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한 달 극장가는 한국영화가 접수했다. 할리우드 기대작이 단 한 편도 백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동안 <조작된 도시> <재심> <공조> 등 색깔 있는 한국영화가 각 수백만명씩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지난달부터 흥행세를 이어온 <공조>는 여유 있게 7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조작된 도시>와 <재심>도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흥행세를 이어갔다.

다가오는 3월엔 영화팬의 발길을 잡아끄는 다채로운 기대작이 출진을 준비하고 있다. 멸종된 줄 알았던 괴수물의 귀환부터 주목 받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드라마까지 대기 중이다. 2월 27일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 역시 한국 내 할리우드 영화 흥행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듯하다.

상영관 확보에 고전하며 멀티플렉스에서 사실상 밀려난 듯보이는 <문라이트>는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쥐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남우주연·각본상을 수상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편집·음향상을 받은 <핵소고지>도 아카데미 효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3월엔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기대작도 개봉이 예정돼 영화팬들에겐 풍부한 선택지가 제공될 듯하다.

정유년 물오름달 극장가 판도는 어떤 모습으로 꾸려질까? 여기 기대작 다섯 편을 꼽아 소개한다.

[하나] <해빙>

해빙 포스터

▲ 해빙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친구들과 운영하는 영화 팟캐스트 방송 '블랙리스트'에서 좋아하는 한국 영화감독 10명을 꼽는 방송을 준비하며 느낀 게 몇 가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출연진 모두의 리스트가 특정한 성별과 비슷한 나이대의 감독으로 이뤄져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감독이 남성이고 나이는 3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에 집중돼 있었는데 할리우드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도 확연히 한 쪽으로 쏠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할리우드엔 마틴 스콜세지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밀러, 우디 앨런 등 70대를 훌쩍 넘어선 감독들이 즐비한데 왜 한국엔 임권택뿐인가. 그마저도 할리우드 감독들에 비해 활발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니 내공 깊은 영화를 보길 원하는 영화팬으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심지어 여성 감독의 영화는 더욱 적은데 오랜 기간 영화팬으로 살아온 내가 머리를 짜내고 짜내보아도 임순례, 변영주, 정재은, 박찬옥, 이정향, 이경미, 방은진, 노덕, 윤가은 정도가 전부였다. 이들 가운데 영화계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이 손에 꼽히는 게 현실이니 극장에서 한국 여자감독의 영화를 만나는 건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양성이 생명인 예술에 있어 여성 작가의 가능성은 절대 작지 않다.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작가들은 남성들이 미처 다가서지 못한 영역, 보여주지 못한 시선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찍어내는 사례가 종종 있어 온 게 사실이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수연 감독의 <해빙>은 빼놓을 수 없는 기대작이다. 조진웅, 신구, 김대명 등 준수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경기도 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장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어려운 경제현실과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노력은 어떤 결과물을 낳았을까. 1일 확인할 수 있다.

[둘] <콩: 스컬 아일랜드>

콩: 스컬 아일랜드 포스터

▲ 콩: 스컬 아일랜드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고질라>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괴수물이 사실상 생명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이상 거대한 것만으로 관객에 충분한 자극을 주기 어렵게 되어버린 환경 때문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단지 크기만 키운 괴수를 한방에 몰아낼 만큼 발달했고 관객 역시 단지 크기만 큰 괴수에 별다른 감흥을 받지 않는다.

90년대 쏟아진 괴수물이 사실상 멸종되었다가 피터 잭슨의 <킹콩> 이후 조금씩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90년대 <쥬라기 공원> 시리즈로 크기와 속도를 모두 갖춘 공룡의 부활을 이끈 건 적절한 선택이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충분치 않게 됐다. 2015년작 <쥬라기 월드>가 기록적인 흥행에도 초라한 평가를 받아든 게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럼에도 괴수물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다. <쥬라기 월드>와 <고질라>, <킹콩> 등 잊을 만하면 나오는 대표괴수의 등장이, 이들 영화를 찾는 팬들의 발길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이번 3월은 한때 괴수물을 양분했던 <고질라>와 <킹콩>시리즈, 혹은 그 아류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온 보기 드문 달이다. <콩: 스컬 아일랜드>와 함께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질라>, <쥬라기 파크: 아마존 어드벤쳐>가 모두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관객들은 취향에 따라 하나씩 골라잡으면 되겠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미국 외 지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고신인급 감독 조던 복트-로버츠의 연출작으로 워너브라더스의 철저한 스튜디오시스템 아래 제작됐다. 출연 배우 면면도 화려해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로키역으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과 이 시대 최고의 악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사무엘 L. 잭슨, 검증된 연기력의 존 굿맨, 존 C. 라일리, 브리 라슨이 출연한다.

