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열살 차이> 방송분 캡처

<열살 차이>는 위로 10살, 아래로 10살 차이가 나는 남성 두 명과 3번의 데이트를 즐긴 다음 한 명의 남성을 선택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다. ⓒ tvN


짝짓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문화다.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 모이면, 커플 탄생을 기대하고, 기원하고, 종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식 짝짓기'는, 웃음이 아닌 불편함을 주는 요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두 사람 모두의 동의가 없는 상황이나(KBS <해피투게더>에 엄현경-기안84), '커플 성사'라는 거대한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로맨스(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보는 사람의 손발을 달아나게 해왔다.

여전히 우스운 수준에 머무르는 '예능식 짝짓기'에 한 방을 날리는 콘텐츠 메이커는 바로 tvN이다. tvN은 <더 로맨틱>(2012)를 시작으로 <로맨스의 일주일> 시리즈(2014~2017), <내 귀에 캔디> 시리즈(2016~2017)를 연달아 선보이며 "여자를 두고 벌이는 남자들의 사랑 쟁탈전"의 수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웰메이드 로맨스' 예능의 장을 열었다. 진짜 신혼부부가 사랑을 꾸려가는 모습을 담은 예능 <신혼 일기>(2017)가 괜히 tvN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지난 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10살차이>는 로맨스 예능 장인 tvN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기 좋게 증명해냈다. 사회적 규범에 꼭 들어맞는 연애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 성립의 방식을 제안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프로그램의 포맷을 이루는 가장 주된 두 가지 요소가 방송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이렇다. 한 명의 여성 연예인이, 위 아래로 각각 열 살 차이가 나는 남성 두 명과 동시에 데이트를 즐긴다. 각각 3시간씩 3번의 데이트를 마친 후, 여자는 둘 중 한 명의 남자를 택할 수 있다. 우리는, '위 아래로 열 살 차이'와 '남성 두 명과 동시에'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나이주의'였으나 그 끝은 달랐다

 tvN <열살 차이> 스틸 사진

김동영 작가와 10살 차이가 나는 배우 황승언. 나이주의와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칫 '망작'이 될 뻔했던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솔직함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 tvN


2주간 방송된 1, 2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아마 '성숙한 연상남'과 '순수한 연하남'일 것이다. 방송은 이미 열 살 많은 남자와, 열 살 어린 남자에게 요구하는 바가 정해져있었다. 열 살 많은 남성은 어른 같이 여자를 토닥여줄 것이고, 열 살 어린 남성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앞서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 황보, 배우 최여진, 황승언 역시 데이트하는 남성들에게 그런 모습들을 기대했다.

남성 출연자들이 방송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더라면, 이 프로그램은 그저그런 한국식 짝짓기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프로그램은 빛이 났다.

'성숙한 연상남'의 프레임을 보기 좋게 깨버린 출연자는 단연 여행 작가 김동영(40)이다. 황승언과 데이트를 즐긴 그는, 시종 일관 '연상남 답지 않은' 발랄함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작업실에서 칼을 갈아 선물하는 엉뚱함을 보이는가 하면, 승용차가 아닌 스쿠터를 타고 연남동 일대를 쏘다니는 그의 모습은 '열 살 연상'이라는 콘셉트를 잊게 만들었다. 황승언 역시 그의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며 "나이 차이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아가 작가다운 섬세한 감수성을 자랑하는 그는, 매번 새로운 데이트를 준비하고 '데이트 일기'를 작성하는 등 털털한 황승언과는 상반되는 매력을 보였다. 훤칠한 키에 고가의 외제차를 몰며 '남성미'를 자랑하는 연하남 황정후(22)와는 다른 방식의 자아 표출이었다. 주로 '늑대 같은 남성들의 남성성 대결'로 결부되는 짝짓기 예능의 코드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었다.

황보와 데이트를 한 치과의사 반창환(51) 역시, 옛날 사진을 구경하다 감성에 젖어 눈물을 흘리거나, 뛰어난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등 섬세한 모습을 보였다. 최여진의 소개팅 상대인 성형외과 의사 조중석(45)은 여성과의 데이트를 어색해하고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행을 맡은 가수 성시경은 이러한 모습들에 "답답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누가 더 남자다운가'를 대결해온 그간의 방식에서 벗어난 꾸밈없는 모습들은 로맨스 예능에 한 발짝 진보를 가져 왔다.

 tvN <열살 차이> 방송분 캡처

고정관념? 사랑? 출연자들의 개성과 다양한 면모는 사회가 요구한 프레임을 현명하게 깨트린다. ⓒ tvN


나이주의와 성별 고정관념이 한데 어우러져 자칫하면 '망작'이 될 뻔했던 이 포맷은, 오롯이 출연자들의 솔직함으로 완전히 전복됐다. 시크하거나 털털한 여성 출연자들과, 그들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이는 남성 출연자들의 모습이 합을 이뤄 방송이 요구한, 그리고 사회가 요구한 프레임을 부순다. 이것이 '혁명적 로맨스'가 아니라면, 무엇이 혁명인가?

남성 두 명과 동시에? '다자연애'의 가능성

<10살차이>의 부제는 '나이 혁명 로맨스'이다. 남녀가 큰 나이 차이를 뛰어 넘어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콘셉트인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더 큰 혁명적 요소는 커플의 나이 차이에 있지 않다. '동시에 두 사랑을 허한다'는 것은 그간 볼 수 없었던 파격이다.

쉽게 말하면, '합법적 양다리'다. 여성 출연자가 동시에 두 남성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남자들도 알고, 시청자도 안다. 오전에는 연상남을, 오후에는 연하남을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삼자대면이 이루어지기도!

