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의 입국 금지

가수 유승준의 입국이 다시금 좌절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3일 유승준이 "비자 발급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총영사를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비자발급 거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들은 이와 관련하여 아직 재판부가 단호하다며 괘씸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등의 기사를 보도했지만, 그 관심도는 예전 같지 않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웬만한 연예기사가 아니고서는 대중의 주목을 받기 힘들 뿐더러, 유승준이라는 가수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수 유승준

가수 유승준 ⓒ 연합뉴스


언제적 유승준인가. 올해로 유승준이 데뷔한 지 20년이라고 하니 현재 20대들에게 그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가수일 것이요, 나와 같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에게도 그는 흘러간 90년대를 회상해야만 떠오르는 인물이다.

'가위'로 혜성같이 나타나 KBS <출발 드림팀>에서 에이스로 각광 받으면서 한때 바른 청년의 이미지로 어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바로 그 유승준. 활동하지 않은 지 오래 됐으니 그의 입국과 관련된 소송 자체가 이슈화되기 힘들 수밖에.

그런데 이와 같은 유승준에 대한 대중의 잦아드는 관심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의문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유승준을 입국 금지시키는 게 아직도 유효하냐는 점이다.

15년이나 지나 이제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유승준. 그의 입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그는 아직까지도 국내에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음험한 인물인가? 그가 입국하면 법정의가 땅에 떨어지는가?

법원의 판결 괘씸죄

사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병역비리와 관련해서 유승준을 가끔 술자리 안주로 꺼내놓는다. '스티븐 유'는 군대와 관련한 불공평의 상징이며, 예비역들에게는 전설 같은 이름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심정적으로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내가 '돈도, 빽도 없는' 탓에 DMZ 수색중대에서 26개월 근무하는 동안, 그는 해병대를 간다며 온갖 인기와 부를 독차지한 후 말을 바꿔 미국시민이 되어 병역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를 사랑했던 대중들에 대한 배신이요, 우롱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재판부의 선고는 일견 당연해 보인다. 법원은 "유씨는 대중적 인기와 청소년에 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을 면제받았다"며 "유씨가 방송활동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며 병역에 종사하는 국군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청소년에게 병역기피 풍조가 만연해지고 사회의 선량한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법원이 대중을 대신하여 그의 배신을 벌한 것이다. 그것도 명백한 불법이라기 보단 괘씸죄로.

그런데 이상하다. 법원의 판단이 심정적으로는 동의되지만 영 마뜩치 않다. 지금 20대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의 존재가 이 사회의 병역기피 풍조를 조장하고,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거니와, 15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법원의 모습 또한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필요 이상으로 한 개인에 대해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전에야 그가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만큼 재판부가 국민의 법감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불공평한 법 집행

내가 법원의 판단에 의아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승준이란 인물이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많이 잊힌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유승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유승준'들을 TV만 켜면 볼 수 있다. 바로 그들이 정부에 들어가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며, 그들의 자식들이 또 다른 '유승준'이 되어 당연하다는 듯이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관대작의 아들이면 운전할 때 코너링만 잘 해도 편한 보직에 배치되고, 국군 통수권자가 가늠자 대신 개머리판에 눈을 갖다 대는 한심한 현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월 24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를 방문, 보급품에 관해 설명을 듣다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건빵을 먹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월 24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를 방문, 보급품에 관해 설명을 듣다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건빵을 먹고 있다. 그는 담마진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 연합뉴스


 왜 하필 그의 아들은 코너링이 좋았을까

왜 하필 그의 아들은 코너링이 좋았을까 ⓒ 연합뉴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와 같은 현실에 우리가 무덤덤해졌다는 사실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결정적으로 꺾인 것은 아들의 병역비리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병역비리가 그때만큼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회지도층이 병역과 관련하여 꼼수를 부린 탓에 많은 이들이 원래 그러려니, 군대는 '돈 없고 빽 없는 자만이 간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는 시대착오적이며 불공정하다. 그것은 유사 '유승준'을 보호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성격이 짙다. 국가가 대중들의 분노가 향해야 할 대상을 감추기 위해 만만한 연예인을 대상으로 턱없이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 모습이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징병제의 정당성을 되찾고, 국가권력의 서릿발 같은 위엄을 과시한다. 이제는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연예인을 오히려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그동안 국가가 병역과 관련되어 행해온 자기부정을 만회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유승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재고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비록 심정적으로는 유승준의 입국금지가 싫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그것은 불합리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병역비리와 관련하여 유승준보다 죄질이 나쁜 이들이 오히려 잘 먹고 잘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진정 군인장병들의 사기를 생각하고, 병역기피 문화를 걱정한다면 지금 당장 병역과 관련하여 떳떳하지 못한 사회지도층부터 조사하라.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서릿발 같은 위엄을 보여 달라. 15년이나 흐른 가수보다는 현재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 법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고관대작 아들의 코너링을 감싸는 데 급급한 국가가 15년이나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유승준을 벌할 자격은 없다. 1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유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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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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