괴수물이 비교적 흥행하는 중국시장을 노려 <그레이트 월>에 린 메이 사령관 역으로 출연한 징톈도 조연급으로 출연한다.

미지의 섬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 3월 최고의 추천작으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셋] <토니 에드만>

토니 에드만 포스터

▲ 토니 에드만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탄탄한 문화적 저변을 바탕으로 꾸준히 좋은 영화를 내놓고 있는 독일에서 또 한 편의 기대작이 수입됐다. 뮌헨 영화학교 출신으로 독일 영화계의 오늘을 짊어질 젊은 감독 마렌 아데의 신작 <토니 에드만>이 16일 개봉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이어 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리메이크를 추진 중이다. 명배우 잭 니콜슨과 크리스틴 위그가 출연계약을 마쳤고 감독과 각색 작가 계약이 끝나는 대로 작업에 들어간다고 하니 곧 리메이크판을 볼 수도 있겠다.

농담과 장난, 분장을 서슴치 않는 괴짜 아버지가 일에 빠져 사는 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로 인간미 넘치는 감동적인 코미디라는 평가다. 산드라 휠러, 페테르 시모니슈에크라는 익숙하지 않은 독일 배우의 면면을 익히는 기회도 되겠다.

숨막히는 세상의 질서에 깜짝쇼라는 방식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아버지. 세상의 질서를 좇아 살다 삶의 낙을 잃어버린 딸. 영화는 둘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딸이 자신의 삶에 기운을 차린다는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한다. 16일 개봉.

[넷] <나의 딸, 나의 누나>

나의 딸, 나의 누나 포스터

▲ 나의 딸, 나의 누나 포스터 ⓒ 판씨네마(주)


내겐 누구보다 가까웠던 딸, 누나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23일 개봉하는 영화 <나의 딸, 나의 누나>는 주변 모두가 즐거움에 들떠있던 프랑스 한 마을의 카우보이 축제일에 켈리라는 소녀가 사라지며 시작된다. 경찰에 신고한 가족은 켈리가 무슬림 남자친구와 자신의 의지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켈리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모든 걸 내던지고 딸과 누나를 찾아나서지만 전문가가 아닌 데다 단서도 찾지 못해 추적은 쉽지 않다. 딸과 누나를 찾아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으로 헤매는 아버지와 아들, 추적의 끝에서 이들 부자가 마주친 현실은 적잖이 충격적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이 영화 한 편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충격적인 설정에도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적개심 없이 영화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감독은 <디판> <러스트 앤 본>의 각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토마스 비더게인이 맡았다. 그의 연출 데뷔작으로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명장이 탄생하게 될지 기대된다.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다르덴 형제가 제작했다.

[다섯] <프리즌>

프리즌 포스터

▲ 프리즌 포스터 ⓒ (주)쇼박스


안성기, 박중훈의 전성기와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의 남배우 트로이카 사이에 한 명의 배우가 한국영화계를 평정한 시대가 있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의 유일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꼽힌 한석규가 바로 그다. 성공의 정점에서 3년 가까운 공백기를 가졌고 그로부터 한국영화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백년 같았던 공백을 끝내고 돌아온 뒤 다른 어느 배우와도 구별되는 색깔 있는 배역을 두루 경험해온 그. 한석규의 새로운 도전을 23일 개봉하는 <프리즌>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교도소가 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범죄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죄수가 교도관을 휘어잡고 있다면?' '죄수들이 교도소 안팎을 넘나들 수 있다면?' 각본가 출신의 나현 감독은 기존 상식과 장르영화 공식을 뒤엎는 설정을 통해 교도소를 완전범죄공간으로 뒤바꾼다. 교도소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고 오히려 교도소 간수들을 장악한 힘있는 죄수의 모습은 이 시대 펼쳐지는 힘 있는 죄수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어떤 종류의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구타유발자들>을 통해 살떨리는 악역 연기에 재능을 보인 한석규가 교도소를 장악한 극한의 악역을 맡아 어떤 연기를 펼칠지 관객뿐 아니라 한국 배우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그의 연기를 주포로 삼아 첫 장편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도 마음 속에만 담아뒀던 소중한 신들을 현실 속에서 유감없이 펼쳤다는 후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빙 토니 에드만 나의 딸, 나의 누나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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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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