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2016) 관련 인터뷰 당시 김기덕 감독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 당시 홍상수 감독의 모습.

<그물>(2016) 관련 인터뷰 당시 김기덕 감독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 당시 홍상수 감독의 모습. ⓒ 머리꽃, 이정민


김기덕과 홍상수 감독의 존재는 국내 영화계에서 특별하다. 동갑내기면서 데뷔 년도 또한 1996년으로 같고, 무엇보다 한국 상업영화가 막 기지개를 켤 무렵 이미 세계무대로 눈을 돌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눈도장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미 한국영화의 상징이 된 두 감독은 사실 몇 가지 제반 조건과 행보가 겹친다는 것만 빼고는 너무도 다르다. 각기 독자적인 창작자로서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간 선보인 작품의 주제의식과 더불어 배우 기용에서 더욱 차이를 보이는데, 두 감독을 둘러싼 가십거리가 아닌 바로 이 지점에 방점을 찍어보자.

거절만 당하던 감독을 배우가 찾다

영화 <악어>(1996)로 데뷔하기 전까지 김기덕 감독은 국내 영화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었다. 미술학도로 창작욕을 불태우다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당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 1994년과 1995년 연거푸 입상하며 영화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때 의기투합한 이가 바로 배우 조재현. 연고 없는 감독을 만난 조재현은 선뜻 출연을 결정했고, 이윽고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 이후로 조재현은 김기덕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큼 여러 작품에 함께 했다. <악어>를 시작으로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섬>(2000), <수취인불명>(2001), 그리고 <뫼비우스>(2013)까지 6편이다. 가히 김기덕의 페르소나다. 조재현 출연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한 라디오 프로에서 "당시 조재현이 출연료가 쌌다"며 우스갯소리처럼 답했지만, 사실 김기덕 감독의 캐스팅은 거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골적이고 거친 폭력 묘사, 기존 영화 문법과 다른 표현 등으로 김기덕 감독은 국내 영화계에서도 늘 이방인이었다. <섬>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 <사마리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까지 받았지만, 배우 캐스팅에 있어선 우위에 서진 못 했다. 특히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고백했듯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를 주로 찍어온 탓에 배우들의 출연료 또한 평균 수준 이상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영화 <나쁜 남자>의 한 장면.

영화 <나쁜 남자>의 한 장면. 배우 조재현(우측)과 서원이 호흡을 맞췄다. ⓒ 김기덕필름


이쯤해서 조재현의 말을 들어보자. <악어> 출연 직전 조재현은 MBC 촬영감독이기도 한 친형을 사고로 잃고 연기에 회의를 느껴 배우의 길을 포기하려던 참에 김기덕을 만났다. "기존 감독과는 달랐고, 시나리오를 보니 연기로 모든 걸 표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그가 몇몇 인터뷰에서 밝힌 김기덕의 인상이었다. 감독과 시나리오 특유의 힘을 알아본 것이다. 실제로 조재현은 이후 김기덕 감독이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을 실어주는 좋은 동료가 됐다.

이밖에도 장동건(<해안선>), 오다기리 죠(<배우는 배우다>), 이나영(<비몽>), 류승범(<그물>) 등이 김기덕을 먼저 찾아온 경우다. '베니스의 남자'로 불리며 김기덕 영화가 어느 정도 세계영화제의 단골이 되었고, 연기적 갈증을 채워줄 이야기의 힘을 믿는 톱배우들이 소속사를 통해 혹은 지인을 통해 김기덕 감독과 작업을 희망하는 사례가 이어졌던 것이다.

김기덕의 한 수

 영화 <피에타> 촬영 현장. 김기덕 감독이 동선을 체크한 후 현장 지시를 내리고 있다.