 영화 <우리 선희>의 한 장면. 선희는 폴리아모리스트(다자연애주의자)로 보인다.

영화 <우리 선희>의 한 장면. 선희는 폴리아모리스트(다자연애주의자)로 보인다. ⓒ ㈜영화제작전원사


이 지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 <우리 선희>(2013)가 생각이 났다. 선희(정유미)의 남자들인 문수(이선균), 재학(정재영), 최교수(김상중)가 우연히 한데 모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스릴러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준다. 문수는 전 남자친구이고, 재학과는 술김에 키스를 했고, 최교수와는 사제지간 이상의 '썸씽'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선희는 그 누구의 여자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세 남자 모두에게 (아마도)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선희는, 폴리아모리스트(다자연애주의자를 일컫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세 남자에 고루고루 '흘리고 다니는' 선희는 남성 관객들에게 썅년으로 기억된다. 세 남자가 마주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관계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것에 있다. 선희는 그 누구의 애인도 아니기에 한 남자에게 다른 남자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지만, 관객들은 어떠한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혀 세 남자 모두에게 여지를 준 선희를 썅년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10살차이>는 이 실체 없는 도덕적 딜레마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같은 기간에는 한 명의 이성만을 만나야 한다는 대전제를 완전히 깨버린 것이다. 소개팅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는 어떠한 명사 하나로는 규정할 수 없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다. 이 모호함을 프로그램 전면에 당당히 드러냄으로서, 모호한 관계 속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의 자유를 넓혀나간다.

 tvN <열살 차이> 방송분 캡처

배우 황승언은 '다자 데이트'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모호한 관계'라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잘 살려냈다. ⓒ tvN


이 삼각관계 구도가 가장 잘 드러난 소개팅은 황승언의 경우다. 저돌적인 성격의 연하남 황정후는 이 상황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긴장감을 드러내며 '다자 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잘 살려냈다. 첫 만남에서 황승언의 휴대전화로 연상남 김동영에게 전화를 거는가 하면, 두 번째 데이트에서는 황승언과 김동영의 데이트 장소로 직접 찾아와 삼자대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장면이, 앞서 언급한 <우리 선희>의 마지막 장면과는 달리 스릴러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다자 데이트가 이 프로그램 속 사회와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합의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까지 그토록 고수해온 '일대일 연애'의 신성함을 깨버린 <10살차이>는 그래서 발칙하다. 일부일처제 결혼 제도로 나아가기 위한 일대일 연애. 그 프레임이 사회에 재생산하는 성적 관계의 보수성은 '정숙한 여자'와 '여러 남자에게 흘리고 다니는 여자'의 간극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특히 여성의) 자기 검열에 이른다. 동시에 여러 남자와 만나도 안 될 것 같고-그것이 섹슈얼한 감정이든 '남사친'이든 간에-연락도 하면 안 될 것 같다. 한 공동체에서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만인의 썅년'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섹슈얼한 관계의 자기검열이 일상이 된 여성들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다자 데이트 포맷에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황승언은 실제로 "아 너무 재밌는 것 같아. 대놓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라고 말하며 해방적 감정을 표현했다. 양다리가 합법인 이 프로그램 속 사회에서, 여성들은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나아가 여성과 남성 모두는 '누군가의 애인'으로 규정되지 않은 이토록 모호한 관계성 속에서,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의 돌파구를 찾아나간다. 일시적 양다리를 허하는 것. 이것으로 관계 맺기의 패러다임은 변화한다.

연애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들

 tvN <열살 차이> 방송분 캡처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이 고민해야 할 연애에 대한 과제를 가져다 준 <열살 차이>. ⓒ tvN


더 나아가 <10살차이>는 연애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민 지점들을 은근하게 던지는 프로다. 함께 고민하면 좋을 듯 한 지점을 간략하게 언급하면 이렇다.

첫째는 애인의 직업. 여성 출연자로는 모두 연예인이 등장하지만, 남성 출연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의사, 클럽DJ, 테일러, 작가, 대학생 등 꽤나 넓은 직업군을 아우르는 캐스팅을 선보였다. 여성 출연진들은 특정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내 애인의 직업으로' 좋은/좋지 않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업은 곧 '연애 상대의 조건'과 연결이 되는 문제이기에, 이들이 고백한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은 시사점을 던진다.

'돌싱'과의 연애를 받아들이는 황보의 태도 역시 흥미롭다. 황보의 연상남은 올해 51세로 돌싱이다. 이 사실을 황보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고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싱과의 연애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는 괜찮지만 부모님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현실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의 준말)과 동거를 하는 황보의 연하남 존(28)의 모습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황보의 반응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녀의 공존이 꼭 성적 감정을 전제할 것이라는 사회적 오류에 빠지는 모습이기도 하다.

 tvN <열살 차이> 방송분 캡처

인위적인 데이트를 넘어 결국 이 프로그램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 tvN


이처럼 <10살차이>는 나이 차이, 성별 프레임, 다자 데이트라는 주제를 넘어서, 연애에 다양한 물음을 던지는 흥미로운 프로다. 이 물음을 받은 시청자인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집중해야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올바른' 방식의 연애란 무엇일까? 그 올바른 연애를 따르는 행위는, 때로 스스로의 본심을 배반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본심을 배반한 연애는,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다시,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는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는 일 보다 더 지루한 건 없고, 현실보다 더 거짓된 것도 없다. 그토록 역설적인 이 지구에 숨을 불어넣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실현하는 가시적 방식이 '연애'라면, 우리는 연애의 자유, 자유의 연애를 마음껏 즐길 자격이 있다.

마음이 원하는 만큼 가자. 아끼지 말고 가자. 이 발칙한 로맨스 예능이 우리에게 가져올 낭만적 혁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열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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