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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1만원 이야기는 어디로?
 최저임금1만원 이야기는 어디로?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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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마포 망원동 한 편의점에서 하루 10시간씩 야간에 일을 했던 한 알바노동자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경쟁자들은 수백만 원의 돈을 내며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돈도 없고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는 공무원 시험 합격뿐이다. 하지만 불면증 때문에 무기력해져서 공부가 잘 안 된다."

그는 처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바노조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이야기한 지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4860원이었던 시절 사람들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은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캠페인을 나가면 시민들에게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노동계가 최저임금 협상테이블에서 1만 원을 요구했고, 2016년에는 모든 야당이 총선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이제 대통령선거다. 최저임금1만 원을 실현할 때가 왔다.

2020년에 해도 좋은 것은 2018년에 해도 좋다

충분한 최저임금은 인권 문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건 반인권적인 상황이고 즉각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인권은 미루거나 점진적으로 다뤄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우니 노예해방은 나중에', '젊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은 시기상조니 일단 중년 여성들부터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2019년, 2020년...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일부 야당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렇게 몇 년간 유예를 두고 시행하겠다는 소리는 상황을 봐서 안 할 수도 있다는 의사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최저임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올리면 경제가 망가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 자체도 근거가 부족한 선동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200만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들이 이미 망가져 살기 힘든 지경인데 그놈의 경제가 누구의 경제인지 모를 지경이다.

저들이 말하는 대로 악몽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사달이 나도 최소한 지금보다 우리가 더 망하지는 않을 게다. 주5일제 시행할 때도 저들은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루 덜 일하니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져서 위기가 온다 했다. 결과는 어땠나?

뭔가 점진적이고 조금씩 올리는 게 충격도 적고 반발도 적고 그럴싸해 보인다. 2018년 최저임금 1만 원을 했더니 알바 일자리가 반토막이 난다거나 소득상승을 웃도는 최악의 인플레가 벌어진다거나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우리도 최저임금 1만 원 주장을 철회하겠다.


2007년
2010년
최저임금 인상률
12.7%
2.8%
소비자 물가상승률
2.53%
2.96%
전년대비 실업률 증감
-0.3%(당해 3.2%)
 +0.1% (당해 3.7%)

         * 각각 출처는 최저임금위원회, 통계청,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최저임금이 없었던 독일에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더니 오히려 실업률이 떨어지고 나쁜 일자리가 줄었다. 2016년 최저임금을 34% 올린 미국 포틀랜드 주에서도 실업이 늘지 않았고 생활물가도 오르지 않았다. 한국 현실과 다른 외국 이야기라고? 2010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인상률은 2.8%였다. 2007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2.7%로 2010년의 네 배였다. 2010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96%였으니, 2007년 물가상승률은 그 4배인 12%쯤 되었을까? 오히려 2010년보다 더 낮은 2.53%였다. 실업률은 어떤가? 2010년은 전년에 비해 0.1% 올랐다. 2007년은 0.3% 떨어졌다. 이쯤 되면 최저임금이 실업이나 물가와 관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근거 없는 공포는 접어두는 편이 낫다. 

가난한 우리 사장님은 어쩌죠?

영세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1만 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겠다. 최저임금 이야기를 하면 자꾸 '600만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아냐'며 숫자를 왜곡하는데, 이 중 450만 명은 고용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지불할 임금도 없다. 600만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는 순간 악의적 선동의 동조자가 될 뿐이니 자제하기 바란다.

이제 나머지 150만 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이들 중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인건비 문제가 아니다. 계약 갱신할 때마다 몇 배로 치솟는 월세와 보증금, 매출의 50%를 수수료로 가져가면서 장사를 그만두면 수억의 위약금을 요구하는 프랜차이즈 본사, 수시로 부품값을 후리거나 공급하는 원재료 가격으로 장난치는 갑질 행태가 문제다.
알바노조의 주장은 이 표에서 임대료와 로열티를 규제해서 최저임금1만원 하자는 것이다.
 알바노조의 주장은 이 표에서 임대료와 로열티를 규제해서 최저임금1만원 하자는 것이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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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으로는 매출이 안 나오는 게 사장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영세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이 천원이 된다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1만원 하자는 이야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대책 없이 임금만 높이라고 떼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최저임금 올리자고 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에서 낮은 인건비는 '디폴트값'이다. 임금을 적게 줄 수 있으니 부품값도 후리고 수수료나 위약금도 높게 설정하고 월세도 팍팍 올리는 상황이다. 알바 임금 제대로 주고 갑들의 부당이득을 가져올 생각을 해야지, 갑들이 무서우니 알바들을 후려서라도 내 이득만 챙기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최저임금이 올라야 자영업자들도 대한민국 진짜 갑들과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언제까지 알바들이 양보할 수는 없다.

박근혜가 탄핵되도 최저임금은 박근혜가 결정한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우리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우리는 닥치는 카드결제일을 걱정하며 정치를 환멸하게 될 것이다. 광장의 흥분과 열정은 일터의 고통과 모욕과 기묘하게 양립한다.

탄핵이 인용되어 박근혜가 물러나도 2018년 최저임금은 박근혜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결정한다. 2월 임시국회에서 최저임금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속절없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이 같은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동자-사용자의 대립으로 위원회가 파행이 나면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박근혜는 공익위원 9명 중 4명을 경영대 교수로, 4명을 국책기관 연구원으로 채웠다. 나머지 1명은 공무원이다. 사용자와 가까운 성향이고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는 거수기나 진배없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메모에서 청와대가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증거도 발견됐다.

곧 3월이 되면 노동부장관이 공식적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2018년 최저임금 결정을 의뢰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전에 법을 바꾸지 않으면 2018년 최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은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이런 시급이 제자리라면, 알바노동자들에게 촛불이 무슨 소용이고 정치가 무슨 쓸모인가. 우리에겐 시급이 시급하다.

작년 6월 알바노조는 국회 앞에서 3주를 굶으면서 농성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위해 318명의 알바노동자들이 1만2120시간을 함께 단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홍영표 환노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양대노총 위원장 등 수많은 유력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스무 개가 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쏟아졌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는 1만원을 내걸고 싸웠다. 그러나 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총선 때 최저임금 1만 원을 이야기했던 그 많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법안만 던져놓고 통과시킬 생각은 없다면 그 역시 기만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현 정치권에 의존하지 않는다. 알바들이,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나선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FIGHT FOR $15>운동으로 결실을 보았듯이 한국에서도 <시급, 만원> 운동을 시작한다.

작년 우리는 굶으면서 우리 몸을 해치면서 싸웠지만, 올해는 경총 회장과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것이다. 자신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면, 알바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함께 걸으며 인간의 임금을 받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말하자. 시작은 24일 오후 6시 서울 강남역이다.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대행진.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대행진.
ⓒ 대행진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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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알바노조 대변인입니다.



태그:#알바노조, #최저임금1만원, #모이자2.24, #시급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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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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