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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부실 점증하던 때 '석연찮은' 투자

한진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인하대학교(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 조양호 이사장)가 한진해운 파산으로 인해, 투자했던 130억 원 규모의 대학발전기금을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시설 확충과 학생복지 등에 써야 할 대학발전기금을 부실한 계열사에 투자해 날린 것이라 파문이 일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결국 최순장 총장은 27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학교구성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인하대는 전임 박춘배 총장 때인 2012년 7월 한진해운의 공모사채 50억 원어치를 매입했고, 현 최순자 총장 취임(2015년 3월) 직후인 지난 2015년 6월 30억 원, 7월 80억 원 어치를 매입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7일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고함에 따라 대학발전기금으로 매입한 사채 130억 원이 날라갔다. 한진해운은 이미 주요 자산을 대부분 매각한 상황이라 인하대는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막한 상태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3남 조수호 회장이 경영했던, 회사로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자 그의 부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아 운영했다.

하지만 2011년~ 2013년 3년 연속 적자가 누적되자 2013년부터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자금을 수혈하기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 4월 한진해운 회장을 맡아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2013년부터 2016년 2월까지 한진해운에 총 7771억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항공은 2014년 당기 순손실액 6130억 원, 2015년 당기 순손실액 5630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조양호 회장이 회생이 어려운 한진해운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해 대한항공에 손해를 끼쳤다며, 조 회장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지난해 12월 28일 검찰에 고발했다.

인하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는 무관"

그런데 이번에 인하대 건이 터지면서 대한항공만 한진해운에 투입된 게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최순자 총장이 80억 원을 매입할 때는 이미 한진해운의 부실이 커지고 있던 상황으로, 한진그룹 차원의 계열사 동원 의혹마저 일고 있다.

하지만 인하대는 한진그룹과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인하대는 "한진해운 공모사채 매입이 총장 책임 아래 이뤄졌으며,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과는 무관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인하대는 "대학 기금운용위원회와 외부 투자전문회사의 추천과 분석결과를 검토해 최 총장이 최종 결재"했으며, "정석인하학원에는 1년에 한차례 회계결산 이외에 회사채 취득과 같은 개별 기금운용 사항은 보고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익률 좋아 재투자 했는데 파산할지 몰랐다"

인하대는 1차로 2012년 4월에 2017년 6월 만기 사채(5.67%) 50억 원과 2015년 4월 만기 사채 30억 원(5.75%)을 매입했고, 그 뒤 2014년 3월과 5월에 각각 2015년 6월 만기 사채(10.65%) 30억 원과 2015년 6월 만기 사채(7%) 25억 원을 매입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중 2012년 처음 매입한 2017년 6월 만기 사채 5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85억 원에서 80억 원을 2015년 6월에 다시 2016년 6월 만기 사채(5.6%)에 재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인하대 관계자는 "2015년 6월 기준 1년 짜리 정기예금의 이율은 약 1.67%였는데, 학교가 매입한 한진해운 공모사채(80억 원)의 이율은 5.6%로 수익률이 좋았다"라며 "공모사채로 상당한 수익을 봤기 때문에 재투자한 것이다. 당시 한진해운이 이렇게 파산될 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인하대는 학교 운영은 당기 수입재원(등록금, 전입금, 국고수입 등)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며, 손실의 경우 한진해운 청산 완료 후 회계결산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한진해운의 파산선고를 내린 2017년 2월 17일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사용했던 부산신항 한진해운 터미널이 텅 비어있다.
 법원이 한진해운의 파산선고를 내린 2017년 2월 17일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사용했던 부산신항 한진해운 터미널이 텅 비어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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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는 한진해운의 파산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인하대가 한진해운 공모사채를 매입하던 시점(2015년 6월)은 이미 한진해운의 부실이 점증하던 때다. 실제로 한진해운 회사채 신용등급은 투자 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BBB- 등급이었다.

투자 부적격등급인 BB 등급보다 높긴 했지만, 대학발전기금을 부실이 점증하고 있는 기업 사채에 투자했다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이 기금은 학생들의 등록금과 동문들의 성금으로 모은 돈이라 더욱 안전하게 관리했어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최순자 총장 "재정 건실화 투자였는데... 사과드린다"

파문이 커지자 최순사 총장은 27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공식사과를 했다. 최 총장은 "한진해운 파산선고로 인하대가 투자했던 130억 원을 회수하기 어렵게 돼 대학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장으로서 이 사실을 인하대 모든 구성원께 알려드리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발표했다.

