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 잭맨의 울버린이 진짜지."

2029년, 새로운 <울버린>이 개봉한다면 우리는 자녀에게 그렇게 말할 것이다. 숀 코너리가 진짜라는 이야기를 <007>이 개봉할 때마다 부모에게 우리가 들었듯이. 2029년을 배경으로 한 <로건>은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의 마지막 영화다. 그래서일까, <로건>은 코믹스 팬이 아니라 휴 잭맨 울버린의 팬들을 위한 영화다. <로건>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려면 지금까지 시리즈를 몰아서 본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제작진이 휴 잭맨에게 바치는 영화이며, 휴 잭맨과 팬들이 함께 한 시간이 만들어낸 영화이다.

다음 세대의 길을 여는 울버린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로건은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로건>은 엑스맨 시리즈 4번 타자의 은퇴 경기이다. 은퇴 경기를 할리우드 스타들이 갖는 것은 그다지 흔치 않다. <크리드>(2015)로 스스로 매듭지은 실베스타 스텔론의 '록키' 캐릭터 정도가 아닐까.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T-800은 이제야 은퇴경기를 치렀고, 시거니 위버의 리플리는 은퇴경기가 없었다. 1990년대의 그들도 이럴 진데, 2000년대 프랜차이즈 캐릭터인 휴 잭맨의 울버린이 은퇴경기를 펼친 것은 상업적으로 대단한 결정이다.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의 상업 가치는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역사가 말해준다. 울버린은 <엑스맨>(2000)에서 엑스맨들의 오프닝을 열었고, <엑스맨> 시리즈 9편에 어떤 식으로든 모두 출연했다. 유일하게 스핀오프로 독립한 1편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서 새로운 엑스맨을 지켜내는 울버린, 2편 <더 울버린>(2013)에서 불멸의 존재 울버린을 그렸다면, 3편 <로건>(2017) 두 테마를 하나로 연결하며 완결성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엑스맨의 오리지널 3부작과 리부트 3부작을 거칠게라도 연결했다. 그 링크 덕에 <엑스맨> 시리즈는 여타 슈퍼 히어로물과 달리 시간의 감수성을 관객에게 전한다.

그러니 울버린은 대연정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엑스맨이었다. 이십세기폭스의 엑스맨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대연정,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평행 영화 세계들이 울버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처럼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판한 이상 휴 잭맨의 울버린이 두 세계를 이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마블 코믹스에서도 울버린은 '어벤져스'의 일원이었다. 만약 J.J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스타워즈> 리부트가 아니라 마블 프로젝트에 영입됐다면, 마블 유니버스 버전의 <프린지>(2008-2013)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마블 코믹스의 <What if> 같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휴 잭맨의 울버린은 그만한 상업 가치를 담보한 캐릭터였다.

휴 잭맨은 박수받으며 떠나는 은퇴 경기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의 길을 연다. 그는 다음 세대에게 엑스맨의 의미나 돌연변이의 가치를 감히 가르치지 않는다. 울버린은 엑스맨 교사 출신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설 형식을 빌려 관객에게 인사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예 영화가 그런 설교 따위를 거부한다. 영화는 설교를 프로페서X에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울버린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울버린은 그저 숨을 헐떡이며 아이들의 길을 연다. 왕년의 4번 타자라고 홈런을 고집하지 않고 힘껏 휘두른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 울버린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이전 <엑스맨> 시리즈의 그 강력했던 울버린은 더 이상 없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널브러진 울버린, 그렇게 영화 <로건>은 시작한다. 카메라는 울버린 얼굴에 패인 상처로 향한다. 치유되지 않는 울버린이라니. 게다가 기껏 깡패들과 싸움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직 헤매고 있을 때 충격적인 설정은 다른 엑스맨으로 이어진다. '프로페서X'는 치매 같은 발작을 일으키고,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으며, 울버린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연극 대사를 읊는다.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를 유명케 만든 셰익스피어 대사들이다) 이런 충격적인 설정과 장면들은 <엑스맨>(2000)에서 울버린과 프로페서X가 처음 등장한 장면들을 희미하게 오마쥬한다. 동시에 그 시작을 떠올린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당신들이 기대하는 울버린이 아니라 휴 잭맨의 '로건'을 이야기할 거라고 운을 뗀다.

이 설정들은 모든 관객들에게 충격적일까? 아닐 것이다. 울버린이 겪는 상황들이라는 게 그래 봤자다. 팀의 와해, 유사 가족, 흑화된 자아처럼 할리우드 시리즈물 3편쯤에 등장하는 진부한 것들이다. 그마저도 엑스맨과 울버린의 역사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객에게 진부함은 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로건>은 새로운 관객을 데려오겠다는 블록버스터로서 전술적인 확장성은 약하다.

