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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범인까지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만들었다. 손 목사와 양아들 안재선을 상징한 조형물 '사랑과 용서'다. 여수 손양원 목사 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범인까지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만들었다. 손 목사와 양아들 안재선을 상징한 조형물 '사랑과 용서'다. 여수 손양원 목사 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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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정치인이 특정집단을 "이념도 없이 국회의원하려고 대통령 치맛자락 잡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이념이란 이상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가리킨다. 이를 굳게 믿는 마음을 신념이라 한다.

정치적인 이념과 신념은 아니지만, 그 이념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목숨과도 맞바꾼 이들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이다. 그 사람들의 발걸음을 찾아가 본다. 전남도내에 있는 개신교 순교지와 유적이다.

개신교 순교지는 동부권의 여수와 순천, 서부권의 영광과 신안·목포·영암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도 사랑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 기념관이 여수에 있다. 순천 매산동 일대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영광 염산면은 한국 기독교의 최대 순교지로 꼽힌다. 신안에선 '섬 교회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가 살았던 증도가 중심이다.

여수 애양병원에 세워진 손양원 목사 동상. 손 목사는 애양원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지은 애양원교회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두 아들을 죽인 범인까지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키웠다.
 여수 애양병원에 세워진 손양원 목사 동상. 손 목사는 애양원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지은 애양원교회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두 아들을 죽인 범인까지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키웠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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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 앞 바다에 놓인 마루다리. 마루처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수 애양병원 앞 바다에 놓인 마루다리. 마루처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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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한 손양원 목사가 있다.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난 손 목사는 1939년 7월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애양원교회로 부임하면서 여수와 인연을 맺었다. 애양원(愛養園)은 한국 최초의 한센병 치료병원이다. 선교사들이 꾸려가던 광주의 한센병원을 모태로 하고 있다.

당시 나환자는 '한센병'이란 이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고흥 소록도에서처럼 인권 유린도 흔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애양원은 달랐다. 원생들의 자치로 운영되면서 나환자들 사이에선 천국으로 불렸다.

손 목사는 애양원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지은 애양원교회에서 사랑을 실천했다. 한센인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두 아들을 죽인 범인까지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키우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사랑의 원자탄'의 한 장면.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에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사랑의 원자탄'의 한 장면.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에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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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부부와 두 아들의 묘. 손양원 목사 유적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손양원 목사 부부와 두 아들의 묘. 손양원 목사 유적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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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여·순사건 때였다. 손 목사의 두 아들이 인민재판에 회부돼 죽었다. 나중에 두 아들의 총살에 가담한 안재선이 붙잡혔다. 손 목사는 아들들을 죽인 범인에 대해 분노하기는커녕, 계엄사를 찾아가 석방을 간청했다. 그의 간곡한 요청에 안재선이 풀려났다.

손 목사는 그를 양자로 삼아 전도사로 키워내는 사랑의 역사를 보여줬다. 이 이야기를 다룬 책이 《사랑의 원자탄》이란 제목으로 1966년에 나왔다. 이후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고, 오페라로 연출돼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손 목사는 나환자들한테도 진실한 사랑을 실천했다. 애양원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직원과 환자 자리를 구분하는 분리막을 거둬 차별을 없앴다. 전염 위험이 큰 환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도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며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기도 했다.

손 목사는 일제의 신사 참배를 우상 숭배라고 거부하다가 1940년 9월 구속돼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1년 6개월을 살고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자, 일제는 다시 종신형을 선고했다. 다행히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 땐 환자들과 함께 있겠다며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에 남아 있다가 순교했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를 찾은 신도들이 옛 애양원교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오후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를 찾은 신도들이 옛 애양원교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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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역사박물관 전시실. 의료기관과 선교기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갖가지 의료기구와 사진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 전시실. 의료기관과 선교기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갖가지 의료기구와 사진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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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신념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손 목사의 흔적이 여수에 남아 있다. 손 목사가 사랑을 베풀었던 애양병원이 있다. 애양원교회는 '성산교회'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과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수공항에서 가까운 여수시 율촌면에 있다.

