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문을 낭독 중인 대학원생.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문을 낭독 중인 대학원생.
ⓒ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작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전국 182개의 대학에 '대학원생 인권장전' 제정과 인권전담기구 설치 등을 권고했다. 이른바 '인분 교수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대학원생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조처였다. 대학원의 경우 학위 취득에 있어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상당하여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려워 권고안이 필요다는 것이 당시 인권위의 설명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인권위의 권고 취지와 배경에 동감했고 대학원생의 인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교회언론회가 지난 3일 '대학원생 인권장전' 권고를 성토하는 논평을 발표한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대학원생 인권장전'이 만들어지면 대학원 구성원들인 교수와 학생 간에 동성애나 동성애 행위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막게 되고, 이를 따르면 강의, 학문, 연구 활동을 못하게 된다"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인 '헌법'에 보장된 표현, 양심, 학문,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대해 이야기하니 매번 등장하는 조문 하나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제11조 1항의 일부다. 헌법은 단 한 문장으로 평등의 정의를 명확히 제시한다. '모든'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평등을 이야기할 수 없고 나아가 헌법의 정신에 대해 논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같은 헌법을 두고 교회언론회는 '동성애 비판'을 헌법의 표현, 양심, 학문, 신앙의 자유라 주장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이처럼 한 문장으로 평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까 싶어 헌법은 친절히 추가 문장을 붙여두었으니,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지는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가 아닌 '종교'에 제일 먼저 시선이 꽃혔다면 당신은 귀를 열고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차별받지 아니할 이유'이지 '무소불위의 절대적 기준으로 정당성을 얻는' 이유일 수 없다. 우리는 "개신교인은 서양인의 아들을 신봉하며 대한민국의 윤리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표현을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여긴다. 합리적인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동성애는 서구 사회의 잘못된 문화로 타락한 문화 속에 정신을 예속시키는 행위"라는 문구 또한 비판이 아닌 비난이다.   

저들의 논평을 읽고 있으면 마치 학문의 전당을 지키는 최후의 수호자를 조우한 듯 마음 한 쪽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러나 그에 비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대한 저들의 지식 수준은 '동성애 비판'을 건전한 학문 연구의 일환이라 주장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교회언론회는 인권위가 권리장전 내 인권 침해 사례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비하 표현'을 언급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성적 지향을 '(동성애)'로, 성별 정체성을 '(트랜스젠더)'로 사실상 등치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성애' 역시 성적 지향의 일부이고 '시스젠더(신체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 또한 성별 정체성에 속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저들의 연구 대상은 성소수자가 아님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교회언론회를 필두로 한 혐오 선동 세력이 강조한 학문의 자유가 '성소수자에 대한 비판적 연구' 수준에도 채 못 미치는 '성경적 원리에 입각한 인신공격'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인 것이다.

어찌하여 일부 교회에서는 '복음'과 '진리'란 말을 빙자하여, '혐오' 옹호를 도모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고대 사회의 그릇된 편견과 차별까지도 무조건 신봉하는 것은 '문화사대주의'이며 타락한 문화 속에 정신을 예속시키려는 발상임을 왜 모르는가?

교회언론회의 '대학원생 권리장전' 권고 비판 논평을 보도한 <크리스천투데이>홈페이지 갈무리
 교회언론회의 '대학원생 권리장전' 권고 비판 논평을 보도한 <크리스천투데이>홈페이지 갈무리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저들은 물었다. "이것이 대학원생들이 가져야 할 '권리장전'인가?" 나는 단칼에 단호히 대답한다. "아니다" 이것은 대학원생들이 가져야 할 '권리장전'이 아니다. 이것은 헌법에 기반한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가치이며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권리장전이고 삶의 자세이다. 평등과 존엄은 대학원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대학원만 제외되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인 양심과 학문의 자유가 실현되고 횡포에 굴하지 않는 길은 고집스러운 절대적 기준과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일이다.

무엇이 횡포이고 독재인지를 똑똑히 마주하길 바란다. 다양성과 존중을 잃었을 때야말로 누구든 독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소수자와 약자를 폄하하고 조롱함으로써 얻는 영광과 환희를 경계하자. 그의 품안에서건 밖에서건 최대한 나를 낮추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자. 우리가 낮아지면 그가 높이시리니.

글을 마치려니 교회언론회의 논평을 보도한 <크리스천투데이>의 기사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인권위, 신대원에서도 동성애 비판하지 말라니…" <크리스천투데이>에도 한 마디 전한다. 무려 '그분'의 말씀이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누가복음 6:36~37)" 아멘.


태그:#성소수자, #인권, #성소수자 인권, #동성애, #인권위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읽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 간격의 시간을 애정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