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색
클럽아이콘0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고를 쳤다. 딸아이가 가장 아끼는 인형 '돌핀'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다가 배에 상처를 냈다. 털의 일부가가 뜨거운 열에 녹아 내려 눌러붙었다.
 사고를 쳤다. 딸아이가 가장 아끼는 인형 '돌핀'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리다가 배에 상처를 냈다. 털의 일부가가 뜨거운 열에 녹아 내려 눌러붙었다.
ⓒ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허걱! 이를 어쩐다? 큰일이다."

사고를 쳤다. 말문이 막혔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올 해 일곱 살이 된 딸아이에게는 친구보다 소중한 '동생'이 있다. 결혼 11년 만에 태어난 딸아이는 동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인형들을 동생삼아 지낸다. 여행을 갈 때도 동생들 '10여 명(동물인형은 '마리'라고 불러야 한다고 누차 얘기했지만, 몰라서인지 아니면 정말 동생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항상 아이는 '명'으로 부른다)'을 데리고 다닌다.

이미 아이의 방과 책꽂이는 인형들로 넘쳐나고 심지어 함께 자야 한다고 침대에도 10명이 넘는 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인형 동생들 중에서도 아이는 분홍색 돌고래 인형을 가장 좋아한다. '돌핀'이라고 부르는 그 인형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 만난 '유리언니네'는 우리 가족과 남다른 관계였다. 유리엄마와 아이엄마가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를 같이 하는 것은 물론, 사는 곳도 가까워 일주일에 4-5일은 만나는 사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리아빠와 나는 성만 다를 뿐 이름이 같다. 그러니까 '재완씨'랑 사는 두 엄마들이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유리와 아이는 친자매처럼 지냈다.

어느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두 가족이 함께 마트에 들렀을 때, 나는 내 아이와 잘 놀아주는 유리에게 돌고래인형을 사줬다. 유리는 너무나 갖고 싶은 인형이었다며 가는 곳마다 그 인형을 들고 다녔다.

어느 날 유리아빠는 내 아이에게 같은 돌고래인형을 선물했다. 두 아이들이 돌고래인형을 너무 좋아하고 항상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같이 하나씩 가지고 놀라는 뜻이었다. 그 뒤로 둘은 항상 돌고래인형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리네가 이사를 갔다. 그것도 멀고 먼 부산으로 말이다. 다시 만날 것이라고 아이를 위로했지만 두 가족은 만나지 못했다. 아이는 가끔 유리언니를 떠올리며 부산에 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돌고래인형을 껴안으며 유리언니와의 추억을 되새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돌고래인형에게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사고를 쳤다. 돌고래인형 배의 털을 태워먹은 것이다. 잠잘 때도 끌어안고 자고, 외출할 때도 들고다녀서인지 돌고래인형은 쉽게 더러워졌다. 나는 아이에게 '인형 좀 빨자'고 매달렸고, 아이는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잘 때 몰래 인형을 빨아 널기도 했다.

사고가 나던 얼마 전 그날 아침에도 난 아이에게 돌고래인형 목욕 좀 시키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의외였다.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응, 나 유치원 갔을 때는 못 만지니까 지금 빨아서 말렸다가 저녁에 끌어안고 잘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럼, 아빠가 깨끗이 빨아서 빨리 말려줄게"라고 말하고 인형을 빨았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오는 저녁 때까지 인형을 말리기 위해서 탈수를 한 뒤, 이른 바 '초벌구이(?)'를 했다. 인형의 속에 있는 솜까지 다 마르려면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해서 헤어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인형의 몸속으로 침투시킨 것이다. 어떻게? 인형 배에 드라이어를 대서 말이다.

아차차! 그것이 나의 판단 실수였다.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드라이어는 사정없이 인형의 배에 그림을 그렸다. 아니 문신을 새겼다. 어이쿠야! 사고는 터졌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인형의 배에는 극세사털이 눌어붙은 무늬가 새겨졌다. 일단 나는 인형을 숨겼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출근도 하지 못한 채 아이엄마를 기다렸다. "여보! 이리 좀 와봐, 큰일 났어" 나의 호들갑에 놀란 아내는 인형을 보고 더 크게 놀랐다. 한참을 말없이 인형을 살피더니 "으이그... 이게 어떤 인형인데... 그 많은 인형들 중에서도 1호, 제1호 인데... 만날 '엄마 난 돌핀이 제일 좋아'라고 하는 인형인데... 어이구야"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인형제조사를 검색했다. 없었다. 3년이나 지난 모델은 생산이 중단된 상태인 것 같았다. 가까운 같은 이름의 마트로 연락해 봤다. 그런 종류의 인형은 이제 안 들어온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아무리 찾아도 똑 같은 모델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마지막으로 인형을 샀던 마트에 전화를 해봤다.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게 웬일.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안 되고, 제조사도 공급을 중단했는데, 남아 있다고? 그날 오전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일단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우리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마트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인형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럼 그렇지.

