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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자로 교육 공무원, 교사의 신분에서 이제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갑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구속과 규제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입시가 전부처럼 생각되는 교육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이 반이라면 후배 교사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반입니다.

교사에게 학생은 누구입니까?

입시가 전부인 인문계 고등학교. 12년 동안의 교육을 입시 경쟁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온 아이들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이미 학습 결손으로 입시에서 멀어진 학생, 중학교에서 낙오한 아이들 그리고 고등학교에 좌절하고 포기한 아이들. '틀렸다.' '글렀다'라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작 그 놈들은 교육이 꼭 필요한 학생들인데도 그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망했다.' 좌절할 때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그럴 리 없겠지만, 밥 먹듯이 거짓말하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또 속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학생들과 다시 약속을 하며 지내는 것이 교사의 운명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날보다 더 많은 삶을 살게 될 아이들입니다. 오랜 습관으로 변화의 속도가 늦고 아집이 강한 시기를 넘어서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은 한 해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틀림없이 성장합니다. 지금에만 머물고 있을 아이들이 아닙니다.

어른이 살아온 축적된 경험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은 늘 기대에 미칠 수가 없지요. 어른들도 그러한 세월을 거쳐 왔는데도 우리는 쉽게 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로 어른보다 더 변화의 가능성이 많은 것이 아이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거는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 희망을 내던지는 말 한마디로 아이들도 어쩔 수 없다고 절망하겠지요.

비행 청소년 한 명을 바르게 안내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셈법에 의해서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아이들의 소중한 인생이 있기 때문이지요. 교육 모순 속에서도 아이들을 희망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여행의 종착역

제 36년의 교직 인생, 종착역은 잠신고등학교입니다. 1981년 도봉중학교 3년을 시작하여 오주중학교 2년, 자양고등학교 3년 6개월, 그리고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거리의 교사로 4년 6개월, 1994년 온수고등학교 복직 4년, 창덕여고 4년, 잠실고등학교 5년, 둔촌고등학교 5년, 그리고 잠신고등학교 5년. 제가 갖고 있는 교사라는 차표는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연장하고 싶어도 연장할 수 없는 잠신고등학교까지였습니다.

36년의 교직 인생 가운데 조직폭력배 같은 정권을 만나 제 교직 인생의 철로가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교사라는 소중한 차표도 빼앗기고 강제 하차하여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4년 6개월이라는, 거리의 교사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되찾은 차표를 갖고 94년에 다시 승차한 교직 인생입니다. 교사라는 차표를 고른 이후 도중하차 하고 싶은 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물리지 않고, 갈아타는 일 없이 도착한 종착역, 잠신고등학교입니다.

거듭 되돌아봐도 교사라는 차표를 집어 든 것은 제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한 번의 탈선 사고로, 한 눈을 판 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조차 이곳저곳 둘러보고 기웃거렸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던 소중한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평교사라는 참으로 소중한 차표를 들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종착역까지 도착했습니다. 제 교직 인생 36년의 종착역, 잠신고등학교에서 이제 하차합니다.

잠신고등학교 종착역에서 다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위해 저는 새로운 티켓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열차를 탈지, 아니면 버스를 탈지, 비행기 티켓을 끊을지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머지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언제든지 물릴 수도 있고 또 마음대로 갈아탈 수 있는 가능할 수 있다면 자유 티켓을 끊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여행

저의 하차하는 모습을 환송하기 위해 정년퇴임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던 후배 선생님들은 다시 정해진 철로를 따라 여행이 계속되겠지요. 어떤 분들은 선로가 조금 연장된 잠신고등학교 티켓을 들고 계실 것이고, 어떤 분들은 한 정거장 더 가셔서 내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차할 역조차 표시되지 않은 티켓을 들고 긴 여행을 계속하시겠지요. 또 어떤 분들은 긴 여행이 싫증나서 도중에 남은 티켓 비용 환불받고 내리실 분도 계시겠지요.

여행 하시는 동안 오랜 경륜과 능숙한 기관사를 만나게 되면 아무런 위험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난폭 운행을 하는 미숙한 기관사를 만나면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참고 가지는 마십시오. 항의하시고 차를 멈추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갖고 있는 티켓은 그러한 권리도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가 힘들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 여행은 바로 함께 타고 가는 동료들이 있음으로 해서 더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사색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있겠지만 너무 외롭게 혼자 가시지는 마십시오. 함께 타고 가시는 그 분이 소중한 동반자이십니다. 그 중에는 금방 내리실 분도 있겠지요. 더 멀리 가시는 분들과의 여행이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말도 걸고 차 한 잔도 사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목적지까지 무사한 아름다운 여행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잠신고등학교에서 제가 하차하기까지 함께 동반자가 되어 주셨던 참 많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하차하신 선배 분도 계시지만 많은 동료교사들의 도움 속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인생 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만나려고 노력은 했으나 의욕만이 컸을 뿐이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반이라면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다른 교육의 반이라고 말하면서도 늘 조급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히려 많은 학생들에게는 불편했던 교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고백의 말씀

늘 부끄럽지 않은 삶, 부끄럽지 않은 교사이고 싶었으나 세상과 불화한 저는 언제부턴가 부끄러운 인생, 부끄러운 교사였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동료 교사에게, 학생들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태그:#교육, #교사, #여행, #인생,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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