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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매장으로 유명한 이태원 DMZ 전경
 군복매장으로 유명한 이태원 DMZ 전경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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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맥가이버, 베레모에 군복을 입고 나타나다

한산한 이태원상가 거리, 한 때 사람이 물밀듯이 찾아와 사람들에 밀려 거리를 걸을 정도였다던 거리다. 지금 모습을 보면 그 때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80년 초중반 젊은이들, 멋쟁이들이 한번쯤은 가봤을 그 곳이 바로 이태원이다.

지금은 이태원역 근처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곳이라면 그 때 쇼핑의 핵심거리는 이태원 상가가 자리 잡은 이 곳이었다. 그래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좀 더 대중적인 설명을 한다면 영화 <감시자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을 놓치고 나서 한효주가 비오는 거리에 꿇어 앉아 땅을 치며 울던 바로 그 장면에서 군복가게가 보인다.

이태원 군복가게 DMZ 사장님 윤현진님. 이분의 독특함을 나만이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다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흔적들이 가게 안 천장에 나와있듯이 군복마니아 사이에선 유명한 분이시다. 이태원의 맥가이버로 통한다는 이분을 처음 보면 비범치 않은 인상을 느낄 수 있다.

베레모에 군복 위아래를 제대로 갖춰 입은 모습. 의무감으로 입은 옷이 아니라 오랫동안 입어 군복의 멋스러움을 아는 사람의 군복감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긴 것이 분명 군복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군복이라는 겉모습에 고개를 돌려 주목하게 되었으나 다시 되짚어보니 군복 뒤의 남다른 아우라가 나를 잡아 끌었었다. 그분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며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 군복은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나? 군복 입으면서 생긴 에피소드 좀 말해달라.
"나는 결혼식장에도 군복을 입고 가고, 제사 지낼때도 군복을 입는다. 물론 안에 입고 겉에 도포를 입지만, 군복을 벗지 않는다. 여름에 베레모 쓰고 반팔티 입고 탄띠를 항상 차고 다닌다. 탄띠에는 열쇠, 지갑을 차고 다닌다. 탄띠는 일반 허리띠보다 훨씬 탄탄하다.

한번은 차를 운전하는데 신호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잡힌 적이 있다. 내가 거수경례를 하고 하소연을 말하니 교통경찰이 하는 말이 "관용차 몰고 다니는 사람을 잡지 않으면 민간인들이 뭐라고 한다"고 하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모르는 사람은 군인인 줄 안다. 군인보다 더 군인 같다고들 한다."

말씀을 하시며 허리춤에 탄띠를 멘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깜짝 놀랐다. 정말 지갑, 열쇠, 맥가이버 칼이 허리 탄띠에 매달려 있다. 사장님은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오래된 군복이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이며 오히려 시간의 흐름과 어우러져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군복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신다.군복이 얼마나 튼튼하고 멋스럽게 만들어졌는지 40-50년대 만든 군복이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군복에 관심이 없던 나도 사장님 말씀을 듣고 군복 야상을 보니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생겼다.

 오리지널임을 보여주는 군복 바지 안쪽 모습. 제작년도는 1957년 3월 11일로 찍혀 있다.
 오리지널임을 보여주는 군복 바지 안쪽 모습. 제작년도는 1957년 3월 11일로 찍혀 있다.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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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후 50년대말 육군은 미군 제품에 육군 마크를 찍어 보급했다.
 한국전쟁이후 50년대말 육군은 미군 제품에 육군 마크를 찍어 보급했다.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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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도 자문을 받아갈 정도로 이 계통엔 내가 전문가다"

- 이 가게를 찾는 분들이 만족하는 이유는 뭔가? 사장님만의 노하우?
"45년, 44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군복 물품들이 많이 있다. 우린 물건을 구하러 전국의 오리지널 가게를 다닌다. 어느 가게든 우량 물건이 한 가게에 하나는 있을 수가 있다. 군복 유전자 중에서 제일 좋은 유전자만 뽑아놓은 곳이 바로 여기다. 내가 수시로 나가서 보고 사오고,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도 발품을 팔아 물건을 구하기도 한다. 물건 하나 하나 수집을 하는 수준이다. 그래야 진짜 물건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집에 비해서 물건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나라고 어디서 물건이 뚝 떨어지겠어요? 오리지널을 모으다보니까 튼튼하고 진짜 좋은 물건을 파는구나라는 입소문이 났다."

