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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자의 날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자 정책에 항의하는 피켓을 든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자의 날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자 정책에 항의하는 피켓을 든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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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이 다각도로 급격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쏟아낸 행정명령으로 각종 반이민 제도를 만들어가는 한편, 지난주에는 이민세관단속국 (ICE) 요원들이 대거 투입되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서류 미비자 단속을 벌였다. 이민세관단속국이 주도한 서류 미비자 체포 작전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애틀랜타 등 미국 주요 대도시를 포함한 9개 주에서 이뤄졌으며, 이 작전으로 600명이 넘는 서류 미비자가 체포된 것으로 미 주요 언론들은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 따르면, 이 일제 단속에서 한국 국적의 임아무개(25)씨가 직장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지난 21일 (현지시각) 국토안보부는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이 각 부서의 장에게 보낸 2건의 이민 단속강화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건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세부 지침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 내 서류 미비자의 단속 강화와 추방대상 대폭 확대, 그리고 국경단속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지침은 국경경비를 위해 5천 명, 서류 미비자 단속과 추방을 위해 이민세관단속국 요원을 1만 명을 충원하며, 이들에게 부여된 서류 미비자와 범죄경력 이민자 체포 및 구금권을 확대, 추방을 위한 신속한 법원의 심리, 불법 이민자의 입국 단속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이 각 부서의 장에게 보낸 이민단속강화 지침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이 각 부서의 장에게 보낸 이민단속강화 지침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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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대상 이민자 범위 확대... 영사관 핫라인 개설

특히 이 지침으로 인해 추방대상 이민자 범위가 이전에 비해 크게 확대되는 데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중범죄 전과자를 주로 단속 대상으로 했던 데 비해, 이번 지침에서는 중범전과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단속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음주운전과 같은 경범전과를 가진 합법체류자도 단속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계속되는 이민자에 대한 강경한 추방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17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서류 미비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련의 강경 반이민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여, 이들은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단체인 '미주한인봉사 교육단체 협의회' (NAKASEC)와 '한인타운노동연대' (KIWA)에는 한인들의 문의 전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인타운노동연대 (KIWA)의 강두형 간사는 "이전의 사례들을 보면, 이민자들을 추방하기 위한 일제 단속은 그리 효과가 없었다. 일제 단속은 정치인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식 겉치레 행사일 뿐이다. 이번 일제 단속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를 그의 방식으로 더 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류 미비자들의 존재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기득권층이라는 점이다. 서류 미비자를 추방하는 데 쓰이는 예산의 일부라도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쓰는 것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라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NAKASEC이 휴대를 권장하는 권리카드
 NAKASEC이 휴대를 권장하는 권리카드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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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세관단속국의 일제 단속이 시작된 이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서도 대응책을 마련했다. 한인이 체포 구금되었을 경우 영사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24시간 통화 가능한 핫라인을 개설했으며,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미 행정부 이민정책 강화 관련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박상욱 법무이민 담당 영사는 "한국 국민이 체포, 구금되었을 경우 비엔나 협약이 규정한 권리가 있음을 홍보하고 있다. 문의 전화도 많지만, 향후 일이 닥쳤을 경우를 대비해 핫라인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저장하기 위한 전화도 많이 있다"도 전했다.

그러나 영사관의 조력은 주재국 (미국)이 허용하는 범위로 제한되어 있어서 체포 구금 시 한국민의 권리 보장을 확인하는 정도로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10일 일제 단속으로 체포된 임아무개씨가 구금된 보호소를 이기철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직접 방문하여 권리를 설명하고 가족과의 외부 통화를 주선했다고 밝혔다.

남미 의존 높은 LA 한인업체에도 불똥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은 한인 서류 미비자에 대한 위협을 넘어서 한인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남미계 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업체들은 갈수록 강경해지는 정책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의류업체, 특히 봉제공장은 대부분 남미계 서류 미비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타 지역의 의류제조업이 대부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데 비해 로스앤젤레스에 일부나마 의류업체가 남아 있는 것은 비교적 낮은 남미계 임금 수준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이 현실화되면서 남미계 노동자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단속을 피해 말없이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의류생산업체를 경영하는 박희정(가명, 54)씨는 전한다. 박씨가 운영하는 봉제공장에 근무하는 종업원 50여 명 중 80% 이상이 남미계이며 대부분은 서류 미비자이다.

한식당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큰 식당의 경우 보통 30명의 종업원이 있는데 그중 반 정도가 남미계이며, 이들 대부분은 서류 미비자들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이들이 주방에서 재료 손질, 설거지, 청소 등을 담당한다.

얼마 전까지 식당을 운영했던 김미라(46)씨는 "최저임금을 받고 주방에서 힘든 일을 하려는 한인들을 찾기 어렵다 보니 대부분의 한인 식당들은 남미계 서류 미비자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한인 없이는 한식당을 운영할 수는 있어도 남미계 종업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들을 한다. 남미계 노동자들이 추방되거나 추방의 위협을 피해 일을 그만둘 경우 한식당 중 몇 개나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현재로는 단속을 피해 직장에 나타나지 않는 서류 미비자의 수는 많지 않으나, 강경책이 지속될 경우 사업체의 운영을 우려하는 한인 업주들이 많은 상황이다.

서류 미비자들의 문의는 물론,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영주권자의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고 안재엽(51) 이민법 변호사는 전한다. "경범죄를 포함한 범죄시 경찰의 혐의자 혹은 체포자에 대한 이민 지위 확인이 점차 강화되면서 추방절차의 집행 강화에 대한 두려움이 점증하고 있다. 또한, 국외여행은 물론 반이민 정서가 높은 미국 내 타 지역으로의 여행도 자제하려는 분위기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켈리 장관의 지침에 청소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DACA)의 대상자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서 3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 청소년들이 당장 추방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트럼프, #반이민정책, #서류미비, #불법체류, #이민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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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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