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세웠는지 소신공양을 추모하는 돌탑이 세워져 있고 분홍리본과 세월호리본이 달려있다.
▲ 소신공양 추모돌탑 누가 세웠는지 소신공양을 추모하는 돌탑이 세워져 있고 분홍리본과 세월호리본이 달려있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한네의 승천, 김성녀씨 걸로 부탁해요'
'담(페이스북 담벼락)에 왜 안 올리시구^^'
'그냥 없는 듯이 있고 싶어서요'

스님은 내 방송의 애청자였다. 2012년 인터넷방송 '라디오인'에서 '시 읽어주는 여자'를 진행하던 내게 스님은 가끔씩 듣고 싶은 곡을 신청했다. 한번은 영화 '남영동 1985'를 같이 보러 가자고도 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고 내가 관여하던 뮤지컬을 보러 오시라고 초청했지만, 스님은 오지 않았다.

정원스님이 음악신청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 정원스님이 보내신 메시지 정원스님이 음악신청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몇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간간히 댓글을 달고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던 스님과는 페친으로 그렇게 인연을 맺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시작되면서 스님은 '나라 걱정'에 대한 많은 글들을 올렸다. '저항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식이 저항이며 혁명에 값할 수 있는 것인지...' '문수스님 이남종열사 분신열사는 죽음이 아니라 가장 강한 저항이었다' 이런 문구들이 보였다.

그러던 1월 7일 '이보시오 촛불님네 내 간다고 서러 마라'로 시작되는 스님의 글을 보고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무슨 일이... 제가 혹여 걱정하는 일이 아니기를. _()_'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설마 했다. 촛불집회를 마치고 요기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소식을 듣고는 직감했다. '정원 스님이 결국 감행하셨구나. 나무관세음보살' 나도 모르게 아픈 말이 터져 나왔다.

스님은 그날 낮부터 청와대 근처와 헌법재판소와 광화문광장을 돌면서 세상의 정의와 올바른 심판을 염원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광화문 근처 작은 공원의 소나무 아래에서 당신의 몸에 불을 붙이신 것이다. 소신공양이었다.
스님은 소나무 아래에 앉아 결가부좌를 한 후 한치의 미동도 없이 독경을 하면서 소신공양에 들어갔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 소신공양터 스님은 소나무 아래에 앉아 결가부좌를 한 후 한치의 미동도 없이 독경을 하면서 소신공양에 들어갔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나는 그때서야 스님과 오랜 인연임에도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내 불찰에 대해 가슴을 쳤다. 구도의 길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걸어오신 스님이 그저 속세를 떠난 해탈이 아닌, 오욕칠정으로 얼룩진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민중들과 함께 가는 것이 승려로서 할 일임을 마음으로 정하신 것이다.

소신공양을 하셨다는 소식에 밤늦게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간 선배 언니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석유를 마시고 몸에 불을 붙였기 때문에 장기가 타버려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스님은 분명 작정을 하신 거였다.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강에서 뭇 생명들이 죽어갈 때 낙동강 둑에서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에 대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하시더니 결국 같은 길로 가신 것이다.

스님이 온몸을 불사르며 외치던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이 법이라는 민주적인 절차에 묶여 초초하게 헌재 판결을 기다리는 지난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정원 스님 소신공양 49재가 열렸다. 양혜경 선생의 넋전춤으로 시작된 추모공연과 불교의식으로 열린 49제에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스님을 추모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스님의 글이 담긴 책이 쌓여있었다. <일체 민중이 행복한 그 날까지>(도서출판 말)라는 제목의 책은 그간 정원 비구스님이 남기신 글을 모아 만든 추모집이었다. 소신공양 전에 썼던 유언과 일기, 유작 시 등이 실려 있다. 발간사는 스님의 친동생인 서상원 교수가 썼는데 소신공양 소식을 듣고 느꼈던 참담함을 시작으로 정원 스님의 행적을 써내려가며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스님이 사셨는지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스님은 갑작스레 소신공양을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승려로서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뇌했고, 그것은 곧 속세의 부조리를 뿌리 뽑고 민중들과 함께 대항해서 올바른 대중의 세계로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던 듯싶다.

