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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직 단양군 초선 군의원이 19차 광화문광장 박근혜퇴진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국민의 힘으로 탄핵 김광직 단양군 초선 군의원이 19차 광화문광장 박근혜퇴진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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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4일),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집을 나섰다. 이번 주말도 어김없이 그는 서울로 차를 몬다. 그는 주말이면 광화문광장에 모이는 단골 촛불시민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열혈 촛불시민으로 사는 이유가 궁금해서 서울 가는 길에 따라 나서서 하루 종일 동행하며 사연을 들어 보았다.

"이거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제 나이가 60이 다 되어가요. 젊을 때는 세상이 좀더 나아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가 싸워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애들 부끄러워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제 아이가 26살이에요. 요즘 어려운 청년들처럼 제 아이도 똑같은 처지예요. 정말 가슴 아픕니다. 그래서 머리가 하얀 이 나이에 다시 촛불이라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겁니다. 뭐라도 하려구요."

초로의 중년 남성은 김광직씨(57)이다. 충북 단양에서 나고 자랐다. 중학교 때 부모 곁을 떠나 서울이라는 큰 바다로 나갔다. 스물다섯 해 동안 망망대해를 헤엄쳐 다니며 산전수전을 겪었다. 마흔이 되어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고향에 연어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열일곱 해가 흘렀다.

"제가 남한강가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늘 연어처럼 언젠가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돌아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17년 전, 제 나이 마흔 살에 그 생각을 실천했지요."

번잡한 대도시에서 산과 강이 아름다운 단양 강변 고향 마을에 돌아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것도 잠시. 2008년 2월, 김광직씨가 지역 환경운동에 나서는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환경오염 문제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장항제련소의 일부시설이 'LS Nikko 동제련'이라는 이름으로 단양으로 이전계획이 발표되면서 지역주민들의 반대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김광직씨는 이때 제천단양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GRM 군민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아서 투쟁에 앞장섰다.

"제 고향 단양은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합니다. 장항을 오염시키고 쫓겨난 동제련소인 GRM이 단양에 들어오면 소중한 자산인 물과 공기가 오염될 건 뻔한 사실이었어요. 제 고향 단양의 자연이 파괴되는 건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나서게 된 거지요. 유치 반대 투쟁에선 비록 패했지만 현 GRM 공장과 연계된 매포 자원순환농공단지 확대 투쟁, 영동상사 저지투쟁, 영천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조성 반대투쟁에서 연이어 승리 했습니다. 그 위대한 주민들과 함께 싸운 것은 저에겐 영광이었습니다."

임기 3년차인 김광직 단양군 초선 군의원을 주중에는 의정활동을, 주말에는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시민 활동을 하고 있다.
 임기 3년차인 김광직 단양군 초선 군의원을 주중에는 의정활동을, 주말에는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시민 활동을 하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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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직씨는 자영업을 하는 소상공인이자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활동가로서 GRM 반대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4년 6.4 지방선거에 민주당 군의원으로 출마를 했다. 보수적인 단양군에서 환경운동가가 군의원으로 당선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GRM 문제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김광직씨가 군의원에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맞습니다. GRM 반대투쟁이 아니었으면 제가 군의원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단양군은 청정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관광지로 이름이 높습니다. 보수적인 단양군민들이 이제는 개발주의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GRM 반대 투쟁으로 분명히 보여주셨지요. 그리고 저를 군의회로 보내 환경지킴이로 활동하도록 하신 거죠."

김광직 단양군의원 올해 3년차 초선 군의원이다. 인구 3만 명인 작은 시골에서 여당 군의원들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야당 초선 군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토목건설 위주의 난개발과 예산낭비를 막고, 생태환경 보전을 통해 관광과 친환경농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를 하지만 무척 힘이 든다고 그는 말한다.

"군의원을 막상 해보니까요. 지자체에서 군수에 비해 군의회의 힘이 너무 약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권한이 막강하다고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지역에선 군수의 힘이 대통령만큼이나 막강해요. 지방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소중한 군 예산이 토목건설사업 위주로만 집행되어 참 안타깝습니다. 이는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나라의 민주주의의 위해 우리가 촛불을 들고 있잖아요. 전 지역과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촛불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김광직 단양군 군의원이 가두 연설을 하며 단양군민 80여명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후 도로행진을 하고 있다.
▲ 단양군 역사상 첫 시국촛불집회 도로행진 김광직 단양군 군의원이 가두 연설을 하며 단양군민 80여명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후 도로행진을 하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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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직 군의원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단양군의 뜻있는 농민과 노동자, 소상공인들이 결성한 박근혜퇴진 단양군운동본부와 함께 했다. 단양군 촛불집회에서 동료 군민으로서 촛불을 들고 나라의 적폐와 단양의 개혁에 대해 군민들에게 호소를 하며 단양군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단양군에서 시국촛불집회가 열리고 시가행진을 한 건 처음입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해서는 수십 명이 모이는 작은 촛불집회이지만요. 저는 제 고향마을에서 고향 사람들과 촛불을 들고 양심의 소리를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전 군의원이 아니라 정다운 고향 이웃으로서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서 호응도 큰 것이구요. 결국 제가 나고 자란 곳, 우리 부모님과 제가 묻힐 이곳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17년 전 제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침밥도 거르고 서울행에 나서 광화문 촛불집회를 마치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남한강가 집으로 돌아왔다. 13시간에 걸친 긴 여행에 지친 그에게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어서 다음 날 남한강변에 있는 그의 집 앞에서 다시 만났다.

"이 아름다운 남한강을 보세요. 전 태어나서 소년기를 이 강과 함께 보냈어요. 20대와 30대를 도시에서 보내고 40, 50대를 다시 이 강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저 멀리 소백산도 참 아름답지요. 우리 단양 사람들이 사는 이 곳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고 조상이 물려준 대로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나라의 정치가, 그리고 단양의 정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시골 군민이자 초선 군의원으로서 제가 단양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이유입니다. 적폐 청산과 새로운 세상은 광화문광장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열려야 하니까요."

고향 마을에 돌아와서 환경지킴이이자 초선 군의원 활동을 하고 있는 김광직 씨는 단양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키는 것이 단양이 사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 "이 강과 산을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지요" 고향 마을에 돌아와서 환경지킴이이자 초선 군의원 활동을 하고 있는 김광직 씨는 단양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키는 것이 단양이 사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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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광직 단양군 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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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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