대신 <로건>은 흩어진 팬들을 집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엑스맨의 일원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17년을 함께 한 동지들을 차근차근 설득하며, 울버린 시대의 마지막을 팬들과 함께한다. <로건>의 전개는 울버린의 상황을 팬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다.

울버린이 노안 때문에 안경을 쓰고, 살기 위해 도망치고, 나오지 않는 갈고리 하나를 잡아 빼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장면들일 테지만 2000년부터 울버린을 봐왔던 팬들은 하나하나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로건>은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에요?'하고 되묻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시가를 챙겨가는 장면을 굳이 클로즈업해주거나 더부룩한 수염을 아이들이 울버린 스타일로 깎는 에피소드를 넣어서 당신의 울버린이 맞다고 확인시키면서 설득한다.

의도된 R등급의 울버린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돌연변이와 인간의 화합을 꿈꿨던 프로페서X, 그러나 이 세계에서 그의 꿈은 실패하고 말았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로건>이 기존 팬들에게 충실해지려는 전략은 관람등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건>의 미국 관람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 격인 R등급이다. 제작진의 의지가 다분하다. '힛걸' 또래의 '로라'가 상대의 머리통을 스크린 정면으로 집어 던지는 등 피칠갑 액션씬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더 울버린>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가 액션 수위를 조절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그런데 의지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더한 장면이 있다. 리무진 여성고객이 로건에게 가슴을 노출하는 장면, 제작진의 의지는 거기에 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 거기서 R등급 확정이다. 이 장면이 얼마나 쓸모없냐면 내용 전개상은 물론이고 노출 수위로도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으려면 차라리 <더 울버린>에서 그랬어야 했다.

이렇게 의도적인 R등급은 출입증이 된다. 최초의 울버린부터 봤던 관객들은 <로건>을 통과할 수 있고, 리부트 <엑스맨> 팬들이나 진행 중인 MCU로 이제 막 진입한 10대 팬들은 통과할 수 없다. 게다가 성인 팬들조차 자녀들에게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을 보여줄 수 없다. <로건>의 R등급은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일부러 연민을 강요하지 않는 장치이다.

그렇게 <로건>은 기꺼이 울버린과 관객의 관계에 의존한다. 기존 팬들만 이해하도록 전편 복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만이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로건>은 팬들과 함께 한 시간을 이해한 영화이다. 팬덤을 집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피날레가 될 수 있을까? 팬덤을 믿지 않았던 <판타스틱4> 시리즈의 몰락이나 새로운 스파이더맨이라고 우기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식상, 얼굴을 바꿔가며 연명하는 <슈퍼맨> 시리즈의 지루와 비교하면, 휴 잭맨의 울버린은 승자다.

폐족이 된 울버린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엑스맨: 울버린 탄생> 때의 울버린. 그러나 <로건>의 울버린은 이 때의 울버린과 다른 세상의 울버린이나 다름 없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렇게 팬을 설득하면서 <로건>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 <로건>의 배경은 돌연변이들의 화려한 시대가 저문 상태다. 이런 설정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은 그들이 일상으로 회귀하려는 새벽이라면, <로건>은 그들이 돌아갈 수 없는 황혼이 깃든 시대다. 모종의 사건으로 엑스맨들은 도망자 신세가 됐고, 돌연변이도 더는 태어나지 않는다.

오프닝에서 울버린과 깡패들의 싸움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깡패들은 울버린의 갈고리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아냥거린다. 기존 시리즈처럼 돌연변이라서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그들은 울버린을 아예 모르고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울버린이, 사람들에게 잊힌 것이다.

<로건>에서 울버린의 갈고리는 여러모로 참담하다. 영화 속에서는 실제 영웅인 울버린이, 영화 속에서도 그저 영화 캐릭터인 프레디 크루거에 비교하는 대목은 울컥하게 한다. 울버린 이전, 갈고리를 상징했던 캐릭터는 <나이트메어>(1984)의 프레디 크루거였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8)의 피셔맨은 프레디의 갈고리를 더 강화할 뿐이었다. 그 갈고리의 잔혹한 이미지를 21세기 첫해에 영웅의 것으로 바꾼 게 휴 잭맨의 울버린이다. <로건>에 악몽과 프레디가 언급되는 것은 그 공로에 대한 찬사이면서 프레디가 등장했던 1980년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울버린의 불안감이다.

