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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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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빠졌군요. (집권세력의) 무능과 오만, 그리고 사욕(私慾)으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가 이어졌고, 결국엔 상상하기도 힘든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죠."

2시간여 가까이 지난 즈음이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그는 '욕심'이라는 단어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을 '야만의 시대'라고 비유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은색 빛 머리카락은 그대로였고,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어법도 여전했다. 차분한 말소리는 가끔씩 속도를 내기도 했고, 낮은 톤의 음색은 '촛불'과 '보수', '역사 인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어느새 높은 곳을 향했다.

그는 40년 동안 '성장 지상주의'에 맞서, 분배와 형평을 통한 성장을 이야기해 온 진보적 경제학자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 때 이후 그와의 인연도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등에 대한 해법을 듣기 위해서 그를 찾았다. 이번엔 예전과 달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경험한 청와대 참모로서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촛불 이후의 모습'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그와 그렇게 마주 앉았다. 그에게도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집권세력의 무능과 오만, 사욕이 불러온 대형 사고"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작년 가을부터 온 나라가 어지럽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을 포함해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대통령이 몸통이 돼 각종 불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권세력의 무능함과 오만 방자함이 극대화됐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말을 이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의 입에서 계속 '무능'과 '오만', '독선' 등의 단어가 이어졌다.

-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 이외 안종범 경제수석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어쩌면 이 교수께서 청와대 계실 때 비슷한 일을 했던 것이 아닌지.(안 수석이 경제와 정책조정수석을, 이 교수는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냈다)
"지금 보니까, 내가 청와대에서 썼던 방이 역대 경제수석이 써왔던 곳이라고 하더라. 아마 (안 수석도) 같은 방을 썼을 것 같기도 하다. 안 수석은 나와 같은 대구 출신이고, 경제학회 등에서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학자로 보면 성실한 사람이었다. '성실한 사람이 왜 엄청난 사고를 쳤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우병우 민정수석은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청와대에선 대통령이 곧 법이다'라고 했는데.
"만일 (우병우가) 그 말을 했다면 아주 잘못된 말이다.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하면 (청와대에) 대통령 혼자 있으면 되지 참모가 왜 필요한가. 그런 생각 자체가 결국 최순실 등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참모들에게도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박영수 특검에서 안종범 수첩이 결정적인 증거로 쓰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나라를 위해서 안 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은 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실함이 어떤 면에선 국가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고, 독(毒)이 된 셈이다. 인도의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무의미하다'고 했다. 안 수석의 예를 보면, 결국 방향이 틀리면 성실함도 무의미한 셈이다."

- 만약 이 교수께서 안 수석과 같은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재벌을 상대로 돈을 모금하는 등의 지시를 받았다면 어떻게 했었을까.
"(미소를 띠며) 사실 나도 그런 상상을 해봤다. 안 수석과 같은 학자인 데다 고향도 같고, 청와대 시절 업무도 비슷해서... 만일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았다면, 단언하건대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반대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하지도 않았고, 하려고 할 분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대통령을 잘 만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대통령 잘 만난 행운아... 재벌들, 다각도로 접촉해 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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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행운아였다'고 했다. 좋은 대통령 아래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스레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권위주의 타파와 토론 문화 활성화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대통령의 철학이 중요하죠. 노 대통령은 정말 토론하는 것을 즐겼어요. 게다가 솔직한 화법으로 토론을 많이 하면서 소통했는데, 토론공화국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당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이 우리를 보고 나토(NATO, No Action Talk Only)라고 비판했지요.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요. 토론도 많이 했지만, 실행으로 많이 옮기기도 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재벌 회장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나 있었겠어요.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때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소통이 활발했었지요."

- 혹시 청와대 계실 때 재벌로부터 접촉 같은 것은 없었나.
"재벌이 개별적으로 접촉해 온 건 없었다. 다만 처음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접근을 하려는 재벌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니까, 나중엔 나를 쫓아내려고 했다. 이를 위해 재벌에선 두 가지 방법을 썼다. 하나는 이정우가 청와대에 있기 때문에 재벌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하나는 관료들과 불화가 심해서 일이 잘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 두 가지가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면서, 보수언론이 매일 공격해왔다."

- 그때 이 교수가 '분배주의자', '좌경학자'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경제에서 성장만큼 분배가 얼마나 중요해졌나. 지금 세계적으로도 분배가 잘 돼야 성장도 잘 된다는 것이 정론이다. 참여정부는 성장 일변도의 경제에서 분배와 형평성에도 관심을 두고 운용했는데,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보수언론은 이를 '좌경이다'라면서 색깔론으로 몰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있던 최장집 교수도 억울하게 쫓겨났다."

이 교수는 "보수언론은 최 교수의 논문 한 구절 가지고 한 달 동안 공격했다"면서 "사실 학자가 자신의 철학을 지키면서 정부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2년 반 동안 청와대에 있는 동안 엄청난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았는데, 대통령이 지켜주셨다"면서 "그런 지도자, 대통령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진짜 보수 어딨나? 야만의 시대를 청산해야 할 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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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특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는데.
"당연하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하고, 박 대통령도 자신이 엮였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과연 어떤 국민이 믿겠는가. 물론 일부 뜯긴 돈도 있을수 있겠지만, 아마 삼성에선 최순실에게 돈을 가져다주면서 속으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아마 경영권 승계를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430억 원이 넘는 돈은 결국 서로 이익을 위해 주고받는 뇌물일 뿐이다. 이재용과 박 대통령은 공범이고..."

- 촛불집회는 참여해보셨나.
"모두 참석하진 못했지만, 여러 번 나갔었다. 서울에서도 2번 나왔고, 대구에서도 토요일마다 갔었다. 대구가 어떤 곳인가. 그럼에도 중앙로 등 시내 일대를 시민들이 가득 메운다. 가서 보면,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아주 평화로우면서도, 정말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심정, 이게 이심전심이더라."

- 요즘 태극기 집회 쪽 참가자들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고개를 흔들며) 사실 정확히 그쪽 집회 규모를 잘 모르지만, 그쪽에서 주장을 들어보면, 박근혜를 불쌍하게 여기고, 촛불집회 참석자 등에 대해 '빨갱이', '좌익' 등의 색깔론 공세를 하고 있다. 이는 정말 역사의식의 빈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안종범, 우병우 수석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동안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크게 올라와 있었다. 그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은 대통령 철학과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짚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정말 우리나라에 보수가 있나요?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이 재판관들을 향해 도를 넘는 행태를 보이고, 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말이죠. 태극기 집회라는 곳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수구보수세력들은 그동안 아주 쉽게 살아왔어요. 진보세력은 '빨갱이'로 몰아세워서 없애버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애국시민들이 희생됐나요. 이런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이승만시대부터 박정희, 전두환에 이어 박근혜까지, 야만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이번 선거에서 그것을 청산해야죠."

[이정우 교수 인터뷰 ②] : "문-안-이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


태그:#이정우 교수, #참여정부, #촛불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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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7 대통령 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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