옛 애양원교회는 1935년 일제 강점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교회 건축물이다. 한국 근대 선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은 병원 본관으로 쓰려고 교회와 함께 2층 규모의 석조 건축물로 지어졌다. 1999년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의료·선교기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갖가지 의료기구와 사진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한국 한센병 치료의 변천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탑과 기념관이 있는 유적공원도 가까이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손 목사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수시 율촌면에 자리하고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손 목사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수시 율촌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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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내부. 갖가지 사진과 전시 판넬로 손 목사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내부. 갖가지 사진과 전시 판넬로 손 목사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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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도 근대화를 이끈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순천의료원 인근, 매산동에 분포돼 있다. 이 일대는 당시 순천부읍성 북문 밖의 동산으로, 돌이 많아서 그다지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언덕을 선호하는 서양인의 관습과 저렴한 땅값이 맞물려 선교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1910년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썼던 주택과 병원 7동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5동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프레스턴 선교사 가옥은 매산여고 정문에 있다. 프레스턴은 목포영흥학교 교장, 광주 숭일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1907년부터 강진·해남·순천·여수에서 교회 개척에 나섰다. 프레스턴의 집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한식기와를 얹었다. 한국과 서양의 절충식 건물이다. 폭과 높이가 거의 1대 1을 이루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조지와츠 기념관은 현지인을 교회 지도자로 양성하는 보통성경학원으로 건립됐다. 조지와츠는 당시 재정의 큰 후원자였다. 기념관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순천의료원 바로 옆에 있다. 매산중학교 매산관도 순천의 대표적인 서양 근대 건축물이다. 1930년대 미국 남장로교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지은 교육시설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순천 매산여고에 있는 프레스턴 선교사 가옥.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한식기와를 얹은, 한국과 서양의 절충식 건물이다. 폭과 높이가 거의 1대 1을 이루고 있다.
 순천 매산여고에 있는 프레스턴 선교사 가옥.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한식기와를 얹은, 한국과 서양의 절충식 건물이다. 폭과 높이가 거의 1대 1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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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발간된 최초의 한글 성서. 지난 2012년 출간 130주년을 기념해 다시 출판됐다.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882년에 발간된 최초의 한글 성서. 지난 2012년 출간 130주년을 기념해 다시 출판됐다.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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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이 자원을 활용, 기독교를 통한 지역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립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을 순천시가 운영하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 한국 기독교의 흐름과 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박물관에선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종교가 아닌, 서양의 학문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근대식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통해 어떤 식으로 발전됐는지, 그때 우리 조상들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선교사들이 들고 다녔던 여행용 가방이 많다. 1882년에 나온 최초의 한글 번역 성경 복사본, 1890년대에 한글로 나온 성경 주석도 있다. 1902년에 나온 찬송집도 볼 수 있다. 1950년대 풍금, 오르간, 크로마하프, 오르간용 스피커도 있다. 당시 선교사들이 쓰던 텔레비전, 축음기, 세탁기, 주방용품 등 일상용품까지 전시돼 있다. 벽면에 붙어있는 교회사 연표도 당시 시대상과 기독교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1900년대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때, 우리 선조들이 피우던 봉초(담배).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때, 우리 선조들이 피우던 봉초(담배).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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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한국 교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ㄱ자 교회' 모형.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남녀칠세부동석'을 고려해 예배당을 ㄱ자 모양으로 배치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조형물과 함께 복원된 건물로 만날 수 있다.
 초창기 한국 교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ㄱ자 교회' 모형.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남녀칠세부동석'을 고려해 예배당을 ㄱ자 모양으로 배치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조형물과 함께 복원된 건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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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 교회'도 눈길을 끈다. 초창기 한국 교회는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 유교적 사고방식(남녀칠세부동석) 탓에 ㄱ자 모양의 예배당을 지었다. 예배 인도자를 ㄱ자로 꺾어지는, 가운데에 두고 남녀를 따로 앉혔다. 휘장이나 커튼까지 쳐서 철저히 가렸다. 전시관에서 조형물로 만날 수 있다.

박물관 2층에 ㄱ자 교회도 복원해 놓았다.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낯선 유교 가치관을 체험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신자들은 박물관을 돌아보고 실제 예배를 보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걷고 싶은 길로 꾸며 놓은 순천시 매산동 일대. 미국 선교사들이 일찍 들어온 매산동은 순천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다.
 걷고 싶은 길로 꾸며 놓은 순천시 매산동 일대. 미국 선교사들이 일찍 들어온 매산동은 순천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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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손양원 목사 기념관과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은 주일에 쉰다.
기념관과 박물관을 보려면 일요일을 피해야 한다.



태그:#손양원, #사랑의 원자탄, #애양원교회, #순천시 기독교 역사박물관, #프레스턴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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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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