울버린들이 폐족이 된 사건을 영화는 구체적으로 털어놓지 않는다. 다만 그 원흉은 정확히 지적한다. 프로페서X다. 그는 선한 의도로 매그니토 등과 늘 연정을 희망하지만, 결과는 매번 대참사를 가져왔던 캐릭터다. 그런 그가 결국 저질렀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뇌가 병에 걸렸다는 극 중 평가는 프로페서X의 꿈이 얼마나 천진난만했는지, 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설명하는 대사다.

울버린들의 상황은 시리즈로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솔직히, 울버린을 비롯한 오리지널 엑스맨들보다 <데드풀>과 <어벤져스>의 후속작을 더 기다린다. 그런데 <로건>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처럼 과거를 볼모로 삼지 않는다. 프로페서X가 진두지휘하는 리부트 3부작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려고 했다면 울버린에게는 프로페서X 주도의 엑스맨보다 더 쉬운 선택지가 있었다. 코믹스 원작의 울버린 아들 캐릭터를 등장시켰다면 <더 울버린>(2013)에 <로건>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였을 것이다. 그 아들은 울버린의 적자를 주장하면서 다음 시리즈로 영화 팬덤을 찍어 눌렀을 수 있다. 그러나 <로건>은 기존 돌연변이들과 단절된 돌연변이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로건>이 팬들에게 설득하는 지점이 거기다. 시대가 끝났다고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돌연변이와 울버린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X-23'의 등장.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로라'의 등장.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새로운 돌연변이들이 등장하면서 <로건>에서 울버린 역할은 <더 울버린>보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맞닿아있다. 울버린은 다시 한번 10대 돌연변이들을 탈출시킨다. 차이는 10대 돌연변이들의 태생에 있다. 기존 돌연변이들의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번 돌연변이들의 능력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두 시간대를 연결하는 돌연변이가 울버린이면서, 양측의 정체성을 모두 지닌 돌연변이가 로건이다.

새로운 아이들, 즉 거대한 프로젝트에 따라서 기획된 돌연변이들은 휴 잭맨의 울버린을 현재 둘러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엑스맨> 3부작에 이어질 스핀오프들을 비롯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기획물들, DC 확장 유니버스 기획물들이 휴 잭맨의 울버린을 늙게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가버린 것이다.

예컨대 울버린은 돌연변이들이 탈주하려는 '에덴'을 부정한다. 그 실체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연변이 아이들은 울버린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울버린의 지적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들은 에덴을 믿는다. 아이들에게 엑스맨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만화 속 주인공들일 뿐이다. 아이들은 누군가가 아니라 방향을 믿는 것이다. 울버린과 로라가 운전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처럼, 잠든 울버린을 놔두고 가는 장면처럼, 아이들이 길을 가는 것은 울버린의 몫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시대가 끝난 울버린은 길을 열어줄 뿐이다. 그게 그의 몫이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은 울버린의 자부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울버린은 현재 관객들이 더 기다리는 여타 슈퍼 히어로물의 DNA라는 자부심일 것이다. 영화 속 아이들이 코믹스 원작 울버린의 나라 캐나다를 향해 뛰는 이유일 것이다. 실패하면 버려지는 상품이 아니라 긴 시간을 팬들과 함께 한 영웅이 울버린이다.

팬들과 함께한 울버린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휴 잭맨의 울버린과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휴 잭맨의 울버린 팬 입장에서 <로건>을 보면, 이질적인 장치는 <쉐인>(1953)이다. 영화 울버린의 팬은 서부영화 세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쉐인>을 주요하게 사용한다. 그렇다고 감독의 전작 <3:10 투 유마>(2007)나 휴 잭맨이 언급한 <용서받지 못한 자>(1993)를 차용하면서까지 울버린의 울타리를 벗어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화 속 로라의 입장에서 <쉐인>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앞으로 2029년까지 12년 동안 <로건>을 비롯한 울버린 시리즈는 케이블 채널에서 지겹도록 나올 것이다. 그걸 보는 아이들에게 "너는 이런 영화나 보니?"하며 우리는 핀잔을 놓을 것이다. 맞다, 울버린이 로라에게 그랬듯이, 우리는 그럴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울버린이 될 것이다. 울버린이 <로건>을 통해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쉐인처럼 울버린은 떠났지만, 그렇게 우리 시대의 울버린은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울버린이 끝까지 아다만티움 총알 하나를 아낀 이유다.

휴 잭맨 엑스맨 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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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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