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오심'... 사라진 한국전력 점수(위)와 '규정 위반 유니폼' 착용 강민웅(아래)

'사상 초유의 오심'... 사라진 한국전력 점수(위)와 '규정 위반 유니폼' 착용 강민웅(아래) ⓒ SBS Sports 중계화면 캡처


'유니폼 규정 위반-점수 삭제'라는 배구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결국 '오심'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KOVO(한국배구연맹)은 27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심판 통합 전문위원회 회의 결과 '연맹 미승인 유니폼 착용'이 경기 진행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고, 해당 경기감독관의 승인 후 경기에 출전하였음에도 점수를 삭감한 제재 조치는 준용한 규칙을 확대 해석하여 적용한 것으로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KOVO는 "지난 2월 25일 경기·심판 통합 전문위원회를 개최하였고, 동 회의에 참석한 국제배구연맹(FIVB) 및 아시아배구연맹(AVC) 관계자에 자문을 구한 결과 관련 규정이 모호하여 해당 리그 로컬 룰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KOVO는 또 "해당 경기운영위원장(김형실)과 심판위원장(서태원)은 위원장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통감하고, 2월 26일 수원 경기에서 구자준 총재를 직접 만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OVO는 "구자준 총재는 포스트시즌의 원활한 경기운영을 고려하여 사표 수리를 보류키로 하고,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에게 남은 경기에 배구팬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정확한 규정·규칙 적용 및 원활한 경기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엄중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어 "KOVO는 이번 사건으로 실망감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배구 관계자 및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해당 팀인 한국전력에게도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판정이었다

KOVO가 점수 삭제 조치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 사유는 오마이뉴스가 지난 17일 자 기사 <'유니폼 점수 삭제' 초대형 오심, 무책임한 KOVO>에서 지적한 내용과 동일했다.

해당 기사는 지난 14일 대한항공-한국전력 경기에서 발생한 강민웅 선수의 유니폼 사건과 관련하여,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을 대형 사건으로 키운 책임은 전적으로 KOVO측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KOVO 측 심판위원장과 관계자들은 점수 삭제의 이유로 첫째 한국전력에게 귀책사유가 있고, 둘째 유니폼 규정 위반은 처음 나온 사례이기 때문에 불법 선수 교대, 로테이션 반칙이 확인되면 반칙 시점으로 점수를 되돌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을 준용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규정상으로나 논리상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오히려 KOVO 측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변명에 가깝다.

첫째, 강민웅의 경기 투입은 한국전력에게 귀책사유가 없다. 강민웅은 자신의 유니폼에 대해 경기감독관의 사전 허락을 받았고, 심판진도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귀책사유를 따진다면, 규정도 모르고 잘못 적용한 경기감독관과 심판진 등 KOVO측에게 100%의 책임이 있다. 규정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더라면, 강민웅이 투입되는 일 자체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둘째, FIVB 규정을 유니폼 위반에 준용한 것도 오류투성이다. 규정에도 없고, 사안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FIVB 규정에 반칙이 이뤄진 순간 이후 반칙 팀이 획득한 점수를 모두 취소하고 상대 팀의 점수만 인정하도록 명시한 대상은 부정 선수(등록되지 않은 선수)의 출전, 불법적인 선수 교대, 로테이션 반칙에 따른 서브 순서가 틀렸을 경우 등이다. 그러나 유니폼 규정 위반의 경우는 어디에도 점수를 취소하라는 조항이 없다.

FIVB 규정에 점수 삭제 조치가 명시된 사안들과 강민웅 유니폼 위반은 그 성격도 다르다. FIVB 규정에 명시된 사안들은 반칙을 범한 팀에게 귀책사유가 크다. 경기감독관이 허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팀의 실수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웅 유니폼 사안은 경기 투입 자체가 경기감독관의 허락하에 이뤄진 일이다. 따라서 FIVB 점수 삭제 규정을 강민웅 유니폼 사례에 준용해야 할 이유나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또한, KOVO 규정 어디에도 유니폼 위반의 경우 반칙 팀의 점수를 취소하라는 조항이 없다. 결국 KOVO가 규정에도 없는 '유니폼 위반-점수 삭제'라는 징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것도 형평성에 어긋난 부당한 조치였다. 교통신호 위반자에게 사기죄를 적용한 꼴이기 때문이다.

점수 삭제 말고도 'KOVO 잘못' 또 있다

이날 경기에서 KOVO가 잘못된 조치를 내린 것은 또 있다. 강민웅 선수를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킨 것이다. 이 또한 근거 없는 징계다.

V리그 대회요강(제48조)에 따르면, 강민웅은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기만 하면 곧바로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 선수다. 강민웅은 부정 선수나 불법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강민웅 선수의 퇴장을 주심이 아닌,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이 코치에게 지시를 내려서 취했다는 점이다. 규정 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KOVO 측이 이날 취한 조치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잘못까지 한국전력과 강민웅에게 일방적으로 뒤집어씌우고, 경기까지 패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봄 배구 진출 여부가 달린 중대한 경기에서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럼에도 KOVO는 지난 16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현장에서 사태를 만들고 키운 핵심 당사자인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에게 말뿐인 경고 조치로 끝냈다. 반면, 박주점 경기감독관에게는 이번 시즌 잔여 경기 출장 정지, 주동욱 심판감독관은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만 원, 최재효 주심과 권대진 부심은 3경기 출장 정지와 재재금 3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결국 KOVO는 국제배구연맹 및 아시아배구연맹 관계자에 자문을 구한 결과 잘못된 오심이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억울한 11점' 한국전력 피해, 누가 책임지나

이번 오심의 피해 당사자인 한국전력은 어떤 심정일까. KOVO의 사과 발표 직후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에게 전화 통화로 소회를 물었다.

신 감독은 "당시 제가 경기운영위원장에게 우리가 패하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물었었다"며 "뒤늦게 오심으로 결론이 났지만, 우리에겐 이미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심판진의 어처구니없고 잘못된 판단 때문에 경기를 패하게 되면, 감독이나 선수들은 피땀 흘려 일궈놓은 일 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신 감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KOVO측  경기 운영과 심판진도 철저하게 공부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두 번 다시 그런 일로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사과보다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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