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에리 감독

라니에리 감독 ⓒ 연합뉴스/EPA


축구 팬이라면 각자 꿈꾸는 이상이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국가가 월드컵을 우승하기를 바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팀이 1부 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너무 약하다면, 그것은 그냥 꿈으로만 남기 쉽다. 그리고 그 팀의 팬과 선수들, 그리고 모든 구단의 직원들은 그 꿈을 접어두고 보다 현실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되기도 한다(그리고 사실 이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지난 시즌 클라우디우 라니에리 감독과 '여우 군단' 레스터시티가 보여준 모습에는 모두가 놀랐다. 제이미 바디, 은골로 캉테, 리야드 마레즈, 대니 드링크워터, 카스퍼 슈마이켈. 이러한 선수들은 라니에리 부임 이전에는 완성되지 못했다. 그들은 축구계의 루저였기에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했고, 그렇기에 클라우디우 라니에리의 부임으로 무언가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다고 보였다. 그러나 라니에리와 여우 군단은 당당히 EPL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고, 우리는 이제 축구계의 이변들을 볼 때마다 레스터 시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레스터 시티의 구단주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Vichai Srivaddhanaprabhaㆍ58) 는 그 기적이 일어난 이듬해, 라니에리의 경질을 결정한다. 올 시즌 현재까지 라니에리와 레스터 시티의 성적은 5승 6무 14패, 승점 21점으로 18위 헐 시티와 승점차는 1점밖에 나지 않는다. 이러한 부진을 이유로 레스터 시티는 라니에리를 전격 경질했다. 그러나, 과연 이 선택이 옳았을까? 필자는 약간의 의문을 던져본다. 그가 경질되지 말았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1.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레스터 시티는 세비야 원정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뚜껑을 열어 경기 내용을 보았을 때, 레스터 시티의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카스퍼 슈마이켈의 선방이 계속되지 않았다면 대패를 당할 수 있는 경기였다. 2-0으로 지고 있던 후반 28분에는 레스터 시티의 제이미 바디가 만회골을 넣으면서 2-1로 격차를 줄였다.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원정 득점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이 득점으로 인해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리게 될 2차전에서 레스터 시티는 이변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레스터 시티는 2차전을 흐름이 끊긴 상황에서 치러야 한다.

2. 레스터 시티의 라니에리는 지난 시즌 우승으로 팬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사실 팬들의 지지만 받은게 아니다. 지난 우승으로, EPL을 보던 전 세계인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레스터를 향해 박수 갈채가 이어졌고, 모든 선수들은 대 스타가 되었다. 레스터 현지 팬들은 라니에리에게 'The Godfather(대부)'라는 애칭까지 붙여주면서 레스터의 감독 라니에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팀이 강등권 근처에 위치하고 있을 때도, 모두가 안타까워 했지만 그 잘못을 라니에리에게 돌리지 않았다.

라니에리가 경질 된 지금, 팬들은 레스터 시티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어떤 현지 팬은 BBC Sports 의 페이스북 게시물 댓글에서, "나는 레스터 시티의 팬들이 나와 함께 모두 남은 경기를 보이콧 했으면 한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팀이 강등을 당해도, 3부 리그에 가도 팀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던 레스터의 시민들이, 지금은 라니에리의 경질로 인해 등을 돌리고 있다.

3. 라니에리는 선수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던 감독이었다.

지난 2월 6일, 레스터 시티의 신성 데머리이 그레이는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라니에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가 함께한다. 우리 모두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 더욱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선수단 내의 불화까지 일축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첼시로 이적한 은골로 캉테는 경기 종료 후 라니에리와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이며 둘의 사이가 여전히 좋음을 보여줬다. 레스터 시티 시절, 라니에리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알려진 캉테는, 첼시에 온 이후로도 라니에리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선수들이 지지했던 영웅적인 감독을 내친 레스터 시티, 과연 그러한 감독을 내친 후에 어떤 이가 감독이 되어 그의 공백을 채울지는 알 수 없지만, 새 감독은 레스터 선수들의 마음을 얻기 힘들 공산이 크다.

4. '레스터 시티'는 감독을 자를만큼의 조건이 되나?

레스터는 오랜 기간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오지 못했고, 지금의 구단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재정난도 같이 겪고 있었다.

이 단락에서 하고 싶은 말은, 수년 전 까지 하부리그를 전전하던 팀이 자신들을 프리미어리그챔피언으로 만들어 준 감독을 자를 만한 이유가 충분하냐는 것이다. 한 예로, 이언 헐리웨이 전 레스터 시티의 감독은, 팀이 3부리그 강등 경쟁을 펼치고 있을 때에도 경질되지 않았다. 그가 경질된 때는, 비로소 3부리그로의 강등이 확정 된 시즌의 끝이 왔을 때였다. 또한 미키 아담스 감독은, 팀의 승격을 이룬(2002-03) 다음 시즌(2003-04) 곧바로 팀이 강등당했으나 그는 2004년 10월 달 까지 팀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10여 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나 레스터는 분명히 하부리그를 전전할 때에는 감독들에게 시간과 여유를 주던 팀이었다. 하지만 라니에리를 경질시킨 지금, 레스터 시티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이름 하에 거만해진것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만 할 것이다.

5. 라니에리는 절대로 포기할 감독이 아니었다.

라니에리의 여우 군단이 세비야 원정에서 패배한 뒤 라니에리가 인터뷰에서 남긴 한 마디는 "레스터는 계속 싸울 것이다"였다. 세비야에게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2-1을 만들어 냈고, 라니에리 역시 포기하지 않고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의 2차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아스널의 대니 웰백에게 95분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한 경기에 대해서, 훗날 라니에리 감독은 "아스날 11명이 우리 팀의 10명을 이기는 데에는 95분이 걸렸다. 속으로 나는 '어쩌면 우리는 순위표의 아주 높은 곳에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오히려 그 경기를 통해 우승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회상했다.

위 예시의 두 패배와 그에 대한 라니에리의 생각은 라니에리가 어떤 감독인가 잘 보여준다. 그는 챔피언이었던 팀이 무너져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어도, 팀을 잘 추슬러 포기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감독 중 하나였다.

6. 축구 팬들이 보고 있던 몇 안 되는 훌륭한 동화를 허탈하게 마무리했다.

이건 축구의 문제는 아니고, 감성적인 문제이다. 레스터 시티의 동화는 돈이 축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 지금 상황에서 몇 안되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런 동화가 다름 아닌 구단의 경질로 끝을 고했다는 것은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시즌의 레스터 선수들의 몸값은 정말 저렴했다. 레스터 시티의 베스트 11을 구성한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쓴 이적료를 다 합쳐도 42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 돈이면 1명의 슈퍼스타를 데려오는 데에도 한참 부족하다. 그러나 레스터는 우승했고, 축구계의 루저들은 위너가 되었다. 그들의 역전 스토리는 자본이 모든 게 아니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감동적인 교훈을 주었다. 슬프더라도 그 결과가 강등으로 이어지는 게 나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레스터와 라니에리의 동화는 끝이 났다. 과연 라니에리를 잃은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가 남은 시즌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도 EPL의 주목할만한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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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jun_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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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에 관해 글 쓰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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