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제 애 키우고 살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하고 청소하고 육아하는 삶, 혹은 맞벌이에 지쳐가는 삶, 그게 내 남은 생애의 전부인 줄만 알았다. 막막했다. 집 주변만 맴돌며 눈코 뜰 새 없이 자식과 한 몸이 되어 지내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자신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때가 왔다!

나의 물음은 ''엄마'는 왜 항상 고단한 삶을 살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는 왜 항상 희생의 대명사이고 엄마의 어깨는 왜 무거워 보여야만 하는걸까? 우리 엄마는 언제부터 지치고 화난 엄마가 되었을까? 만약 엄마의 코에서 노래가 나오고 엄마의 어깨가 들썩이고 엄마의 다리가 춤춘다면 이 세상 고민들의 반은 날아갈텐데.  

적어도 나만큼은 딸에게 즐거운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여자로서 이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기꺼이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부조리하고 힘든 현실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즐거움을 찾아가고자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가씨 적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얼마 전, 막바지 겨울에는 아이스스케이트를 타러갔다. 겨울에는 야외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궁딩이가 예전 궁딩이가 아닐거라며 말렸다. 하지만 나는 내 궁딩이의 건재함을 기어코 천명하고 싶었다. 전철로 한 시간을 달려 여의도 아이스공원에 갔다. 그리고 자그마한 아이들 틈새에서 신나게 놀았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씽씽 달리는데 어찌나 신나던지. 그래, 내가 이 '신남'을 잊고 살았었다. 자는 아이를 보며 한숨 섞인 미소가 전부인줄만 알았다. 이렇게 온몸으로 웃어본지가 얼마 만이었는가.  

얼마 후에는 남편을 끌고 볼링을 치러갔다. 아이가 중간에 잠들어버린 덕분에 남편과 둘이서 공과 자세에 더 집중하여 칠 수 있었다. 8파운드짜리 공이 바닥으로 꿍!꿍! 떨어지며 저 멀리 굴러가는데 온몸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핀이 와르르 쓰러질 때의 희열이란!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다. 볼링을 치는 이 순간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주변에서 이 정도의 스포츠오락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요즘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럴수도 있지'라는 한 마디다. 엄마, 아내, 며느리 등 내게 부여된 과도한 책임감과 그에 따르는 죄책감으로부터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는 말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말걸 그랬어' 라는 자괴감이 들때마다 '그럴수도 있지'라고 내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적어도 나 자신 1명만큼은 늘 내 편이라 생각하면 외롭지 않다. 내가 외롭지 않으면 내 아이도 외롭지 않으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며 기록해 나갈 것이다. 기쁨의 에너지를 술이나 음식, 쇼핑에 쏟지 않고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재미를 찾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아이가 집에 왔을 때는 함께 즐길만한 거리를 계속 찾아 나설  것이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 엄마부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믿는다. 궁극적으로는, '널 낳아서 엄마 이렇게 즐겁게 살아'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 딸아, 엄마는 엄마가 되어서 참 행복하단다.


태그:#주부, #육아, #엄마, #행복, #즐거운엄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