인형이 심하게 찢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져서 찢어진 것 같았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얘기했더니 "저희는 이런 불량품을 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이 인형을 꼭 사야 합니다. 그러니 좀 깎아 주시기라도 하면 안 될까요? 수선비라도 하게..." 그랬더니 "안 됩니다. 이런 불량품을 팔았다가는 저희도 큰일 납니다. 인형 이리 주세요"하는 게 아닌가?

 마트를 다 뒤져서 겨우 찾은 단 하나 남은 돌고래 인형. 그런데 돌고래의 날개 지느러미가 찢어져 있었다. 점원은 이런 불량품을 팔 수 없다고 버티고, 나는 꼭 사야한다고 우겨서 결국 사고야 말았다. 절대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서약을 하고서야 말이다. 돌고래 수선은 아내에게 맡겼다.
 마트를 다 뒤져서 겨우 찾은 단 하나 남은 돌고래 인형. 그런데 돌고래의 날개 지느러미가 찢어져 있었다. 점원은 이런 불량품을 팔 수 없다고 버티고, 나는 꼭 사야한다고 우겨서 결국 사고야 말았다. 절대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서약을 하고서야 말이다. 돌고래 수선은 아내에게 맡겼다.
ⓒ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새 돌고래인형과 구 돌고래인형. 시간의 흔적으로 새 것을 옛 것으로 바꿔치기하기는 어려워, 사실 대로 말하기로 했다.
 새 돌고래인형과 구 돌고래인형. 시간의 흔적으로 새 것을 옛 것으로 바꿔치기하기는 어려워, 사실 대로 말하기로 했다.
ⓒ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난 "정말 괜찮습니다. 이 인형 제가 꼭 사겠습니다. 찢어졌어도 아무런 불만 없으니 제발 팔아주세요"라고 사정을 해서 겨우 인형을 샀다. 그리고 아내에게 달려가 인형을 표 안 나게 수리해 놓을 것을 부탁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연 오늘 저녁 아이는 새 인형을 알아볼까? 아니, 차라리 솔직히 말해야 할까? 새로 사왔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퇴근해서 아이를 만났다. 아직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내는 솔직히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새것으로 대체하려고 했는데, 새것과 헌 것이 너무 표가 많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찢어진 부분 꿰맨 것도 있고 해서... 우리는 아이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앞에 앉혔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우리를 바라봤다.

"한이야! 두 가지 소식이 있어.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하나는 나쁜 소식이야. 어떤 것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
"응, 좋은 소식은 돌핀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거야."
"우와~~ 정말? 나, 돌핀 좋아하는데..."
"그리고 나쁜 소식은 너의 옛날 돌핀이 상처를 입었다는 거야. 이렇게 말이야."

그리고는 아이에게 두 마리의 돌고래인형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이의 반응은?

"우와~ 더 좋아졌네? 난 돌고래 배에 이런 무늬가 생겨서 더 좋아. 진짜 돌고래 같은데?"

응? 뭐지? 우리 부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머리가 띵했다. 너무나 쿨한 아이의 반응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거기에 대고 아이는 한 소리 더 한다.

"아빠? 새 돌핀 다음에 더러워지면 빨아서 이것처럼 무늬 만들어줘."
"....."

다행이다. 그렇게 소동은 끝이 났다. 아이는 이제 두 돌핀 동생을 껴안고 잔다. 헤어드라이어로 만든 무늬를 만지면서 말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허탈할까? 마트는 좋겠다. 찢어진 재고인형 제값 받고 팔아서...

 두개의 돌고래 인형이 생겼다며 너무 행복해 하는 7살 딸아이.
 두개의 돌고래 인형이 생겼다며 너무 행복해 하는 7살 딸아이.
ⓒ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