적폐 청산이 필요하다."

지난달 21일 만난 이화여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씨(22)는 이화여대의 농성이 후 바뀐 것이 없다며 낙담했다. 김씨는 지난해 평생교육 단과대인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철회와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에 참여했다. 그는 "최 총장의 사퇴 이후 새로운 이대를 기대했지만, 일부 교수와 이사회, 대학본부가 개혁이 아닌 기존의 악폐를 반복하고 있다"며 이대의 현실을 지적했다.

김씨는 "매주 토요일, 촛불 집회에 나가는데, 갈 때마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학교에서 농성한 것이 떠오른다"라며 "대통령 한 명 물러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대가 지금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대통령, 총장을 어떻게 뽑을 것인지부터가 변화의 출발"이라며 "그런데 이대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잘못된 규칙을 세웠다. 결국, 이대의 새로운 출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적 총장선출'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이화여대에 붙어 있다
▲ 민주적 총장선출 '민주적 총장선출'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이화여대에 붙어 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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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비롯한 학생들이 말하는 '잘못된 규칙'이란 이대 총장 선출에 관한 규칙을 말한다. 앞서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회는 지난 1월 새로운 총장선출안을 가결했다. 교수평의회가 의결해 권고한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번 이대 총장 선출의 가장 큰 변화는 직선제 선출이다. '후보자 선출 규정 및 절차에 관한 권고안'에 따르면 이화여대의 16대 새 총장은 직선제로 뽑는다.

이선희 이대 교수평의회장은 "이화여대는 1990년 이후로 간선제로 총장을 뽑아왔다"라며 "신임 총장을 직선제로 뽑는다는 것은 교수, 학교 모두 현재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내린 큰 결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의 구성원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 방식은 1988년 이후로 많은 대학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국립대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포기했다. 이 교수평의회장은 "현재 부산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조선대 정도만이 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 총장 선출안에 '연령 제한'이 포함된 것이다. '이화를 사랑하는 재학생 및 졸업생 일동'은 "이사회가 총장선출 규정에서 연령 제한을 둬 이른바 친 재단 성향이 아닌 '야당 후보'를 찍어낸다"고 밝혔다. 이들은 "직선제를 한다고 하면서 간선제 때 두었던 '연령제한'이라는 무리한 규정을 둔 것은 소위 야당 후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사회에 찍힌 '야당 인사'로 언급되는 사람은 김혜숙 이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이다. 김 교수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부정 입학 등 각종 논란이 불거지자 개교 이래 첫 교수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던 김 교수가 정씨의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에 관여한 최 총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입학처장과 나란히 국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했을 때 학생들은 "김 교수님은 정의 구현을 위해 애써주신 분"이라는 문자를 청문회 위원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1955년생으로 올해 만 62세다. 그는 총장 임기 4년을 채우기 전 만 65세를 넘는다. 이사회의 총장 임명 규정인 "임기 중 교원 정년(만 65세)에 이르지 않는 학내 인사로 한정한다"는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총장 선출을 위한 공동 대응 이화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 역시 "이사회의 나이제한 규정은 재단에 맞는 후보군으로 확 좁히려는 것"이라며 "이화여대가 정상화되고 민주화 되려면 제대로 된 총장을 뽑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 이후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내 곳곳에 이사회를 비판하는 스티커가 뭍여져있다.
▲ 방관자는 자격없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내 곳곳에 이사회를 비판하는 스티커가 뭍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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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의 룰'을 따르라? 

학생들은 정유라 사태를 방관하고 동의한 이들이 "이대 개혁"을 말하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대 농성에 참여한 후 학내 개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오아무개(26)씨는 "현재 총장 대행을 맡은 부총장과 이사회는 최 전 총장과 합을 맞추던 이들"이라며 "특히 학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보직교수들은 최 총장이 자리에 앉힌 이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총장은 국무총리와 같다. 모든 회의에 다 참여하고 학사 관련 내용을 다 알고 있다. 정유라의 입시 비리, 학사 비리를 몰랐을 리가 없다"며 "이사회와 부총장은 구속된 교수들보다 덜 적극적이었을 뿐, 비리에 대해 침묵하고 방관했던 이들"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학생들이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을 때 아무 비리도 없는데 왜 사퇴를 요구하느냐고 학생들을 다그치던 사람이 부총장"이라며 "그런 사람이 최 전 총장 사퇴 이후 권한대행을 맡은 게 말이 되느냐. 박근혜 대통령과 한 몸인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라고 분개했다.

총장 선출안을 가결한 이사회 역시 '정유라 사태'가 발생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화를 사랑하는 재학생 및 졸업생 일동'은 "정유라 사태는 단순히 최경희라는 한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인물을 뒷받침하고 있던 재단의 독재적, 폐쇄적 구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특히 윤후정 전 명예총장은 30년 동안 총장, 이사장, 명예총장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사실상 독재를 하고 있다"라며 "최 총장 역시 윤 전 명예총장 라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사임한 윤 전 명예총장은 그동안 이화여대 막후 실세로 알려졌다. 그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했고 지난해까지 명예총장을 유지해 왔다. 최 전 총장이 사퇴한 후에도 학생과 일부 교수들은 "윤 명예총장이 20년간 대학 추진 사업과 인사 등에 개입하는 등 이화여대를 사유화하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이사회가 최 전 총장의 사퇴를 수리한 것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화여대의 농성에 참여하고 농성일지를 써왔다는 3학년 정아무개씨는 "최 전 총장이 사퇴한 것은 자진사퇴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배를 탄 이사회에서 잘라낸 것일 수도 있다"라며 "최 총장을 잘라내면 자기 자리들은 보전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화여대에 '61세 연령제한'을 규정한 총장선출안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여져있다
▲ 연령제한 반대 이화여대에 '61세 연령제한'을 규정한 총장선출안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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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선출'은 '대통령 선출'과 같아

현재 이화여대 곳곳에는 "민주적 총장 선출만이 이화가 살길이다.", "속 보이는 연령제한" 등 민주적인 총장선출 방식을 요구하는 플래카드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화여대가 정상화되려면 민주적인 절차로 제대로 된 총장을 뽑아야 한다는 외침이 학내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정씨는 "지금 박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탄핵이 인용된 후"라며 "정말 대한민국이 변하려면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대통령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대도 마찬가지다. 민주적인 선거, 공정한 선거, 투명한 선거가 뭐가 잘못됐나"라며 "적폐 청산의 대상인 이사회가 정한 총장선출안을 따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화네트워크 역시 "총장 후보자 선출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이사회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반영하지도 않았다"라며 "현 상황에서는 결코 민주적인 이화로 바뀌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기만 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그:#이화여대, #최경희, #김혜숙, #총장선출, #윤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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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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