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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가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여전히 '여자'라서 차별받고 억압받고, 특정 역할을 하길 강요받죠.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 여성들의 목소리, 여성을 생각하는 목소리들을 몇 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편집자말]
이화여대 정문
 이화여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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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이화여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대학 학우 여러분께 드립니다)

후배님께.

'음양의 조화'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여쭈며 이 글을 시작합니다. 언뜻 보면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썼을 법한 말이지만, 이는 동양 사상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관용구와 같은 것이지요. 아마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과 윤리>같은 과목에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주 만물은 음의 속성과 양의 속성으로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음(-)은 여자를, 양(+)은 남자를 상징합니다. 문학적 비유라고나 할까요. '양'은 주로 긍정의 의미를, '음'은 주로 부정의 의미를 담아 사용되곤 합니다. "여자가 가진 음기를, 남자의 양기로 채운다"는 말 역시, 수리적 계산을 들이민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세상은, 음과 양이 꼭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과 양은 조화를 이룸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고, 화학적으로도 안정된 상태로 나아간다고요. (젠더 이분법에 기초한) 남-녀의 세계도 마찬가지죠. 한쪽 성별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균형을 잃어버린 기형적 공간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남중-남고-공대-군대'로 이어지는 삶을 놀리는 것이나, "군인들은 지나가는 할머니만 봐도 눈이 돌아간다"는 식의 장난은 모두 그 편견을 기반하죠. 한쪽 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성적 표출을 하지 못하고 억압을 받은 집단으로 생각해 가엾이 여기곤 합니다. 

그리고 그 '한쪽 성별'이 '여성'이라면, 그 집단에 부과되는 속성은 '천박함'과 '존재 자체의 의아함'일 것입니다.

"여대가 왜 필요해?" 언제까지 그 질문에 답해야 할까

이화대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직은 바람이 쌀쌀한 3월에 입학한 후배님이 혹여 수업 건물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계시진 않을까 마음이 쓰입니다. 길을 여쭙는다면 누구든 친절히 설명해주는 공간이 이 대학이니, 캠퍼스에서 헤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궁금한 게 있네요. 수만 개의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건물. ECC가 아직도 있는지요? 유명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했다는 그 건물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습니다. 물론, 대학의 상업화에 한껏 기여하고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만, 우리 대학 학생들은 여기서 수업도 듣고 식사도 하며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답니다.

한 건축가는 이 건물을 방문해 느낀 소회를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건 너무 야하잖아. 음기의 절정이로구나."
- 2008년 7월 3일 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 <강력한 음기의 공간>, 오영욱

이화여대 ECC
 이화여대 ECC
ⓒ Zicarlo Aaldere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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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기'라는 단어 하나로 대학의 학문적 속성을 무참히 거세당했던 이 이야기를 전하며, 2017년 오늘을 이화대학을 소개합니다.

음,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은 2017년 3월 8일, 109번째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저는 쓸거리를 하나 전달받았습니다. '여대생으로 느꼈던 사회적 편견이나 그 편견에 대항했던 경험, 혹은 여대를 다녀서 좋은 점' 등을 담은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제가 후배님께 이 글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죠.

사실, 이 주제는 낡디낡았습니다. 이화대학의 전신인 이화학당이 생겨난 지 130년이 지났고, 그 130년이 오롯이 "여자대학 존재 증명 투쟁의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여학교는 스스로 그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내야 했습니다. 사회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이 학교가 살아남을 길은 "스스로에 대한 적극적인 변호"였습니다.

"여대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 앞에 놓인 현명한 대답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남성과 여성이 결코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시대적 징후, 그 분위기 속에서 여자대학이 만들어낸 성취. 이 두 가지로, 학교는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변호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기업 여성임원 출신 대학 1위' '고시 합격자 n위'처럼 낯간지러운 말들로 범벅이 되기도 했죠.

저는, 또다시 이를 주제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그 절박한 전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학에 '김치녀' 같은 건 없어요", "여대도 재밌고 좋아요" 따위의 변호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존재 증명의 책임이 여전히 대학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제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것을 증명해야만 할까? 증명 투쟁과 변호의 시간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

미션 스쿨, 그러나 무지개 깃발이 펄럭인다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증명'을 이제 그만해보려 합니다. 그저, 여자 대학의 풍경을 담담히 기록해보려고요. 그 잔잔한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은 '낯설지 않은 평범함'입니다. 아, 이 공간도 그저 학생들이 공부하고, 숨 쉬고, 노니는 그런 곳이구나. 여자대학이라는 이유로 학문적 책임을 거세당하고, 음기 가득한 여성적 역할을 다해내야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풍경은 크리스마스 즈음인 12월의 학생문화관(아래 '학문관')입니다. 선교사가 설립한 미션 스쿨인 우리 대학은,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학문관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합니다. 기독교 대학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함께 펄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자대학은 성적 자유와 해방, 관용과 평등의 공간입니다. 사회적으로 억압받은 섹슈얼리티는 이 공간에서 비로소 나의 것이 됩니다. 여성 그리고 여성 퀴어들 역시 관용과 평등에 대한 믿음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합니다. 이곳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도 좋습니다. 다양한 자아 표현 방식에, 아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든, 가슴이 깊게 파인 상의를 입든, 민낯으로 학교를 돌아다니든 그 자체가 나 자신이고 나의 정체성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당당히 표출하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해방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성소수자인권동아리는 아주 큰 무지개깃발을 내걸 수 있고,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다양한 그룹들은 자유롭게 섹스토크를 할 수 있습니다.

