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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가이드'라는 자유로운 직업 덕분에 한겨울 같은 비수기에는 가까운 곳으로 자유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최근 2년간은 비용이 저렴한 일본(오키나와, 홋카이도, 오사카 등)을 자주 다녔다. 과거 중년 층 대부분은 패키지여행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혼밥', '혼술' 등 혼자 무얼 하는 문화가 더 이상 생소해 보이지 않는 지금은 혼자 돌아다니는 중년의 자유여행객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배낭 메고 혼자 여행 떠난다고 하면 주변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아저씨가 혼자 무슨 청승이냐...'라는 반응이나 '너무 쓸쓸하지 않느냐' 등.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쓸쓸하려고 여행 가는 거야...' 여행의 '맛'은 멋진 풍광이나 화려한 볼거리, 다양한 쇼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소한 거리 풍경이나 낯선 잠자리에서 맞는 아침, 고즈넉하고 무료한 시간 속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니는 것에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여행의 '느낌'을 찾을 수 있다.

요즘 언론에서 중년 층이 혼자 자유여행을 많이 떠난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묻거나 익숙지 않은 인터넷을 뒤져 불안불안하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며 대견(?) 하게 자유여행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는 투의 글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서툴지 않은 중년도 많이 있다. 오히려 차분하고 원숙한 여행을 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테마와 목적에서 중년의 자유여행은 젊은 층의 그것에 비해 약간 다를 수 있다. 아니 어느 정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층의 여행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뒤져 유명 관광지를 도장 찍듯 순례하거나, 꼭 먹어야 한다는 소위 인터넷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셀카를 찍기 위해 여행을 온 것 같은 방식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중년은 그렇게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풍성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세상 경험 많은 자'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

여행은 양적인 성과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것보다 깊이 있는 여행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저기 많이 다닌 것을 자랑삼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장소의 횟수에만 매달려 다니면 스스로에게 오래도록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한두 달만 지나도 다녔던 곳들이 대부분 기억에서 잊혀진다. 그래서 한 군데를 가더라도 깊이 있고 차분한 여행을 권하고 싶다. 시간적인 여유가 더 많은 중년층에겐 그런 '느린 여행'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실제로도 많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흔히 하는 말로 아이들 다 키워 놓고 이제 비로소 자신을 좀 돌아보기 시작하는, 그래서 나도 배낭 메고 떠나는 '자유여행'이라는 걸 해 보고자 하는 중년층을 위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팁을 얘기해 본다. 남들이 나에게 혼자 무슨 재미로 가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중년 남자의 쓸쓸하고 외로운 여행이야...'라고. 심각하게 한 얘기가 아닌 절반은 우스갯 소리이고 남들도 대부분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지만, 여하튼 기본 콘셉트는 그렇게 잡아 보자.

최근 가장 많이 간 곳은 일본의 오키나와이다. 오키나와가 매력적인 점은 근래 저비용항공사가 많이 생겨 가격도 저렴해졌고 운항횟수도 많아서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또 남국의 섬으로서 자연 풍광이 빼어나고 바다 물색이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운 점, 면적이 넓지 않고 오지스러운 곳이 별로 없어서 쾌적하고 수월하게 다닐 수 있는 점 등이다.

오키나와는 위도 상으로 한반도보다 훨씬 아래(적도 쪽)에 있다. 그래서 겨울철에도 따뜻하다. 위도가 다르기 때문에 기후도 다르고 자연 풍광도 다르고 식물생태나 문화도 다르다. 여행의 맛은 '다름'을 보는 것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키나와는 섬의 형태가 남북으로 기다랗게 되어 있어 다양한 섬의 모습들을 보려면 적어도 3박 4일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 이렇게 '오키나와에서의 일주일 - 중년의 자유여행(준비 편)'이라는 가상의 제목을 정하고 내 경험을 얘기해 본다.

예를 들어 한 달 정도의 여유를 두고 인천-오키나와 혹은 부산-오키나와 편 항공권을 구입했다고 치자. 맨 먼저 할 준비는 책을 사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해당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방대함이 효율적인 여행을 준비하는데 있어 오히려 혼란을 가중하거나 단편적인 것들만 나열하는데 그치는 것 일 수 있다. 일단 여행책자를 구입해서 한 차례 정독하고 나면 전반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다. 여행지나 맛집 등은 그 후에 차근차근 찾아보면 된다. 막연하다고 괜히 아이들에게 구박받으며 가르쳐 달라고 하지 말자.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한두 시간이라도 오키나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도 참 좋다. 맨 처음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와 비슷한 점들이 있어서이다. 일본 본토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은 곳, 일본에 합병된 지 불과 140년이 되지 않아 고유의 문화가 살아 있는 곳 등등. 개략적이나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인 특징들을 찾아보고 풍습이나 상징물, 고유 음식 등을 알고 가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에는 '시사'라고 하는 상징물이 있다. 동물 형상의 오키나와 수호신인데 제주도로 치면 돌하르방 정도에 해당된다 하겠다. 사자나 '해태' 비슷하게 생겼는데 오키나와의 전신 '류큐왕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오키나와의 거의 모든 전통주택들 지붕에는 암수로 된 '시사'상이 놓여 있고 특이하게 조각된 다양한 '시사'들이 많다. 오키나와 전통 마을을 걸으며 '시사'찾기를 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다음으로 교통수단을 정한다. 렌터카로 다니는 것과 대중교통이 있는데 오키나와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편이라 차를 빌려 다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운전 방향이 반대라 왼쪽 도로 운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 요령만 잘 숙지하면 크게 어려울 건 없다. 중년이라면 수십 년간의 운전 경력이 있지 않은가.

숙박은 호텔 비교사이트가 많아 미리 예약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을 추천한다. 단지 저렴한 비용 때문이 아니고 각지에서 자유여행을 온 여행자들을 만나 사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매력이 크다. 이층 침대에서 낯선 이와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즐거운 불편'이 여행의 참 맛이 되기도 한다.

숙소를 예약할 때 도착 날 하루만 하고 떠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숙소를 다 예약하지 않고 불안하게 어떻게 가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인터넷만 있으면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방을 구할 수 있다. 휴대용 와이파이 기기를 대여해 가면 말 그대로 정처 없이 다니며 아무 데서나 방을 구해 자는 것이 어렵지 않다. 다만 사전에 해당 지역에 대한 정보들을 잘 공부할 필요는 있다.

요즘은 너무 편한 여행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대부분 배낭 대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많이 걸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시행착오도 없이 맞춰지고 짜인 틀 속에서만 다니려 한다. 하지만 여행의 매력은 어느 정도의 '모험'이 있어야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맛이 있는 편이다. 예정에 없는 곳도 가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일정도 바꿔보고 다채로운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훨씬 기억에도 남는다. 일정과 코스를 완벽하게 짜는 것도 좋겠지만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가져가는 것도 매력이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가는 곳에 대한 공부는 많이 하기를 권한다. 보물섬에 가더라도 보물이 묻혀있는 지도는 미리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은 준비하는 기간이 더 설레고 즐겁다는 말이 있다. 나이 먹어서 귀찮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여행만을 고집하지 말자. '자유여행'이 별건가... 산전수전 겪으며 쌓이고 쌓인 내공이 여행에서도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고 떠나보자.

오키나와 남쪽에 딸린 부속 섬 구타카의 해안 풍경입니다.
▲ 오키나와 구타카섬의 해안. 오키나와 남쪽에 딸린 부속 섬 구타카의 해안 풍경입니다.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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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중년자유여행,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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