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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애국자의 빨간안경 이제 스스로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빨간색 안경은 벗어버려야 한다. 지금 시대에 '애국자'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빨간색안경을 낀 모습은 절대 아닐 것이다.
▲ 자칭 애국자의 빨간안경 이제 스스로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빨간색 안경은 벗어버려야 한다. 지금 시대에 '애국자'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빨간색안경을 낀 모습은 절대 아닐 것이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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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국가를 사랑하는가

퀴즈 하나, 독일의 제 3대 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에게 '국가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다음 중 그의 대답은?

1)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
2) 나는 국가를 사랑한다
3) 아, 뭐라고? 나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아, 내 부인을 사랑하지

퀴즈 둘, 한국에서 막 독일로 여행 온 당신은 길을 걷다가 다소 과격해 보이는 시위대들을 마주했다. 완전무장한 독일 경찰들도 보인다. A그룹은 사람들이 독일 국기를 들고 있고, B그룹은 박스 따위를 찢어서 만든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안전할까?

1) A그룹 방향
2) B그룹 방향

첫 번째 퀴즈의 정답은 3번, 두 번째 퀴즈의 정답은 2번이다. 첫 번째 퀴즈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국가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과연 올바른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이 '아, 뭐라고? 나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아, 내 부인을 사랑하지'라고 대답했다면 한국의 애국보수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970년대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국민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했을 때, 같은 시기 먼 나라 독일의 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은 '나라 사랑'보다는 '부인 사랑'을 이야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했지만, 독일의 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은 스스로를 '국가'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는 왜 굳이 '국가'라는 단어 대신 '국민'이라는 단어를 강조했을까?

대통령이 섬겨야 할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을 구스타프 하이네만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세'라는 것은 '국기'에 대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부인에 대한 낭만적 사랑고백이 아니다. 그는 애국주의, 민족주의가 얼마만큼 끔찍한 일들을 초래하는지를 세계 1, 2차 대전을 통해 몸소 깨달은 정치인이었다. 독일인들은 '국가'보다는 '부인'을 사랑하는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했다.  '국가는 사랑하지 않지만 부인은 사랑한다'는 그의 고백은 지금도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의 명언들 중 하나이다.

Vorwaets 화면캡처 독일 제 3대 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을 기리는 우표를 설명하는 모습
▲ Vorwaets 화면캡처 독일 제 3대 대통령 구스타프 하이네만을 기리는 우표를 설명하는 모습
ⓒ vorwaerts.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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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뒤틀린 애국자들

두 번째 퀴즈는 어쩌면 이제 한국에서도 유효할 수 있겠다. 나는 종종 베를린 거리에서 독일 국기를 들고 집회를 하는 시위대들을 마주한다. 그럴 땐 가던 길도 돌아간다. 만에 하나라도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자칫 알 수없는 비웃음 또는 비하 발언을 들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일 국기를 들고 있는 극우주의자들의 집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일례로 극우주의자들 100명이 독일 국기를 펄럭이며 집회를 한다면, 1000명의 사람들이 반극우 집회를 벌인다. 두 그룹은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그렇다고 반극우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독일국기를 극우주의자들에게 뺏겼다며 덩달아 독일 국기를 들고 나오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저 평화, 사랑이라는 단어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올 뿐이다.

한편 애국+보수+국기의 조합은 일찍이 유럽사회에 존재해왔다. 특히 독일에서는 '애국적 유럽인들'이 사회적인 골칫덩어리로 취급당한 지 오래다. 그들은 '페기다'(Pegida)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라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태극기집회와 독일의 페기다집회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자부한다.
둘째, 국기를 집회에서 펄럭인다.
셋째, 남성들이 시위대의 다수를 차지한다.
넷째, 시위대 중 군복을 입거나 군화를 신은 사람들이 있다.
다섯째, 자신과 다른 생각의 사람을 '적'이라 규정한다.
여섯째, 독재자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다.
일곱째, 가짜 뉴스를 생산, 배포, 맹신한다.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 태극기집회 구성원들은 '빨갱이' 혹은 '종북'을 혐오하고, 페기다 집회 구성원들은 '외국인'을 혐오한다. 또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몇몇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태극기집회를 옹호하지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과 극우주의정당을 제외한 대다수의 독일 정치인들은 페기다를 매섭게 공식적으로 비판한다.

독일의 극우주의자들은 자국의 국기만을 들고 나오지만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은 태극기뿐만 아니라 성조기도 들고 다닌다. 한국 극우주의자들은 한손에는 태극기를, 한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애국'을 외친다는 면에서 국수주의의 카테고리에도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자신들의 국가를 타국에 자진해서 종속시키는 국수주의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태극기 집회에서 나오는 혐오발언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들에 대해 법률상 제재조치가 가해진다.

그 예로 작년 말 독일 드레스덴 지방법원은 페기다의 창립자인 룬츠 바흐만에게 9,600유로(한화 약 1천 백만원)의 벌금이 선고되었다. 그는 난민들을 동물로 비유하는 욕설을 함으로써 혐오분위기를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얼마 전 2월 초, 독일-터키계 소설가 아키프 피린찌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난민혐오를 선동하는 글을 게시하여 11,700유로(한화 약 1천 3백만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문장 180개마다 65유로의 벌금이 선고된 것이다.

Derwesten 화면 캡처 자칭 애국유럽인들인 페기다가 독일 국기를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 Derwesten 화면 캡처 자칭 애국유럽인들인 페기다가 독일 국기를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 derwest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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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이라는 허울 좋은 사이비

독일 극우주의자들이 집회 때마다 국기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아시아계 외국인 여성인 나에게 '독일국기'는 일종의 '위험 시그널'로 작동한다.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하는 네오나치와 독일 축구 훌리건들이 둘러매고 있는 '독일 국기'는 '그들만의 국가'를 상징한다.

'국기'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극우주의자들이 '국기'에 부여하는 배타적 상징성이 불편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의 '애국'은 '너'와 '나'를 구분하고 '당신들'과 '우리들'을 나누고 '우리'외의 사람들을 적대하는 사회적 증오를 생산해낸다.

이는 비단 독일이 전쟁범죄 국가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국기에 대한, 국수주의에 대한 불편함만은 아닐 것이다. 독일 극우주의자들의 옷에 붙어있는 '나는 독일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문구패치를 보며 독일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러운 것은 민족 우월주의적 사고로 비치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 특정 인종인 것 자체가 '자랑'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국민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했던 독재정권은 국민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무화했다. 이것은 그동안 정권이 국민 위에 굴림하고 국민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강력한 프로파간다였고 일종의 상징폭력이었다.

상징폭력은 '태극기'라는 대상을 통해 '애국심을 갖고 있는 옳은 국민'이라는 개념을 전형화 한다.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하는 것은 애국자들의 '당연하고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러한 상징폭력은 '애국'이라는 개념을 일원화하고 축소화시킨다.
이제 태극기를 들은 자는 곧 '애국자'이고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허울 좋은 프레임은 깨버려야 할 때가 왔다.

결혼은 국가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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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독일해외통신원. 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있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었는데도 '편집' 잘 모르겠네요.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