소신공양 직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가사 형식의 글인 '이보시오 촛불님네'를 보면 그 마음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 '소신공양으로 매국노 집단이 일어나는 기회를 끊고 촛불 시민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라며 왜 극한의 고통을 참고 몸에 불을 댕겼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불교인으로서 '불교는 민중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민중, 중생을 사랑하지 않는 불교는 가짜다. 수행자는 민중 속에서 붓다를 실현하라!'는 일침의 글도 남겨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빼앗긴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 만나면 구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주겠노라'며 세월호 희생자를 만나서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준 글도 있었다.
49재에서 양혜경선생이 넋전춤으로 정원스님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넋전춤 49재에서 양혜경선생이 넋전춤으로 정원스님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스님이 생전에 썼던 일기에도 현 정부의 부조리와 민중에 대한 사랑,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승려로서 불교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일침의 글이 많았다. '불교의 존재 이유'라는 글에는 민중을 위한 불교의 실천을 일갈하는 대목이 있다.

'불교와 승려들이 민중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투쟁 현장에 승려들은 거의 없고 민중들에게 해 준 것이 없는 불교입니다. 고통의 현장에 승려들이 보이지 않네요. 그럴 만한 여러 가지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해도 깨우침을 근본으로 삼는 불교가 아직도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 문제네요. 투쟁이 아니더라도 투쟁의 문제현장에서 승려가 중재 역할을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합니다. 깨달음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보살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불교의 존재 이유입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해 11월에 불교계 시국선언이 없다며 자발적으로 쓴 시국선언문이 소개돼 있었다.

승려 시국선언문

대한민국 승려의 시국선언을 선포합니다.

불교의 승려들은 산중을 벗어나 나라의 위중한 시국을 직시하고 사회와 승가는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동합니다.

<화엄경> 말에 따라 일체에 모든 사물과 인간은 인타라망因陀羅網으로 얽혀있어서 한 올도 벗어나지 못함을 숙지하고 탄압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났습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이 나라를 도륙하고 파탄지경에 이르게 만들었으며, 한일 군사협정이라는 매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명대사는 "왜구가 쳐들어와 백성이 도륙당하고 있으니 부처님의 자비로써 백성을 구하자."고 하는데 그 자비심으로 오늘날 의 민중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주자인 민중의 시은에 보답하는 것이며,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 승려들은 청와대를 에워싸고 목탁, 징, 북 등을 두들겨서 요사스러운 여귀를 몰아냅시다.

승려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1. 박근혜는 당장, 퇴진을 선언하라!

2. 박근혜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대기하라!

3. 야당은 박근혜 권력을 인수하고 강력한 국무총리를 세워라!

4. 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를 강하게 압박하라!

5. 모든 종교단체들은 박근혜 타도에 들어가라!

6. 새로운 시민 혁명정부를 세워라!

이런 주장이 실현되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마지막 세포가

소멸하는 순간까지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혈투를 해나갈 것이다.

