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5) 촬영을 시작할 당시, 박강아름 감독은 '모태솔로'였다. 자신에게 왜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지 고민하던 감독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지인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대부분의 남성들이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감독의 외모와 옷차림을 지적한다. 그 이후부터 감독은 남자친구가 생기기 위해 외모를 가꾸기 시작하고,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개팅은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감독은 뚱뚱하고 예쁘지 않는 자신을 찍는 작업에도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2008년에 시작하여, 2015년 촬영과 편집을 모두 완성하는 동안 박강아름 감독은 신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 사이 박강 감독은 그토록 원하던 연애를 통해 기혼 여성이 되었다. 현재 박강아름 감독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차기 작업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만약에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박강아름 감독 스스로를 자조하며 시작한 다큐멘터리 촬영이었다면, 그녀는 극구 결혼 이후 이 작업을 완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감독 스스로 육체를 찍는 셀프 카메라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통념을 파고드는 일종의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이다.

예쁘지 않아 애인이 없다고?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한 장면 ⓒ 아름필름


영화에 등장하는 박강아름 감독의 지인들은, 박강 감독이 예쁘지 않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가 아니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다. 일부 학생들은 타인(남자)의 시선에 맞게 여성이 외모를 꾸미는 것을 당연하듯이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말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는 있지만, 속이 상할대로 상한 박강 감독은 '자신이 진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외모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고 박강아름 감독이 결혼을 한 뒤에도 학생들과 지인들의 박강 감독에 대한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지적은 계속 된다. 하지만 30대 기혼여성이 된 박강아름 감독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지적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예전처럼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신경쓰며 외모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연애(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으니 남편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굳이 외적으로 잘 보여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는 사회적 통념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내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대해서 강한 문제 의식을 느껴왔던 박강아름 감독이지만, 그녀는 남성과 연애를 하고 싶었고, 원활한 연애를 위해서는 대다수 한국 남성들의 마음에 들 법한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했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를 만들기 위해 외모를 치장했던 박강아름 감독은 참다 못해, 다소 특별한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라는 타이틀의 명명 하에 박강아름 감독은 히피스타일, 교복입은 여고생, 재미교포 스타일, 히잡 쓴 여성으로 차례대로 분장한다.

박강아름 감독이 히피스타일 차림으로 그녀가 다니는 대학원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상우 감독을 비롯한 박강 감독의 지인들은 그녀의 미모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박강아름 감독이 몸을 태우고 재미교포 스타일로 이태원을 활보 했을 때는, 외국 남성의 적극적인 대시가 있기도 했다. 반면, 박강아름 감독이 교복을 입었을 때는 박강 감독 또래 이상 성인들은 "어려 보인다"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지만, 그녀가 가르치는 중학생 제자들은 박강 감독의 두꺼운 다리와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를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박강아름 감독이 고시생 스타일을 흉내낸다고 트레이닝 바지만 입고 거리를 나서야할 때는,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옷차림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일찍이 촬영을 중단하여 눈길을 끌었다.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지만, 자신의 얼굴과 몸을 찍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는 박강아름 감독의 예상치 못한 고백은 외모 지상주의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더라도, 정작 타인의 시선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감독 스스로도 자유롭지 않은 '외모지상주의'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한 장면 ⓒ 아름필름


박강아름 감독은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의 연출 의도에 대해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불편하고 부당하게 여기는 여성마저 그것이 내면화되어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요하는 현실만 꼬집지 않는다. 자본과 결탁한, 사회적 미적 기준은 수많은 매스컴을 통해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대한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박강아름 감독이 영화를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과정들에 의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모를 가꾸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박강아름 감독 자신 또한 이러한 인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박강아름 감독이 인생 최대 목표 였던 연애에 성공하고, 결혼을 해도 사람들은 박강아름의 육중한 체구와 단정한 옷차림을 지적한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지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사회적 미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사람들을 '바로' 잡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아 왔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영화 감독에, 고등학교 예술강사로 일했던 박강아름 감독은 자신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외모에 대한 차별은 덜 받은 편이다.

외모도 스펙이라는 세상에서, 취업 시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원활한 취직을 위해 직장에서 요구하는 단정한 외모로 가꿔야 한다. 지금도 많은 직장에서는 여성 직원들에게 사내 복장 규정을 강요하기도 한다. 교사가 어떤 옷을 입어야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많은 학생들은 선생으로서 적합해 보이지 않다는 박강아름 감독의 옷맵시를 비판한다. 결혼의 유무를 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늘상 외모 지적을 받고, 타인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보기 좋은 외모를 보여줄 것을 요구받는다.

사회적으로 깊게 뿌리박힌 외모 지상주의는 쉽게 타파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에 순순히 따르는 듯 했던 박강아름 감독은 '가장무도회' 형식으로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세상에 유쾌한 반기를 든다. 물론 그녀만의 소심한 저항은 곧 멈추게 되었고,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그러나 박강아름 감독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남편과 함께 7년 동안 묵혀 두었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세상에 공개된 그녀만의 가장무도회는 사람들의 내면을 잠식한 외모 지상주의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안겨 준다.

박강아름 감독의 의도대로, 그녀의 가장무도회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보고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들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내면화 되어버린 외모지상주의를 재치있게 꼬집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라 할 수 있겠다. 제20회 인디포럼 올해의 돌파상 수상작이며,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1회 앙코르 영화제'(The Festival of Film Festivals, 아래 FoFF 2017)에서 상영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포스터. ⓒ 아름필름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외모 지상주의 여성 페미니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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