다만, 한진해운에 대한 투자는 대학 재정 건실화를 위한 분산투자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읍소했다. 그는 "주지하시다시피, 대학의 재정 건실화를 위해서 대학 적립금의 효과적 운용과 투자가 중요하기에, 그 동안 인하대는 적립금의 상당 부분을 저이율 안전 자산인 정기예금에 예치하고, 일부는 수익형 자산인 회사채에 분산투자해 왔다"고 덧붙였다.

또한 인하대의 기금 운용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기금의 운용범위와 투자대상 상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투자전문회사의 분석과 자문을 토대로 결정하는 원칙을 준수했다고 강조했다.

최 총장은 "대학기금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원칙을 준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인해 손실이 초래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라며 "학교 발전을 위해 애정과 헌신으로 기여해주신 인하대 구성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대학 재정 건실화를 위한 모든 활동에 전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조양호 회장과 최순자 총장에 책임 묻겠다"

최순자 총장이 담화문을 발표해 사과하고, 또 학교 당국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 무관한 투자 였다'고 강조했지만, 논란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는 조양호 회장과 최순자 총장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27일 성명을 발표해 "이번 투자가 과연 경영판단의 합리적 근거에 의거했는지 의심이 든다."며 "최순자 총장이 한진해운에 투자할 때 조양호 이사장이 한진해운의 회장이었다. 자금난을 겪던 한진해운이 인하대에 투자를 종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또 최순자 총장이 '기금운용위원회의 가이드라인과 투자전문회사의 분석과 자문을 구하는 원칙을 지켰다'고 한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숱한 우수등급 회사들을 제쳐두고 왜 당시 회사채 신용등급이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BBB- 등급인 한진해운을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투자회사와 특수관계(계열사)라는 이유 말고 '합리적 판단'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학내 기금운용위원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실제 결정은 총장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또 "한진해운 채권은 2013년 3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면서 대규모 적자와 경영악화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채권시장에서 이미 액면가의 6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자금난에 시달리자 대한항공이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라며 "부실이 점증하던 때인데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조양호 회장에 대한 과잉충성에서 비롯했다는 의혹이 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알토란같은 130억 원이 투자실패로 증발됐다. 그러나 담화문 어디에도 이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이유를 불문하고 최순자 총장은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양호 회장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업무상 배임여부에 대해 법적 검토를 한 뒤, 필요시 검찰 고발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것과 같은 취지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인하대가 설명한 대로 대학이 재정마련을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일로 알고 있다"며 "한진이 인하대를 동원했다는 주장은 너무 앞서나간, 터무니없는 주장이다"라고 반박했다.

송도캠퍼스 매입비 1년 치 한방에 날아가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하대는 송도캠퍼스 이전에 더욱 난관을 겪을 전망이다. 어렵게 모은 130억 원이 증발하면서 학교 재정상황이 더욱 나빠졌기 때문이다.

인하대가 추계한 적립기금은 약 1141억 원으로, 이중 연구·장학·퇴직기금 제외한 가용재원은 대학발전기금 500억 원과 건축기금 190억 원을 합친 690억 원 규모다. 여기서 한진해운 파산으로 날린 130억 원을 제하면 560억 원이 남는다.

인하대 송도캠퍼스 부지 잔금은 약 600억 원이다. 인하대는 올해부터 1년에 두 번 60억 원씩 5년 동안 갚게 돼 있다. 캠퍼스 부지매입에 필요한 1년 치 돈 보다 많은 금액을 부실투자로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인하대의 부실투자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학교구성원들이다. 인하대 내 수십 된 불법건축물 사태는 부족한 교육공간에서 비롯한 문제였고, 송도캠퍼스 교육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투자재원 부족이 근본 원인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인하대 교수회와 학생회, 총동창회 등은 그 동안 숱하게 정석인하학원을 향해 대학발전기금 확대와 투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진은 교직원들의 보험금 등 의무적인 경상비만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고, 대학은 재정마련을 위해 '분산투자'라는 미명아래 '고 위험' 채권에 손대는 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정석인하학원의 대학 투자실종이 부른 씁쓸한 단면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진, #한진해운, #인하대, #대한항공, #최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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