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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지하철이 시청역에 도착했다. 전철 문과 스크린도어가 차례로 열렸다. 플랫폼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 개찰구를 나오자 역 내에 태극기를 손에 쥔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녔다.

곧바로 덕수궁으로 나가는 2번 출구로 향했다. 출구를 나오니 태극기를 든 사람이 역 안보다 수십 배 많았다. 서울시청과 덕수궁 대한문 사이에 있는 서울광장에 수많은 태극기가 펄럭였다.

덕수궁으로 나가려면 2번 출구로 가야 한다.
▲ 시청역 내 이정표 덕수궁으로 나가려면 2번 출구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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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헤 대통령이 경례하는 사진이 포스팅된 망토를 둘러맨 사람들과 그앞을 지키는 경찰
▲ 2번 출구 계단 앞 박근헤 대통령이 경례하는 사진이 포스팅된 망토를 둘러맨 사람들과 그앞을 지키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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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5일 오후 3시께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아래 탄기국)'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위한 14차 태극기집회'를 개최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도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서울광장 발언대에서 연설하는 연사들의 탄핵 무효 주장을 들으며 환호했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며 광장에 모여있다.
▲ 서울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며 광장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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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발언과 사람들의 함성에 크게 틀어놓은 노래가 더해지면서 귀가 울리고 멍멍해졌다. 행진을 시작하기 전 조용한 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서울시청 앞에 있는 서울도서관에 들어가 귀를 풀고 추운 몸을 녹이기로 했다.

서울도서관 안에도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이 다수 있었다. 다들 행진 전까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복도 벤치, 계단에 앉거나 5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외모상으로 보이는 연령대는 40대에서 60대가 대부분이었다.

도서관 로비에 집회 참가자들이 오고 나가고 있다.
▲ 서울도서관 로비 도서관 로비에 집회 참가자들이 오고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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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집회 참가자들.
 서울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집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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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려니 옥상 출입구를 직원이 막고 있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란다. 하는 수 없이 계단으로 내려와 3층 복도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위에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저분들은 겨울 주말에 할 일도 많으실 텐데 무슨 이유로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는지 궁금했다.

2층과 3층 올라가는 계단에 50~60대처럼 보이는 얇은 검은색 패딩을 입은 아주머니와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자주색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분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청했다. 기자라고 소개하니 아주머니가 거리를 두었다. '요즘 언론 오보가 많다'며 얘기하기를 꺼렸다. 아주머니가 반감을 표하는 와중 선글라스를 끼고 오신 아저씨가 친절히 대해줬다. 선 채로 내려보며 이야기를 들으면 예의가 아니기에 아저씨보다 한 계단에 밑에 내려앉아 선글라스 너머의 눈을 맞추며 얘기를 들었다.

이번이 '집회 세 번째 참여'라고 하신 그분은 경기도 의정부에서 왔단다. 66세 나이에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재학 중으로 배움에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나라가 걱정돼 참가하게 됐단다. "여·야당은 다 똑같은 놈"이어서 "국회를 해산해야" 한단다. "바른 정당은 배신했다"고도 말했다. 또한 "공영방송과 종편방송은 전부 거짓"이란다. 언론 오보가 국가 힘을 빼버리는 게 문제란다. "언론은 국정농단이라 하는데 대통령은 충분히 민간인한테 자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얘기를 나누던 중 계단을 내려가는 두 아주머니가 대화에 관심을 가졌다. 한 아주머니가 대화에 껴들었다.

"우리는 돈 받은 적 없어요. 자비로 집회에 참가했어요. 이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방송이 너무 거짓된 게 많습니다. 부디 공정하게 다뤄주세요."