사장님 말씀을 듣다보니 언제부터 군복에 관심을 갖게 되셨을지 궁금해졌다. 이태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궁금했다.

- 이태원에 오시기 전에는 무얼 하셨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약방에서 1년 반 동안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장인어른이 이태원에서 공예품 장사하고 있었는데 소개를 받게 되서 이태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군대 가기 전에 이태원에 왔고 군제대하고 아예 이태원에 터를 잡게 된 거다. 한약방에서 일할 때 한문 공부, 붓글씨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님이 한문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셔서 그 말을 듣고 5000자를 외워버렸다. 나는 성격이 한번 빠지만 헤어나질 못한다. 한약방에서 5-6시간씩 매일 썼다. 이태원에서 처음에는 기념품(놋쇠가게) 일을 시작했다. 이후 청바지, 군복으로 아이템이 변했다."

- 어떻게 군복 전문가가 되시게 된 건가? 그 비결을 알려달라.
"영화감독도 자문을 받아갈 정도로 이 계통엔 내가 전문가다. 전문가가 되려면 내 직업을 사랑하고 즐겨야 된다. 모든 사람은 한 계통에 미치면 전문이 나온다고 본다. 엄청 몰입을 했다. 내가 한약방에서 붓글씨에 몰입했던 것처럼 군복에 몰입했던 거다. 처음에 청바지를 팔면서 군복도 같이 팔기 시작했을 때 군복바지를 입고 설명했더니 군복 바지가 더 잘 팔렸다. 그러다 보니 하나씩 입기 시작했다. 입다보니 편하고 좋다는 걸 느끼게 돼서 군복 마니아가 됐다. 군복뿐만 아니다. 군용제품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손님의 필요에 맞게 수선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군용 제품을 많이 다뤄봤고 그걸 즐기게 됐다."

흑인 손님이 들어왔다. 영어로 군화를 찾는다. 간단한 영어였지만 사장님은 외국인과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생존영어라고 할까? 초등학교 때부터만 쳐도 16년 가까이 머리 싸매고 공부해도 잘 안되는 영어를 이태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배우셨을지 궁금했다.

 이태원 DNZ 내부에 장식된 군용전화
 이태원 DNZ 내부에 장식된 군용전화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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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철 생활영어 여덟 권을 모조리 외우다

- 영어는 독학을 하신 건가?
"총각 때 영어공부를 바짝 했다. 군대 마치고 돌아온 81년부터 3년 동안 열심히 했다. 그때 '마이마이'(1981년 나온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였다. 어찌나 테이프를 들었던지 마이마이가 망가져서 5번이나 갈아치웠다. 민병철 생활영어 8권을 한 권 한 권 모조리 외워버렸다. 책 한권을 1년 갖고 다니면 겉장이 너덜너덜해져 겉장에 테이프를 붙이고 또 떨어지면 갈아 치고 하면서 공부를 했다.

공부라는 건 얼마나 집중도가 강하냐에 따라 흡수가 달라진다. 딴 생각하면 들어가질 않는다. 공부할 땐 6시 일어나서 8킬로미터를 아침마다 뛰었다. 4년간 성남에서 가락동시장까지 뛰었다. 아스팔트를 얼마나 뛰었던지 무릎이 나가버렸다. 뛰고 나선 우물에서 물을 퍼서 냉수마찰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컨디션이 아주 좋아져 몸이 뜬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앉아서 영어 공부를 했다. 하루 종일 헤드폰을 끼고 다녀서 이명이 왔다. 귀에서 웽웽웽거리고 꿈에서도 영어를 할 정도였다."