2016년 11월 17일
대한민국 승려 일동

※ 불교계 시국선언이 없어서 자발적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한 스님이 정원스님 49재를 바라보고 있다. 그 뒷모습에 도반에 대한 그리움이 드리워진 듯 하다.
▲ 정원스님 49재 한 스님이 정원스님 49재를 바라보고 있다. 그 뒷모습에 도반에 대한 그리움이 드리워진 듯 하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의상대사가 <화엄경>에 대한 깨달음을 그림으로 완성한 법성게를 가지고 14번 했던 강의록도 실려 있었는데, 스님은 세월호나 우리 시대의 적폐들이 결국 하나로 연결된 것들이 깨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하나가 곧 일체다'라는 가치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이 박정희 시대의 1차 산업화를 지나면서 대가족의 공동체가 깨지고 흩어져서 숱한 부작용을 만들어냈고, 지금도 그 여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면 절대 남을 해치거나 불이익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내 살을 떼어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만 타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 정신 그 감각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승만 박정희가 그 원흉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산산조각 난 인간관계를 재구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덕이 두텁고 대단한 포용력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인품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때 저는 정말 처절하게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세월호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절집 사람들을 보았을 때 혼자만의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 징그런 아픔을 정면으로 대하고 싶지 않겠죠. 누군들 처참한 현실을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종교인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사회의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를 대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지 않고 사회 대응 교육이 없으니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요? 보살은 온 우주와 한 몸이 되어 행동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전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참 보살인 것이죠."

읽다 보니 정원 스님이야말로 민중 속에서 붓다의 길을 진실로 가고 싶은 '참 승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은 자신의 평온이 아닌 모든 민중의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스님은 실천하고 싶으셨으리라.

종을 치며 나를 쳤다 / 나를 때리면서 종을 쳤다 / 우우웅 / 하데스의 강이 아무리 깊고 험해도 맹골수도만 하랴 / 나의 눈물이 바다로 흘러 너희들의 고통을 씻어줄 수만 있다면 / 그럴 수만 있다면
시를 쓰셨다는 스님은 시를 한자로 풀이해 '절에서 쓰는 언어'가 시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시는 말이 사는 절이기도 하다. 그 절에 스님이 사신다. 나 혼자 그리 생각해본다.
▲ 시 쓰는 스님 시를 쓰셨다는 스님은 시를 한자로 풀이해 '절에서 쓰는 언어'가 시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시는 말이 사는 절이기도 하다. 그 절에 스님이 사신다. 나 혼자 그리 생각해본다.
ⓒ 권미강

관련사진보기


1953년 서울에서 서용원으로 태어나 1977년 해인사에서 출가한 정원 스님이 80년 광주항쟁과 10.27법난에 저항하는 불교탄압공동대책위원회로 활동하고 6월 항쟁과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반대투쟁에도 참여했던 실천하는 승려였음을 추모집을 통해서 알게 됐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명박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며 계란을 던져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2.28 한일위안부 졸속합의에 반발하며 외교통상부에 화염병을 던져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스님을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염 속에서도 가부좌를 틀고 '박근혜 구속'을 외치고 독경을 하며 미동조차 없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원 스님의 결기는 '독재정권에 맞서 소신공양을 해 전 세계를 울린 베트남 틱쾅둑스님'과 다를 바가 없음을 추모집을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스님 생전에 한 번이라도 뵙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참스승 한 분과의 조우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시 빗장을 걸듯 책을 덮었다.
▲ 정원스님 시 '민중' 스님이 열반하신 후, 스님께서 쓰신 '민중'이라는 시를 낭송영상으로 만들었다. 내 마지막 선물이다. 사진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대자보 작업 중에 보여주신 친필을 직접 찍었던 사진과 일부 사진은 스님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걸 사용했다.
ⓒ 권미강

관련영상보기


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 속 스님을 뵙고 '미처 못 찾아뵈어 죄송했노라'고 용서를 구했었다. 영정 속 눈빛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약간 비껴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또한 스님의 의도인 듯 조용히 합장했던 기억이 난다. 스님이 남긴 '민중'이라는 시를 녹음해서 스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것이 오래전 애청자였던 스님에 대한 내 마지막 선물이었다.

민중

나는 너를 몰랐다
너가 나의 사랑인 것을
내 안에 갇혀 산 수많은 세월
하늘과 땅은 나를 잠에서 깨웠다
그리고 나를 너에게
짝지어 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너에 대한 사랑은 완성되지 않았다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뜨겁게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활화산처럼
그렇게 완성될 것이다



태그:#정원스님 , #소신공양 , #박근혜 퇴진 , #적폐청산 , #민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