그는 이렇게 당부하며 내려갔다. 다시 대화를 이어가려던 중 아저씨는 배고프지 않냐며 떡을 주었다. 떡을 먹으며 다시 얘기를 들었다. 그는 탄핵 기각을 두고 봐야 한단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법의 논리에 맞게 판결이 나야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아저씨는 말했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나온 게 아니야. 우리는 나라를 망치려는 게 아니야. 나는 이미 늙어서 죽을 몸이야. 그냥 젊은이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려고 부담을 안 주기 위해서 참가했지.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구해내는 게 늙은이 몫이야."

경찰관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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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께 무대에서 행진하자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내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후 6시쯤 도서관이 문을 닫자 행진하는 참가자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한문 앞에서 10대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을 만났다.

태극기 집회에서 처음으로 보는 젊은이들이었다. 인천 부평구에 거주해 올해 부평여고 3학년에 올라가는 이아무개양은 동생이랑 같이 왔단다. 촛불집회에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는 그녀는 이번에는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단다.

촛불집회와는 다른 열정이 있단다. "촛불집회도 좋지만 나라를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 태극기집회라고 생각해 참여"했단다. "다음에도 참여하겠냐"고 물어보니 "고3이라 수능 공부를 준비해 이번이 마지막 집회 참여"라고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 이주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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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으로 향해 가는 참가자는 '탄핵 무효', '특검 폐지'를 외쳐댔다. 행진을 따라가며 관찰하던 중 30대 후반 직장인 김아무개(여)씨를 봤다. 그녀는 검은 마스크를 쓴 채 1m 크기를 가진 성조기를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 안보가 걱정돼서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게 됐단다. "박근혜 퇴진보다는 안보가 우선"이란다. 처음 촛불집회를 참여한 그녀는 "뭔가가 잘못됐다"고 했다. "'나라 상징인 태극기를 안 들고 왜 촛불을 들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김씨는 "태극기가 대한민국 상징으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좌파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에 충성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기에 나라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우리나라는 현재 안보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 어두운 밤 숭례문 집회 참가자들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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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뒤로하고 계속 걸어갔다. 숭례문이 보였다.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 방향으로 가는 세종대로에 진입했다. 연세 세브란스 빌딩과 롯데마트가 보였다. 서울역에서 멈출 줄 알았으나 행진 열은 우회해 통일로로 들어갔다.

연세세브란스 빌딩 앞에서 우회하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
 연세세브란스 빌딩 앞에서 우회하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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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 사거리를 지나 서소문 고가까지 왔다.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고가 인도로 갔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옆으로 와 "기자세요?"라고 물었다. 수첩과 펜을 들고 군중과 살짝 떨어져 걸어가는 모습이어서 기자라 판단한 듯싶었다.

그렇다고 하니 웃으며 태극기를 건네주었다. 웃으면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만졌다. 눈으로 봤을 때는 천 재질로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가연성인 얇은 비닐 재질이었다. 가방에 태극기를 곧장 넣었다.

서소문고가로 진입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서소문고가로 진입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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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태극기를 건네받았다.
 이곳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태극기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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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께 행진열은 종착지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행진을 마친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진 모습이었다. 발언대에서 "수고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탄핵 심판 최종 변론이 27일로 결정되면서 이제 하루 더 가까이 다가왔다. 박근혜 대통령 출석 여부는 26일에 결정 난다고 한다. 아직 박 대통령이 변론에 참석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다.

대통령 변호인단이 변론 기일을 3월 2일에서 3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될지 안 될지 아직 미지수다.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탄기국 태극기집회도 양상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추워진 밤에도 "나라가 전복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또다시 무대 발언을 듣고 있었다.

행진을 마치고 다시 서울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행진을 마치고 다시 서울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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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가 너무 울려 발언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탄핵하면 안 된다'는 발언도 들릴까 말까 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는 환호했다. 그들을 담담히 바라본 채 등을 돌렸다. 다시 시청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에서 내려 가방에 담긴 태극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 버려진 태극기 역에서 내려 가방에 담긴 태극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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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박근혜,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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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속에서 팬을 들고 전진한다. 진실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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