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2014년 겨울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이후 지난 2년여간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부임 초기만 해도 바닥을 헤매던 한화를 재건할 구세주로 평가받으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팀은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2년간도 모두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하며 암흑기가 무려 9년 연속으로 더 늘어났다. 오히려 투수혹사와 부상병동, 시대착오적인 야구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지면서 김 감독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추락했다.

한화 구단은 지난겨울 팬들의 거센 경질요구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을 결국 유임시키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미 계약기간 3년의 마지막 해만을 남겨두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미래는 여전히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구단이 올해부터 프런트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노선이 바뀌면서 김 감독의 권한은 대폭 축소됐다.

한화는 LG 감독과 NC 육성이사 등을 지냈던 야구인 출신 박종훈 단장을 새로 선임하며 프런트의 영향력을 강화했으며 올해는 외부 영입 대신 내부 육성과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내심 적극적인 전력보강을 통하여 올시즌 자신의 명예회복을 노렸을 김 감독의 기대와는 상반된 흐름일 수도 있다.

한화는 그동안 성적과 별개로 감독들의 계약기간을 최대한 지켜주는 전통이 있었다. 물론 한대화 전 감독처럼 임기 만료를 몇 달 남겨두지 않고 경질된 불행한 사례도 없지는 않았지만, 김인식-김응용 전 감독처럼 계약 마지막해 꼴찌를 기록하고도 임기를 끝까지 마친 사례들이 많다.

올시즌의 성적이 변수가 되겠지만 냉정히 말해 김 감독이 내년에도 한화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면 계약 마지막 해의 노감독이 한화에서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팀운영을 위한 장기적인 구상과 방향은 프런트에 맡기고 김성근 감독은 남은 기간 선수단을 무리없이 이끌며 차기 감독이 안정적으로 리빌딩을 완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지휘봉을 물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김성근 감독과 한화 프런트의 '행복한 공존'이나 '아름다운 이별'은 모두 쉽지 않아보인다.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단장의 훈련 참관 문제를 놓고 고성이 오갔다든지, 감독이 구단 프런트의 정책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은 사실 김 감독의 유임이 확정됐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가능했던 장면들이기도 하다. 아직 시즌에 돌입하기도 전에 이정도인데 개막 후에는 팀성적이나 선수관리 문제에 따라 또 어떤 시한폭탄이 터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한화가 '프런트 야구'로의 변화를 모색하면서 정작 김 감독을 유임시킨 것부터 일종의 난센스였다. 야구에 대하여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 감독이 프런트야구와는 철저히 상극인 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만한 사실이다.

김 감독이 주장하는 프런트의 역할론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프런트는 배후에서 지원만 하고 야구단 운영의 전반적인 주도권은 현장, 더 정확히 말하면 감독이 모든 전권을 휘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프런트야구가 보편화된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단장이 시즌중에도 현장에서 감독과 팀운영에 관한 방침을 수시로 공유하고, 선수단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김 감독의 야구관을 기준으로 보면 모조리 프런트의 '월권'이나 '간섭'이 되어버린다. 애석하게도 김 감독은 현대적인 프런트야구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다.

물론 김 감독의 주장처럼 프런트야구라는 방식만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김 감독이 구단에 불평을 늘어놓거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전에 먼저 잊지말아야할 것이 있다. 한화가 지금의 프런트야구로 다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책임이 바로 김 감독 본인에게 있다는 점이다.

한화는 올해 팀 연균 연봉이 1억8400만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연봉 총액도 105억500만원으로 전체 1위다. 팀 연봉총액이 100억원을 넘긴 팀은 한화 뿐이다. 김 감독이 부임하면서 즉시전력감을 보강한다는 핑계로 고액 FA와 베테랑 선수를 무더기로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기대했던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김 감독의 야구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마저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폭등한 인건비와 함께 한화에 붙은 또다른 타이틀은 '경로당'이다. 한화는 선수단 연령이 29.4세로 거의 평균 30세에 육박하는 리그 최고령 팀이다. 김응용 전 감독의 마지막 해인 2014년의 27.3세보다 평균 2살 가까이 연령대가 더 높아졌다. 김응용 감독은 비록 한화에서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지만 최소한 젊은 선수들을 적극 중용하며 팀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려는 노력은 했다.

후임자인 김성근 감독은 구단의 전례없는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도 성과는 커녕, 전임자가 그나마 남긴 유산마저 약 2년만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선보였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베테랑들을 영입하기 위한 대가로 무수히 많은 젊은 유망주들이 팀을 떠났다. 이는 김 감독이 떠나는 몇 년 후에도 장기적으로 한화의 리빌딩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감독은 장기적인 선수육성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김태균보다도 나이가 많은 노장선수인 이양기를 김태균의 후계자로 거론하는 등 선수 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조차 무지한 모습을 보였다. 감독이 몇 년간 성적도 미래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에, 이제라도 프런트가 나서서 '육성'을 거론하며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감독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깨끗하게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구단과 선수, 팬들은 이후로도 여전히 남는다.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은 감독이 자신의 개인적 명예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팀운영을 농단해서는 곤란하다. 최소한 더 이상 선수를 부상으로 몰거나 프런트와의 갈등을 부각시켜 스스로의 권위를 합리화시키려는 욕심은 금물이다. 그것이 지난 2년간 한화에서 유례없는 절대권력을 누리고도 팀을 망친 책임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이자 예의일 것이다.

김 감독이 마지막 시즌에도 팀의 미래보다 개인의 명예나 권위를 지키는데만 집착한다면 불행해지는 것은 한화 선수단과 팬들 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게 최선이다. 정당하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프런트를 두고 김 감독이 자꾸 비난하거나 이제와서 육성을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불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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