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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글쓰기모임의 문집 표지
▲ 문집 표지 하남 글쓰기모임의 문집 표지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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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글쓰기 모임에서 문집이 나왔다. 책 제목은 <저 할 말 있어요>다. 새로 나온 문집의 표지가 정겹다. 아빠랑 딸 둘이 자는 모습이다. 딸 한 명은 아빠 앞쪽에서 자고 또 다른 딸은 아빠 등에 딱 붙어서 껌딱지처럼 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고만한 또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문집을 낸 글쓰기 모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생각을 해 보았다.

이야기의 시작은 2014년으로 올라간다. 당시에 나는 넷째 토요일마다 서울 합정동에서 열리는 글쓰기모임에 참가했다. 이 모임은 월간 <작은책>에서 주최하는 모임이었다. 월간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변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뜻을 실천하는 잡지였다. 나 역시 작은책을 접하고 진솔한 생활글에 매력을 느껴서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쓰기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친구인 명삼씨와 함께 서울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명삼씨는 내가 사는 하남에서 작은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명삼씨가 써온 글은 '작은 도서관을 준비하고 있다'로 기억한다. 글쓰기모임에 다녀온 뒤 우리는 작은 도서관을 개관하면 하남에 글쓰기모임을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우리는 모임 회원을 어떻게 모을지 머리를 맞대었다. 떠오르는 건 글쓰기 강좌를 열어 회원을 모집하는 것. 6월에 개강하는 생활글쓰기 강좌를 계획했다. 생각보다 예산이 부족해 서울에서 강사를 부르긴 힘들었다. 명삼씨가 옆에서 "정민씨가 해"라며 부추겼다. 내가 하라고? 나는 글쓰기 관련 전공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공대생이었다. 글쓰기라고는 <작은책>의 글쓰기 모임에 칠 년 다닌 거 그리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공모전에서 상을 몇 개 받은 게 다다.

그 정도로 글쓰기 강사를 해도 될까? 그게 가능할까? 생각해 보니 논술 관련 자격증을 하나 따둔 게 있긴 하다. 언니가 성화를 부려서 따둔 자격증 하나. 그걸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내 마음은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내가 안 하면 동네에서 글쓰기모임을 만드는 게 무산될 것이다.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면 내부에서 누구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경험이 부족한 나라도 나서야지.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지 어찌 알겠나. 그래서 무모하게도 용기를 냈다.

첫 강의가 열리는 날, 수강생들이 얼마나 올지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었다. 강의실에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작 시각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사전에 수강 신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싶었다. 십 분이 지났는데도 명삼씨와 나 둘만이 큰 강의실을 지켰다.

수강 신청을 한 사람은 왜 안 오지? 늦나? 강사가 나라서 사람들이 안 오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첫 강의만이라도 유명한 사람을 부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한편으로는 '멀리서 강사 불렀는데 이렇게 안 오면 강사 섭외한 내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와야 강의를 시작할 텐데 하고 초조하게 밖을 살폈다. 마침 명삼씨가 전화 통화를 마치고 강의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지금 너무 죄송한 말씀인데요. 수업을 시작하셔야 할 거 같아요."

진짜 머리가 노래졌다.

"사람들이 지금 오고 있으니까 몇 분 뒤면 도착할 거 같아요" 이런 말을 하리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평소에 명삼씨는 그렇게 정색하고 사무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난 쭈뼛쭈뼛 연극을 하듯이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하고 시간이 흘러가니 어색한 마음은 없어지고 어느새 강의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빼꼼히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서관에 왔다가 강의가 있다는 홍보물을 보고 들어온 분이었다. 그리고 지각을 한 수강생들도 곧이어 들어왔다. 첫 강의가 끝이 날 땐 명삼씨까지 총 여섯 분이 강의를 들어주었다. 한 분이 들어오실 때마다 얼마나 기운이 났는지 모른다.

그렇게 미숙하게 하남의 글쓰기모임은 첫발을 내디뎠다. 유명 강사도 없었고 강의를 들은 수강생도 적었지만, 우리의 목표는 소박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할 수 있는 인원만 모이면 좋겠다. 강좌가 끝이 나고 글쓰기모임으로 전환하고 한두 달이 지나니 인원이 다시 줄기 시작했다. 마침 지인이 전화해서 우리 모임에 관해 물었다.

"왜 사람들이 모임에 많이 안 오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모임 이끄는 제가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면 작은 성취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지금 말한 문제를 보강하면 모임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간 나온 글을 모아서 <글쓰기신문>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 신문을 만들면 사람들이 우리 모임에 오고 싶을까?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A4 용지 네 페이지를 두 쪽씩 붙여서 A3 용지에 양면 복사를 해서 첫 신문을 만들었다. 신문 부당 비용이 200원으로 100부를 만들었다. 그러니 신문제작 비용 2만 원. 우여곡절 끝에 하남 글쓰기신문은 2호까지 나왔다.

월간<작은책> 과 작은책에 실린 하남 글쓰기모임 안내 글
 월간<작은책> 과 작은책에 실린 하남 글쓰기모임 안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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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문을 들고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갔다. 그 신문에 실린 글이 <작은책>에 실리기도 했다. 그 후로 글쓰기모임이 끝나면 나온 글과 후기를 <작은책>에 보냈다. 글을 쓰면 글이 발표되는 통로를 갖춘 것이다.

이 년 반이 지난 지금 활동하는 분들은 강좌가 끝난 뒤에 들어온 분들이다. 모두 다 이 모임에 나온 지 일이 년이 되었다. 회원들의 글 수준도 많이 늘어서 글쓰기모임을 이끌던 내 수준과 별 차이가 없다. 회원 중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이영란 회원님도 있다. 오름과 으뜸에 오르는 글을 여러 편 쓰셨다. 김은영 회원님도 우리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여러 공부 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이제 하산해도 될 만큼 성장한 회원들의 글을 보면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난 뭐 하고 있었나 싶어 한심한 마음도 든다. 그런 면에서 이 모임은 나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이렇게 굽이굽이 이어져 오는 글쓰기모임에 회원들이 가져온 글과 강좌 때 썼던 글을 모아 첫 문집을 만들었다. 이 책 읽어보고 생활글이 참 만만하네, 뭐 이 정도면 나도 글 쓸 수 있겠다, 이런 엄두를 내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 동네 글쓰기 모임 올해도 잘 되고 두 번째 문집도 나오면 좋겠다.

구리 공원으로 나들이 가서 글쓰기 모임을 하는 모습입니다.
▲ 글쓰기모임을 하는 모습 구리 공원으로 나들이 가서 글쓰기 모임을 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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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글쓰기모임, #문집,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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