'진녹색의 힘'을 보다

제게 떠오르는 두 번째 풍경은, 우리 대학의 진녹색 로고입니다. 저는 종종 이 대학의 로고가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아니라는 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여자 색'이라서 싫다기보다는, 강인함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진녹색이 좋았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진녹색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 순간은,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정권과 결탁한 사상 최악의 학사문란 사건으로 학교가 떠들썩할 때,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교수님들의 선언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이날 교수님들은 다 함께 진녹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오셨습니다. 저는 그 풍경에서 녹색의 강인함을 처음 느꼈습니다. 새싹 따위의 여리고 어린 것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녹색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인한 녹색을요.

진녹색 머플러를 두른 교수님들
 진녹색 머플러를 두른 교수님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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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이 대학이 사람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쁜 여대생들이 다니는 꽃밭'이 아니라, '분명하게 옳은 것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던 지성'으로. '공부보다는 연애에, 연애보다는 허영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 아니라,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부정 앞에서 지혜를 발휘하던 청춘'으로 말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된다

여성학 시간에는 "우리는 여대라 참 다행이다" 따위의 비겁함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주변 남녀공학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이 들려오면 온 마음 다해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불평등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가질 수 있었고, 그렇기에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그 균형적 세계에서 발생한 부조리를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여대생으로서 학교 밖 여성들과 연대하고, 그 끈끈한 유대감을 다시 학교로 가져와 더 큰 연대의 힘을 만들어내는 우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성학을 왜 필수교양으로 지정하지 않냐는 볼멘소리가 종종 들려오곤 합니다. 저도 이 투정에 십분 공감합니다만, 꼭 여성학 수업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수업 전반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을 배울 수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문학, 철학, 정치, 경제, 과학 수업 모두에서 이 대학은 여성의 발자취를 가르치고, 여성인 우리는 그것을 따라갑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처럼)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말씀을 열심히 듣지 않는 학생도 페미니스트가 되고야 맙니다. 여자대학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전투의 시간들이, 결국 우리를 페미니스트로 만들거든요.

1984년 10월, 이화여대에서 한국 여성학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1984년 10월, 이화여대에서 한국 여성학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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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님. 저도 물론 '찌질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뭇 남성들과의 캠퍼스 로맨스. 저 역시도 기대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또한 '여중-여고-여대'를 나온 저희 엄마를 '수녀라인'이라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여겨지는 '정상'의 범위에 한쪽 성별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판타지를 충실하게 체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적 차별의 가시적인 대상자가 된 후에야 저의 흑역사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여자학교들이 쌓아온 존재 증명 투쟁의 기록을 읽어나갔고, 현실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제게 부여된 투쟁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147년, 이대는 공학이 되었나요?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저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토록 기쁜 날, 저는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변호를 잠시 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자 대학에서의 풍경들을 그저 곱씹어 보았습니다. 어떤가요? 이 풍경들이 우리 대학의 존재 이유를 가뿐히 방증할 수 있을까요?

저의 단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뒤, 이 글을 읽고 계실 후배님도 여전히 여자대학 존재 증명의 책임이 주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여성들의 일상적인 생존기야말로 가장 치열한 정치극이 되는 지금입니다. "국회의원이 남-녀 동수로 구성되는 그날, 이화여대는 남녀공학으로 전환할 것이다"는 말엔 농담과 진담이 섞여 있습니다. 사실 그날이 올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은, 아직 바닥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관련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이대 교수들과 학생들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관련 논란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이대 교수들과 학생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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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30년이 흘렀습니다. 2147년, 대한민국은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었나요? 남-녀 동수로 구성된 국회가 출범해 이화대학은 공학이 되었나요? 남녀가 공존하는 이화대학 캠퍼스에서도, 진정한 성적 자유와 인간의 다양성이 여전히 존중되고 있나요?

후배님, 이 학교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을 마음껏 보여주세요. 여자로서, 남자로서가 아니라 존엄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말이죠.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오네요. 달콤한 설렘에 오늘 밤은 잠에 들기 힘들겠군요.

2017년 3월 8일
130년 후가 궁금한
인문대학 지우 올림


태그:#이대, #여성의날, #페미니즘, #이화여대, #세계여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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