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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의 현실

며칠 전 경기도 부천에 사는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느새 우리의 대화 주제는 각자 아이들의 이야기로 모아졌는데, 녀석은 처음으로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늘어놓았다. 학교 가서 아이가 적응 못 하면 어쩌냐, 방과후에는 어떻게 보살펴야 하느냐 등등.

아이를 1년 먼저 학교에 보낸 학부모 선배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나의 무슨 말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엥? 선배, 뭐라고요? 까꿍이가 몇 반?"
"응? 1학년 때는 7반이었는데, 2학년 때는 3반인가 2반인가 그렇다고."
"초등학교에 7반이 있어요? 총 몇 반까지 있는데요?"
"글쎄. 아마 7반일 걸? 왜? 너희 아이 학교는 몇 반까지 있는데?"
"저희는 2반까지밖에 없어요."
"2반? 설마. 경기도인데 아이들이 그것밖에 없어?"
"예. 우리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보통 다 그럴 걸요. 선배 동네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아요?"

25명 안팎의 교실
▲ 초등학교 교실 풍경 25명 안팎의 교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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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다. 문득 2015년 11월에 갔었던 일본 연수가 떠올랐다. 당시 교토와 고베를 방문해서 중심부에 있던 초등학교들이 학생들이 없어 폐교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 자체가 오산이었다. 당장 경기도에 1학년 학급 수가 2반뿐인 학교가 있다는 것은 다른 지역의 경우 더 심각하다는 뜻 아닌가.

집에 와서 이런 일이 있었다며 말했더니 아내는 이제야 알았냐면서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아내에 따르면 비록 재개발 때문에 일시적인 일이겠지만 어쨌든 이곳 서울 강동구에도 한 학년에 한 반 18명인 초등학교가 존재하며,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유별나게 아이가 많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한 반에 25명, 한 학년에 7반밖에 없는데 그게 아이가 많은 편이라고? 내 초등학교 때만 해도 한 반에 55명, 11반까지 있었는데? 도대체 그 동안 우리 사회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제 와서 아이들이 없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너무 새삼스러운 일일까?

왕따를 경험했던 까꿍이

3년 전 까꿍이
▲ 6살 유치원생 까꿍이 3년 전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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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해 체감하는 인구절벽의 심각성. 문득 2년 전 까꿍이가 힘들어하던 때가 떠올랐다.

2년 전, 병설유치원을 다니던 까꿍이가 언젠가 집에 와서 속상하다고 운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자기와는 놀아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야기인즉슨 평소에 친구들에게 선물을 많이 주던 서희(가명)가 팀을 만들어 자기더러 들어오라고 하더니 다음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서희 팀 소속이라는 것이었는데, 서희는 팀원들은 팀원들끼리만 놀자고 했고, 모든 아이들이 그 말에 수긍했다고 했다. 한 마디로 까꿍이가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우리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왕따를 당하는 거지? 부모로서 득달처럼 달려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선생님께 따지고 싶었지만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왕따의 개념을 알 나이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유치원을 찾아가는 부모의 모습 역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이겨낸 까꿍이
▲ 7살 까꿍이 잘 이겨낸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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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까꿍이는 이후 별 탈 없이 지냈다. 녀석이 남자아이와도 잘 어울렸고, 서희 팀에 속해 있던 아이 하나가 팀 안에서도 공주-시녀를 나누는 서희가 좀 이상하다며 이탈되어 나와 까꿍이와 절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희 팀 자체도 흐지부지해졌다고 했다. 그래, 유치원생들끼리 무슨 왕따인가. 최소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초등학생 이야기이지 않던가.

그러나 어쨌든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한 기억은 계속해서 나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상황 그 자체에 대해 마냥 분노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초점은 이유에 맞춰졌다. 혹시 우리 아이가 단체 생활을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아님 왕따가 다른 문제는 아닌지 고민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왕따가 구조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왕따는 인구절벽의 전초

모두 함께 즐겁게 놀기를
▲ 친구들과 함께 모두 함께 즐겁게 놀기를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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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소위 학교 내 왕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2000년대 초반쯤이었다. 언론들은 그 전에도 일본의 이지메(집단학대) 문화를 간간이 소개한 적이 있었으나, 그와 비슷한 현상이 국내에서도 왕따라 불리며 심각하게 조명된 것은 1997년 내가 졸업한 이후의 일이었다. 최소한 내가 학창시절 때 왕따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왕따란 말이 등장했을 때 기성세대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요즘 아이들은"으로 시작해서 혀를 끌끌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 '꼰대'들이 대다수였다. 자기네들보다 훨씬 풍족하게 자란 아이들이 왜 뭐가 부족해서 이런 나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많은 이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훈계하기 바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왕따가 2000년대 이후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의 전유물이었을까? 그 전에는 한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따돌림 시켰던 학우가 없었을까? 아니다. 늘 우리 교실 안에는 한두 명 이상의 왕따가 존재했었다. 단지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만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늘 있었던 왕따 문제가 2000년 이후에야 대두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학급의 구성원 수가 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반에 50명 넘게 있던 아이들이 40명, 30명 이하로 계속 줄게 되면서 비로소 왕따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 것이다.

사실 50명 이상 아이들이 함께 있는 학급에서는 왕따가 생기기 어렵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끼리 하나의 그룹을 만든다고 해도 반 전체가 그 구성원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만약 한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 다른 그룹에 섞이면 그만이다. 또한 몇몇 그룹에 섞이기 어려운 왕따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만들면 된다. 게다가 학년이 바뀌면 학급의 2/3 이상이 새로 보는 얼굴이다. 1년마다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지금 학생들을 보자. 한 반에 많아야 25명, 학급 수는 5반 이내다. 어느 단체든 왕따는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인데 지금과 같은 구조 속에서 왕따는 이전보다 그 굴레를 벗기 어렵다. 다른 그룹이 생성될 만큼 학급의 학생 수가 부족하며, 학년이 올라가도 전체 인원수가 적은 만큼 한 번 박힌 이미지는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다
▲ 동생들과 함께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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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왕따의 문제를 개인이나 세대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요즘 아이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한 학급의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왕따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서 인구절벽의 전초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답답해졌다. 우리에게 인구절벽이 결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임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왕따를 당하지 않게 대세를 따르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아님 왕따를 당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너의 생각대로 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현재 정부는 인구절벽을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아니, 출산률을 높이기 위함이라면서 어처구니없는 대책들만 남발하고 있는 중이다. 부디 차기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바란다. 인구절벽은 지금까지 우리가 맞이한 어떤 재앙보다도 더 심각할 것이다.


태그:#육아일기, #인구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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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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