<오마이스타>가 단독 보도했던 영화 <피에타> 촬영 현장. 서울 청계천 인근 상가에서 김기덕 감독이 스태프들과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선필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다. 김기덕 감독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얼추 두 가지 특징이 있으니, 여러 이유로 대중에게 잠시 잊힌 기성 배우이거나 상대적으로 영화계에선 주목을 덜 받는 신인이라는 점이다. <섬>의 주연인 김유석, 서정을 비롯해 <나쁜 남자>에서 조재현의 상대역이었던 서원, <빈집>의 재희, <시간>의 성현아 등이다. 곧 촬영에 들어갈 신작 <포크레인>에서 엄태웅을 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성매매 사건'으로 주춤한 그를 영화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감독의 복안이 읽힌다.

이를 두고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깊은 한 영화인은 "감독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하고 촬영일정 역시 (저예산이라) 촉박하기에 배우의 연기보단 작품에서 표현하려는 주제가 잘 드러나면 빨리빨리 컷을 넘기는 편"이라며 "어지간한 내공 있는 배우가 아니고선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소모되기 쉬운 면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톱스타나 <시간>에 출연했던 하정우, <피에타>의 조민수를 제외하면 김기덕의 배우들의 이후 소식이 요원하다. 국제영화제에서 눈도장을 받았을지언정 국내영화계에서 이 배우들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배우를 직접 접촉하는 홍상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홍상수 감독은 김기덕에 비하면 보다 주류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와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데뷔하자마자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급부상한다. 해당 작품은 밴쿠버영화제 용호상을 받았고, 그의 또 다른 영화 <강원도의 힘>(1998)이 칸영화제 초청을 받으며 이후 8편의 작품이 칸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김기덕이 '베니스의 남자'라면 홍상수는 '칸의 남자'라는 별명이 가능한 이유다.

김기덕이 자신의 세계를 철저히 영화에 투영한다면 같은 저예산이지만 홍상수 감독은 간단한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대부분 현장에서 열어두고 촬영하는 편이다. 그의 언론 인터뷰 말을 빌리면 "절반 정도를 짜놓고, 40%는 촬영 당일 오전에, 나머지 10%는 촬영하면서 더하는 편"이다. 그와 작업한 여러 배우가 "촬영 전 전체 시나리오를 받는 게 아니라 당일 아침 나오는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했다"고 고백한 데서 알 수 있는 만큼 그는 현장과 배우의 기운을 중시한다.

홍상수 감독과 관계가 있는 한 지인은 "배우를 직접 연락해 만나고 대화를 나눈 뒤 촬영을 시작하는 분"이라며 "배우 입장에선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경험하면 자신이 가진 잠재력이나 능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김의성 역시 영화계를 떠나 베트남에 머물며 사업하던 때 홍상수 감독의 연락을 받고 <북촌방향>(2011)에 출연하며 다시 복귀하게 됐다. 김의성은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며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바로 잡아주시는 분"이라고 홍상수 감독에 대해 회상했다.

이선균, 정유미, 유준상, 문소리, 권해효, 심지어 프랑스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 그리고 최근엔 김민희 등. 홍상수 감독과 두 번 이상 작품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다. 모두 홍상수 감독이 직접 연락해 대화하고 이야기 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중 한 장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중 한 장면. 홍상수 감독은 배우를 직접 섭외한다고 한다. ⓒ 전원사


2012년 칸영화제에서 <다른 나라로> 인터뷰한 홍상수 감독은 기자에게 "일상은 금광과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게 일상 그 자체라는 뜻인데, 배우를 섭외할 때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캐스팅에 대해 그는 "우연히 어떤 배우 이름을 말해봤을 때, 아니면 TV를 보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들을 보면 연락을 해보는 편"이라 말한 바 있다.

좀 거친 비유로 정리해보면 김기덕 감독이 밑바닥 세계에서 철저히 배우를 굴리고 구기기에 망설임 없는 제련공이라면, 홍상수 감독은 땅에서 한 발을 떼고 배우를 통해 세상을 비틀어 보게 하는 몽상가에 가까워 보인다.

이제 곧 칸영화제 출품일이 다가온다. 아마 또다시 이 감독들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릴 것이다. 분명한 건 두 감독 모두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궁핍했던 때에 등장해 그 틈을 채운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그 어떤 가십을 떠나 이 부분은 충분히 기억하고 인정해야 할 공로다.

홍상수 김기덕 김민희 엄태웅 베를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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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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