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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왜 하기 싫어?"
"그냥..." (하긴 싫은데 이유가 있겠습니까만...)
"태권도 가면 짜장면 파티도 하고, 과자파티도 하고, 친구 OO이도 다니고..."
"그래도 싫어."
"알았어. 그럼 며칠 생각해보고 다시 엄마한테 이야기해줘."
"응."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쏟는 분야가 아이들 스케줄표 작성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우는 아침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모든 스케줄을 기관에 의지하면 되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모든 스케줄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든 스케줄은 워킹맘인 나와 유치원생인 둘째의 하원, 이동하기 편한 시어머님 동선까지 고려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마음이 바빠졌다.

입학과 더불어 돌봄교실을 신청했다.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할 예정이지만, 학원 1~2개를 더 추가하려고 했다. 남자아이라서 체육활동을 더 시키려고 한 것도 있고, 선배들의 조언과 주위 엄마들의 말을 참고해서 결정했다.

방과후 수업은 학습적인 것으로, 학원은 주로 예체능 분야를 추가하려는 것이 엄마인 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현재하고 있는 축구에, 태권도와 피아노를 추가하려고 했다. 오후 4시쯤 돌봄교실에서 나와서 1시간 정도 예체능을 하면 5시에 하원하는 둘째와 맞아떨어지겠다는 계산이었다.

아이는 이제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스스로 읽는다
 아이는 이제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스스로 읽는다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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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가 태권도를 거부했다. 태권도장에 가서 한번 무료수업을 받았는데도 싫단다. 현재하고 있는 축구는 계속하고 싶다는 의향이 있는데, 태권도는 하기 싫단다.

다른 엄마들에게 들어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해야 하는 줄넘기 시험이나 주말 이벤트가 많다. 남자아이는 태권도를 하는 것이 거의 필수 선택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체력이 약간 부족한 큰 아이에게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다.

며칠 생각해보겠다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태권도 생각해봤어?"
"응. 엄마, 태권도 꼭 가야 해? "


꼭 가야 한다고 하면 아이는 갈 태세였다. 하지만, 아이가 이 정도로 싫다고 하니, 나 또한 강권하긴 어려웠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럼, 2학년이 되면 다시 생각해볼게."
"응... 그래. 알았어. 대신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이야기해줘."
"응, 알았어 엄마~"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데, 자주 잊는다.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데, 자주 잊는다.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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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아이는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축구클럽에 수영장이 같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수영은 조금 더 큰 다음에 가르치려고 했다. 수영장 물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어차피 학년이 조금 올라가면 수영도 시험과목이라 조금 커서 배우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수영은 워터파크 놀러 가는 것과 다르다는 이야기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정보를 주었지만, 아이는 그래도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느새 아이는 훌쩍 커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나이가 되었다. 자라지 못한 것은 엄마인 나의 마음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이제 아기가 아닌데, 아직 내 마음속에는 아기 같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자꾸 뭔가를 더 챙겨야 할 것 같고, 뭔가 시켜야 할 것 같고, 제가 앞에서 뭔가 끌어줘야 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아이는 충분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엄마인 나는 그저 아이 뒤에서 아이가 무사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지 지켜보면 될 뿐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려주고 있다. 조금 기다리는 지혜,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에게 바라는 덕목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도 당분간 보류하려고 한다. 이미 엄마의 의견은 던졌으니 선택은 아이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학교 적응도 힘들 텐데, 새로운 것을 접하게 하는 것이 좀 스트레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아이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본인이 선택하고 싶은지 말이다.

엄마의 계획보다 아이의 의견 먼저...... 잊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아 담아내다> (http://blog.naver.com/longmami)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워킹맘에세이, #워킹맘육아, #엄마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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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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