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가대표 출전의 부담감 탓일까? 연습경기와 평가전에서 14타수 무안타로 침묵하고 있는 최형우

최형우 ⓒ KBO


중남미의 강호 쿠바와의 평가전에서 부진할 때만 해도 아직 몸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B조의 약체로 평가 받는 호주와의 경기에서 침묵하면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KBO리그의 유망주들 위주로 구성된 상무전마저 침묵을 이어가면서 모두가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의 4번타자 최형우(KIA 타이거즈) 얘기다.

최형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KBO리그 최고의 타자다. 비록 홈런왕에 오른 적인 한 번(2011년) 밖에 없지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4번이나 수상했고 최근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최형우가 KBO리그에서 최초로 'FA 100억 시대'를 열었을 때도 '과한 투자'라는 의견은 많지 않았고 김인식 감독도 큰 고민 없이 최형우를 대표팀의 4번 타자로 낙점했다.

하지만 연습 경기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김인식 감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제 대회 개막이 불과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4번 타자가 부진에 빠지면 타선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4일 경찰 야구단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승부사' 김인식 감독은 과감하게 '두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길지도 모른다.

타격 기계의 대타, 대표팀 초보에겐 너무 부담스러웠나

사실 최형우에게 이번 WBC는 프로 데뷔 후 첫 국제대회 출전이다. 수년 동안 명문 삼성 라이온즈의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했고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좌타자로 군림했지만 최형우는 유독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타격기계' 김현수의 존재 때문이었다.

리그에서는 장타력에서 우위에 있던 최형우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시즌도 있었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유독 정확한 타격을 자랑하는 김현수가 중용되곤 했다. 특히 단기전에서는 최형우 같은 홈런타자보다는 김현수처럼 정확한 배트 컨트롤로 정타를 만들어 내는 교타자 유형이 더 효과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현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9년 제2회 WBC,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년 제3회 WBC,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프리미어12까지 8년 동안 정예 멤버가 선발되는 모든 국제대회에 빠짐없이 출전했다. 한마디로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이라면 믿고 선발할 수 있는 대표팀의 모범 선수인 셈이다.

성적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김현수는 6번의 국제 대회에서 38경기에 출전해 타율 .387(137타수53안타) 30타점을 기록했고 특히 프리미어12에서는 타율 .333 11안타 13타점으로 초대 MVP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WBC에서는 소속팀 볼티모어가 차출에 난색을 표했고 결국 대체 선수로 손아섭(롯데 자이언츠)이 발탁되면서 김현수의 국제 대회 7 연속 출전이 좌절됐다. 따라서 최형우는 대표팀의 붙박이 좌익수 김현수의 대타인 셈이다.

대표팀 최고 효자의 자리를 물려 받은 부담이 컸기 때문일까. 리그에서의 실적은 결코 김현수에게 뒤질 것이 없지만 대표팀 경험이 전무했던 최형우는 연습경기에서 19타석째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대호 정도로 국제 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면 알아서 감각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만 이런 큰 국제대회를 치러본 경험이 없는 최형우가 개막전까지 남은 이틀 동안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형우 빠지면 좌익수 민병헌-중심타자 손아섭 대체 유력

만약 김인식 감독이 결단을 내려 최형우를 벤치로 돌린다면 좌익수 자리에는 새로운 선수가 들어가야 한다. 물론 최형우를 대체할 후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외야수 민병헌(두산 베어스)이 있다. 민병헌은 리그에서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꾸준하고 최형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발을 자랑한다(물론 장타력은 최형우가 훨씬 뛰어나지만).

민병헌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단기전의 경험과 집중력이다. 민병헌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톱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5할 3타점8득점2도루로 맹활약한 바 있고 프리미어12에서도 출전한 경험이 있다. 민병헌이 오른손 대타요원이나 대수비로 활용가치가 높아 주전 기용이 망설여 진다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젊은 박건우(두산)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최형우가 4번 자리에서 물러 난다면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롯데)가 4번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미국전과 일본전, 프리미어12 도미니카전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대호의 홈런으로 승기를 잡았던 좋은 기억이 있다.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한 이대호는 어지간한 압박감에 위축되는 스타일도 아니다. 김인식 감독이 타선의 좌우 균형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대호는 최형우보다 먼저 4번 타자 후보로 낙점됐을지 모른다.

'절친 라인' 김태균(한화 이글스)과 이대호가 3, 4번에 배치된다면 5번 타자는 연습경기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손아섭(롯데)이나 큰 경기에 강한 박석민(NC다이노스)이 맡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타선의 무게감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손아섭은 작년 시즌 42도루를 기록했을 만큼 기동력이 좋고 박석민은 통산 출루율이 .411에 달할 만큼 공을 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대회가 개막하면 최형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장타를 펑펑 터트리며 한국의 타선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을 이끌고 세 번째 WBC를 치르는 김인식 감독 입장에서는 당초 구상했던 4번타자가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각 국의 정예 멤버들이 모여 최고를 가리는 WBC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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