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A조 감독 기자회견에서 각국 감독들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리 웨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 헨슬리 뮬렌 네덜란드 감독, 궈타이위안 대만 감독, 김인식 한국 감독.

지난 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A조 감독 기자회견에서 각국 감독들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리 웨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 헨슬리 뮬렌 네덜란드 감독, 궈타이위안 대만 감독, 김인식 한국 감독. ⓒ 연합뉴스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은 1회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바탕으로 내심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2승1패의 성적을 거두고도 득실점률에 밀려 1라운드에서 조기탈락하고 말았다. 한국 야구는 WBC나 올림픽 등 정예멤버가 출전했던 국제대회에서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팬들이 받은 충격과 실망은 더욱 컸다.

2013년 WBC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복병' 네덜란드에 대한 정보 부족이었다. 한국은 네덜란드를 야구의 변방 유럽에 위치한 약체 정도로 취급했고 그 결과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0-5로 완봉패를 당했다. 중남미에 위치한 카리브해 네덜란드령 퀴라소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된 네덜란드는 사실상 중남미팀으로 분류해도 좋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3회 대회 '미지의 팀'이 네덜란드였다면 이번 대회 전력 노출이 가장 되지 않은 팀은 단연 이스라엘이다. 예선에서 영국, 브라질 등을 제압하고 본선에 진출한 이스라엘은 42위라는 세계 랭킹이 말해주듯 세계무대에서 전력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단 한 명 이스라엘 대표팀에도 한국 팬들에게도 제법 익숙한 이름이 있다. 바로 오는 6일 한국과의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할 예정인 '이스라엘의 박찬호' 제이슨 마키가 그 주인공이다.

세인트루이스 이적 후 싱커 익혀 6년 연속 10승 달성

1978년 뉴욕에서 태어난 마키는 사실 미국 국적의 선수지만 부모와 조부모의 국적을 따를 수 있는 WBC룰에 따라 이스라엘 대표팀을 선택했다. 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1라운드(전체35순위)로 지명된 마키는 2000년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2003년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던 마키가 빅리그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003 시즌이 끝나고 트레이드를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후였다.

2004년 세인트루이스 선발진의 막내로 합류한 마키는 이적하자마자 15승을 따내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2005년에는 마운드에서 13승을 올렸을 뿐 아니라 타석에서도 타율 .310 1홈런10타점의 성적으로 투수 부문 실버 슬러거에 선정되기도 했다. 우발도 히메네스(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함께 콜로라도 로키스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2009년에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마키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3개 팀을 오가며 6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매우 꾸준한 투수였다. 물론 마키가 우승을 노리는 팀의 원투펀치로 활약하기엔 무게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마키는 어느 팀에 가더라도 3~5선발로 꾸준히 한 시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하지만 마키의 전성기는 콜로라도에서 하산한 후 빠르게 저물고 말았다, 2010년 워싱턴 내셔널스와 2년1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한 마키는 2010년 2승, 2011년 8승으로 부진했고 이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미네소타 트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거쳤지만 다시 10승 투수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4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트리플A 팀에서 재기를 모색하던 마키는 시즌 내내 한 번도 빅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5년에는 신시내티 레즈의 유니폼을 입고 9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3승4패 평균자책점 6.46으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77경기 124승118패 4.61. 썩 화려하진 않았지만 올스타 출전과 월드시리즈 우승, 개인 통산 100승 등 꽤 의미 있는 기록들을 만든 마키의 15년 빅리그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개막전서 마키를 공략하면 1라운드가 술술 풀린다

2016년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듯했던 마키는 작년 9월 이스라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WBC 예선 브루클린 라운드에 다시 등장했다. 영국과의 첫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1실점을 기록한 마키는 3일 후 본선 진출국을 가리는 영국과의 재경기에서 4이닝 5탈삼진 퍼펙트 투구로 이스라엘을 WBC본선으로 이끌었다.

한국전 선발 투수로 낙점된 마키는 애틀랜타 시절 90마일 후반의 공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지만 30대 후반이 된 현재는 더 이상 그런 빠른 공을 던질 수 없다. 대신 세인트루이스 이적 후에 익힌 싱킹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많은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다. 비교적 낮은 삼진율에도 마키가 6년 연속 10승 투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마키와의 대결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투수가 바로 마키이기 때문이다. 마키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한다면 경기 중반 이후에 등판할 투수들에게도 상당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마키의 투구수를 늘려 그를 일찍 강판시킨다면 나머지 투수들도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간다는 점에서 마키의 공략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스라엘 타선에는 2012년 뉴욕 메츠에서 32홈런을 기록했던 아이크 데이비스를 비롯해 타이 켈리, 샘 플루드 등 빅리그 출신 타자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1라운드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네덜란드에 비하면 결코 강한 타선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한국 대표팀에게는 마키의 공략 여부가 개막전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된다.

유대계 미국인 마키는 이스라엘 국적의 선수로는 압도적으로 화려한 빅리그 경력을 바탕으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박찬호'로 불러도 무방하다(심지어 두 선수는 빅리그 통산 승수까지 같다). 한국 대표팀이 마키를 상대로 활발한 타격을 펼치며 이스라엘을 손쉽게 제압한다면 남은 WBC 1라운드 일정도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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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개막전 이스라엘 제이슨 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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