- 몰입할 때는 젊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가?
"그렇다. 그때는 내가 한다면 몰두할 수 있으니까 가능했지. 지금은 식구가 있고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내가 한다면 아무 생각도 안하고 몰두할 수 있으니까. 어차피 세상 한 번 왔다가는데 뭔가를 한다면 투지력 같은 거 있는 게 인생의 희열을 느끼는 거 아니야? 그렇게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밥 먹고 살다 죽는 건 어차피 똑같지만 뭔가를 한다고 할 적에는 말이야..."

처음엔 낮설었는데 서서히 몰입의 경험을 떠올리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어렴풋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데 참 오래 전인 것 같다. 그래 맞다. 하나도 힘들지가 않던 느낌, 누가 뭐래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만의 즐거움이 있으니까 다른 아쉬움은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을 충분한 보상이 있었던 느낌이다. 몰입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사장님의 삶을 되짚어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장님의 삶에는 군복처럼 강함만 있었을까?"

 90년 청바지가게 시절 잡지, 신문에 보도된 기록들.
 90년 청바지가게 시절 잡지, 신문에 보도된 기록들.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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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놋쇠 공예품, 청바지, 군복 아이템 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
"75년 놋쇠 공예품을 시작했는데 신주(황동의 일본말) 파이프로 만든 공예품은 동물류, 문장식, 침대 등 종류가 엄청 많았다. 80년대부터는 신주 침대를 했다. 10년 이상했는데 놋쇠 파이프 단가가 안맞아 88올림픽부터 사양물품이 됐다. 그때 당시 외국인들이 많이 사갔다. 외국인 대사관에서 인기가 좋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급 물품을 찾는 사람들이 사갔다. 신주공예품하다가 점점 장사가 안됐다. 와이프가 옆에 아는 사람이 옷장사를 하니까 청바지 팔아보겠다고 하면서 가게 조그만 공간을 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옷장사가 3년만에 군용물품 가게로 싹 바뀌게 됐다. 군용물품으로 바꾸면서 부작용이 많았다. 한 분야에 대해 완전히 알려면 최하 10년은 걸린다고 본다. 처음엔 사기도 당하고 물건 잘못 사서 2000만 원 날리기도 했다. 돈은 냈는데 엉뚱한 걸 주고. 바꿔주지도 않았다. 나상사라는 사람은 찾아와서 물건을 팔아주겠다고 해놓고 물건을 왕창 가져 간 뒤 연락이 끊겼다. 모든 게 다 시련이 있다. 쉽지가 않다."

 이태원 군복가게 DMZ 윤현진 사장님
 이태원 군복가게 DMZ 윤현진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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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뭐에 빠져 계신가.
"요새도 뭘 한다 하면 빠진다. 나는 뭔가 하나 하면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거 하나에만 몰두한다. 얼마 전엔 차에 다는 안테나를 만들려고 3일 동안 노력해서 기가 막힌 걸 짜냈다. 밤새도록 고안해서 완성했다. 안테나에 옷걸이에 들어있는 쇠철사를 활용하고 스프링을 달아서 휘어지도록 만들었다. 칠을 해놔서 안보이지만 다 제작을 한 거다. 대단한 게 아니라 몰두를 하면 그런 게 된다. 차 앞 범퍼도 내가 만들었는데 고무로 감았던 걸 풀고 새끼줄을 감았다. 새끼줄을 땡겨서 감다보니까 손에서 피가 나왔다. 그런데도 집착을 하니까 아픈게 느껴지지가 않아. 물집이 잡혀서 피가 나오는데도 희열이 느껴진다."

사장님이 사진 속 차를 보여주셨다. 군용차로 개조한 지프차였다. 정말 군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차가 도심 한가운데로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손에 피가 나도록 감았다는 사장님의 새끼줄을 보면서 이렇게 감는게 멋인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장님의 그 희열만은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군복 안에 감춰진 선생님의 아우라는 몰입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삶의 재미를 느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가 아닐까. 내 인생은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자존심,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숨어 있는 인생 철학 한마디씩을 받아 적어 나가는 느낌이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나의 인생이 그들의 삶의 엑기스를 빨아들여 좀 더 넒어지고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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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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