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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한 강연이 화제다. 지난 1월 11일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이 부산지방법원장을 이임하며 특강한 것인데, 조회수가 무려 79만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 모바일, SNS의 파도 위에서의 생존전략'이라는 제목의 이 강의는 주로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기술의 혁신이 가져오는 혼돈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강 관장이 특히 강조한 것은 '삶의 정도(正道)'이다.



<삶의 정도>는 우리나라의 경영학 구루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강 법원장은 이 책을 자신의 40년 독서인생 중 첫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너무 심금을 울린 나머지 무려 10회를 정독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자식, 손자, 며느리, 사위, 지인 등에게 당장 사서 선물하라며 필독을 권했다. 강 법원장의 이런 권유 때문인지 2011년에 출간된 <삶의 정도>는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인기를 끄는 걸까.

"복잡함(complexity)을 떠나 간결함(simplicity)을 추구하라."

윤석철 교수가 책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문자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6천 자가 넘는 쐐기문자와 상형문자들의 복잡한 체계가 20여 개의 글자로 간결화하면서 문명개화의 가속화가 시작됐다.

숫자도 마찬가지다. 10개의 숫자를 사용하는 십진법 대신 2개의 숫자만을 사용하는 이진법의 간결성 덕분에 컴퓨터가 만들어졌고, 디지털 혁명이 시작됐다. 윤 교수는 '0'과 '1'이라는 2개의 숫자만으로 모든 숫자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이진법의 위력에서 영감을 받아 2개의 요소만으로 삶의 복잡한 세계를 분석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론을 연구했다.

<삶의 정도> 표지
 <삶의 정도>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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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정의다. 그가 말하는 목적함수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방향이며, 수단매체란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적 도구다. 그렇다면 목적함수와 수단매체의 사례는 무엇일까.

2010년 8월 일어난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를 예로 들어보자. 칠레 정부는 매몰된 광부들을 크리스마스에나 구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이것은 광부들에게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구출 시간 최소화'를 목적함수로 삼았다.

목적함수 달성을 위해 예정했던 드릴 공법에다 망치 공법을 수단매체로 추가했다. 그 결과 구출시간이 두 달 이상 단축됐고 매몰 광부 모두가 구출됐다. 비용 절감 같은 복잡한 문제를 제거해 간결화하니 성공적으로 인명 구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 교수에 따르면, 목적함수와 수단매체 사이에는 궁합도 중요하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한 수단매체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활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목적함수가 빈약하다면 그 수단매체는 무용지물이다.

반대로 아무리 드높은 목적함수가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수단매체가 없다면 그 목적함수 역시 실현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만다. 따라서 인간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① 목적함수를 정립하고, ② 그 목적함수에 가장 적합한 수단매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Tomorrow is another day."

윤 교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예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제작자 데이비드 젤즈닉과 감독 빅터 플레밍은 '약하기를 거부하는 강인한 여성, 의지와 욕망과 자존심이 너무나 강한 여성, 그래서 그것이 현실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좌절하고 흐느끼는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렇게 정립된 목적함수에 맞는 첫 번째 수단매체, 즉 여주인공이 중요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베티 데이비스, 캐서린 헵번 등은 젤즈닉과 플레밍의 성에 차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들은 대서양 건너 영국까지 가서 비비안 리라는 적임자를 찾게 된다.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는 제작자와 감독의 기대를 충족했다. 1939년 제작된 이 영화는 400만 달러의 투자로 8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한몫 했다. 당시 비비안 리의 연인인 영국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미국까지 찾아왔지만, 제작진은 강인한 여성이라는 목적함수가 흔들릴까 두려워 두 연인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은 '주고받음'을 기본으로 형성된다. 윤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4개의 '생존 모형'을 만들었다. ①'너 죽고, 나 살고'식의 이기적 군상, ②'너 죽고, 나 죽고'의 테러범 모델, ③'너 살고, 나 죽는' 이순신 형, ④윤 교수가 생각하는 '삶의 정도'인 '너 살고 나 살기' 생존 모형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윤 교수가 강조하는 삶의 정도는 '생존경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 삶의 길을 떳떳하게 갈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랄까.

나는 <삶의 정도>를 읽기 전에는 유튜브에서 강민구 관장의 특강이 왜 인기를 끌었는지, 또 그가 왜 윤석철 교수의 이 책을 치켜세웠는지 몰랐다. 하지만 2016년 10월 이후 '너 죽고, 나 살려고' 발버둥치며 오리발 내미는 누군가가 떠올라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실감했다.

"인간의 일생은 일(work)의 일생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현대 경영학의 이론들은 너무 복잡하여 배우기 어렵다. 필자는 '필요한 것은 빼지 않고 불필요한 것은 넣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수단매체'와 '목적함수'라는 두 개념으로 인간 삶의 정도(正道)를 탐구하여 이 책에 발표한다." – 윤석철


삶의 정도 - 윤석철 교수 제4의 10년 주기 작作

윤석철 지음, 위즈덤하우스(2011)


태그:#윤석철, #삶의정도, #경영학, #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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