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싯적 고향에선 고사리는 그냥 고사리였다. 뜯으면 뜯기고 밟으면 밟히는 풀이었다. 어라! 근데 인도네시아 산에서 만난 고사리는 그때 그 고사리가 아니다. 이럴 수가, 우뚝하고 쩍 벌어진 나무다. 산 능선에서 제대로 폼을 잡고 서면 해변이나 논두렁의 신사 야자나무와 멋을 겨룰 뽄세다.
한국의 고사리 생각으로 멀리서 보고 멋모르고 우겼다간 자장면값 뺏기기는 십상이요, 그나마 작은 코마저 다칠 판이다. '고사리손'과 같은 단어는 그야말로 오글거려서 얼른 삼켜야 한다.
싹부터 튼튼한데 쪽 뻗어 오른 나무줄기가 제법 선정적이다. 우산 펼치듯 쫙 펼친 잎도 정취가 제법인데 나무껍질을 벗기면 마야 문자 같은 오묘한 형상들이 신비하다. 인도네시아 전통문양 바띡 문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바띡 나무"라고도 한다.
화산재가 덮였던 곳을 가면 쫙 깔린 것이 고사리다. 그런 곳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아직 우뚝한 나무가 아니다. 한 번은 한국인 아줌마 몇 분 화산 분화구 나들이에 나섰다가 고사리 군락지를 발견했던가 보다. 틀림없는 자연산 고사리, 그냥 지나칠 리 없었으리라. 관광 상품 파는 현지인을 꼬여 몇 푼 쥐여주고 고사리순을 따오게 했던가 보다.
오호 통재라! 먹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
자연산도 자연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