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이승훈이 금메달을 획득해 시상식에 올라 주먹을 쥐고 인사하고 있다. 이승훈은 이번 대회에서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2관왕에 올랐다.

22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이승훈이 금메달을 획득해 시상식에 올라 주먹을 쥐고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승훈이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4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종목 아시아 최강 이승훈은 23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5000m, 10,000m, 팀 추월에 이어 매스 스타트까지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이미 이번 대회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은 매스 스타트까지 정상에 오르면서 자신이 출전한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정강이 부상으로 대회 출전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이승훈은 4관왕으로 아시아 장거리 황제의 건재를 알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전향 10개월 만에 올림픽 금메달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다. 더 정확히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시작했다가 신목중학교 시절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후 2009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다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돌아온 경우다. 이승훈은 쇼트트랙으로도 2008년 강릉 세계선수권대회 3000m 금메달, 2009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 선수로 활약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선발전에서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 등에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신 이승훈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돌아왔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종목을 변경한 이승훈을 두고 주변의 시선은 썩 곱지 못했다. 하지만 이승훈은 스피드 스케이팅 전향 7개월 만에 5000m 한국신기록을 세웠고 이듬 해 열린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역사를 새로 썼다.

5000m에서 6분16초9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딴 이승훈은 이어진 10,000m 경기에서 12분58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장거리 최강자 스밴 크라머(네덜란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겹친 행운의 금메달이었지만 10,000m 공식대회 출전 세 번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업적이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3관왕을 차지한 이승훈은 2012년부터 슬럼프에 빠져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개인전에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하지만 팀추월 종목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러시아, 캐나다 같은 빙상 강국들을 연이어 제압하며 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덕분에 이승훈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김철민과 주형준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소치 올림픽 이후 이승훈은 다시 주종목을 바꿨다. 바로 동일 선상에서 출발해 순위를 가리는 매스 스타트 종목이다. 올림픽 장거리 종목에서 2개의 메달을 따냈고 쇼트트랙 최강국 국가대표 출신의 이승훈에게 매스스타트는 그야말로 '맞춤 종목'이었다. 이승훈은 2015년 노르웨이 월드컵과 2016년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차지하며 이 종목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출전한 전종목 석권, 여전히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다

사실 이승훈은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5000m 12위에 머물렀을 정도로 세계 정상권에서는 다소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이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과연 이승훈이 몇 개의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이승훈은 아시안게임을 열흘 앞두고 열린 강릉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팀 추월 도중 넘어지면서 스케이트날에 정강이가 베이는 부상을 당했다

8바늘을 꿰맨 이승훈은 무리해서 아시안게임 출전을 강행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승훈이 아시아 최고의 장거리 스케이터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승훈의 진짜 목표는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이 아닌 내년 평창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훈은 출전 강행을 선언했다. 정 힘들면 매스 스타트와 팀추월이라도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이승훈은 열흘 전에 부상 입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기량을 뽐내며 다시 한 번 아시아의 장거리 황제임을 증명했다. 5000m와 팀추월에서는 아시아기록을 새로 썼다. 이승훈은 22일 10,000m 레이스를 펼치고 같은 날 곧바로 팀 추월 경기에 나서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팀 추월의 금메달로 함께 출전한 평촌고의 김민석은 일찌감치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물론 김민석은 23일 1500m에서 자신의 힘으로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했다).

두 번의 아시안게임을 통해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은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역사상 최초로 4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또한 지금은 러시아 선수가 된 안현수가 가지고 있던 한국인 동계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5개) 역시 이제는 이승훈의 차지가 됐다. 한동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스타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승훈이 쌓아 올린 업적은 대단하다.

2006 도하 하계 아시안게임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수영의 박태환을 보는 듯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승훈은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매스 스타트와 팀추월 종목에서 메달을 노리고 있다. 2009년 4월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이승훈이 쇼트트랙을 고집했다면 지금쯤 어떤 선수가 됐을까. 물론 쇼트트랙에서도 꽤 훌륭한 실적을 내던 선수였지만 지금 같은 아시아의 독보적인 '빙신(氷神)'이 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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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 스케이팅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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