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2.23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2.23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에서 활동하는 박한희입니다.

지난 목요일(16일), 저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페럼타워에서 열린 성평등포럼에 갔습니다. 대선 후보로 나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13일 보수기독교단체를 방문하여 차별금지법에 사실상 반대한다고 말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문재인 후보의 이러한 발언은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은 아직 이르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기존 입장과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또 지난해 2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국회 기도회에 참석하여 차별금지법, 동성애법에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 차별선동 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눈치를 보고 오히려 그에 동조하는 사이에, 차별금지법은 벌써 10년째 만들어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에 저항하고 항의하기 위해 저희는 포럼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당일 포럼장에서 맞닥뜨린 반응은 당혹스러웠습니다. "동성애자이고 여성인데, 나의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느냐"는 활동가의 발언에 청중들은 합심하여 '나중에'를 외쳤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부정하는지 묻는 질문에 더 이상 설득될 생각이 없다고 답변한 문 후보의 말에는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어떤 청중은 행사가 끝난 후 저희에게 "왜 이렇게 잘난 척을 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포럼 당일 일어났던 이러한 일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둘러싸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축소판이라 생각합니다.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에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라고 답하고,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대한 주장이 이기적인 목소리로 비난받는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습니다.

신분증 낼 때마다 조마조마하고 싶지 않습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저 역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학교를 비롯해 일상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제 법적 성별은 남성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목소리가 이상하다, 남자냐 여자냐'는 말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관공서 등에서 신분증을 제시할 때는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저처럼 법적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가족과 지인들에게 외면 당하고 고립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국가인권위의 혐오표현 실태조사에서는 성소수자의 94.6%가 온라인상 혐오표현 피해를 당했다 답했고, 2014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서는 성소수자 학생의 54%가 차별과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의 현실 앞에서 어떻게 나중에가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원칙은 인권의 기본 전제이자 우리 헌법에도 분명히 명시된 기본권입니다. 차별금지법은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러한 평등원칙을 실현하여 차별에 대응하고, 차별에 고통 받는 모든 소수자들을 구제할 국가의 책무를 규정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입니다.

이에 대해 보수기독교세력은 성적지향이라는 문구 하나만을 걸고 차별금지법을 동성애법이라고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람들이 인종, 종교, 성별, 장애, 학력,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 없이 존중받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률입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도 당연한 존엄성을 가진 이 사회의 시민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의한 차별과 분리될 수도 없기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이러한 왜곡된 주장에 더 이상 손을 들어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겨울 저 역시 이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광장에는 다양한 무지개 깃발 아래 성소수자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 것은 더 이상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는, 약자라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짓밟히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열망에서였습니다.

차별금지법은 그러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더 이상 나중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은 지금 이 광장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드러내고 연대하며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캠페인 이미지. 2월 16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배제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참가한 성소수자들은 피켓팅을 했다. 하지만 행사 참가자들은 '나중에! 나중에!'를 집단으로 연호하며 피켓팅을 야유했다. 이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금 당장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자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캠페인 이미지. 2월 16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배제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참가한 성소수자들은 피켓팅을 했다. 하지만 행사 참가자들은 '나중에! 나중에!'를 집단으로 연호하며 피켓팅을 야유했다. 이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금 당장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자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남웅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3일, 광화문 광장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필자 개인 SNS에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소수자, #차별금지법, #문재인, #혐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