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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전경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전경
ⓒ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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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보급병이었다. 정확히는 2013년 4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육군훈련소 00연대의 연대본부 보급병이었다. 연대본부 보급병은 주로 신병물자, 즉 훈련병이 사용하는 물자의 보급을 담당했다. 육군훈련소 내에는 총 7개 교육연대가 있으며, 개별 연대가 한해 2만 여 명의 훈련병을 교육한다. 그만큼 취급하는 물자의 종류와 양이 상당하며, 물자 관리가 어려운 부대였다. 또한 물자 관리에 실패한 부대는 반드시 사고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 사고가, 바로 00연대에 발생했다. 내가 00연대로 배치된 것은 2013년 4월이었다. 당시 재물조사를 해보니, 거의 모든 품목의 재고가 전산 재고보다 모자랐다. 당시 00연대의 보급 담당관은 K중사였다. 나는 재물조사 결과를 보고했지만, K중사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그럴리 없다"고 말하다가, 본인이 직접 조사를 해보고는 "일단 급한 일 아니니까 그대로 두자"고 말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렇게 K중사는 6개월 가까이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0월 경, 훈련소 내에 소문이 돌았다. 조만간 부사관 인사 이동이 있을 것이고, 장기 보직자인 K중사도 포함(그는 2008년 1월부터 00연대에 있었다)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K중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부족한 재고를 채워놔야,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천만 원 어치에 달하는 부족분을 채울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는 전산 재고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전산 재고를 억지로 줄여서, 실제 재고와 맞추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른바 '창조 보급'이었다.

보급품을 지급받은 훈련병들의 모습
 보급품을 지급받은 훈련병들의 모습
ⓒ 국방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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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보급의 실체

K중사의 '창조 보급'에는 크게 세 가지 수법이 사용됐다. 하나는 '훈련병 수 부풀리기'였다. K중사는 전산 재산을 삭감하면서, 훈련병 수를 실제 입영한 인원보다 늘려서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는 2000명에게 보급을 했는데, 전산에는 2500명에게 보급했다고 입력하는 식이다. 당연히 500명분 만큼 실제 재산은 남게 된다.

또 하나는 계절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육군훈련소에 입대한 훈련병은 처음 사흘 간 '입영심사대'라는 별도 부대에서 지낸다. 이곳에서 당장 필요한 것들을 보급받게 되는데, 입대한 시점의 계절에 따라 품목이 달라졌다. 여름에는 하계 전투복이나 하계 운동복 등을, 겨울에는 방상내피(속칭 '깔깔이'), 동계 운동복 등을 먼저 보급받았다. 그 외의 품목들은 나중에 교육연대에서 보급했다. 육군훈련소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체 보급규정이 있었다.

K중사는 훈련병 수를 부풀리고도 일부 품목의 재고가 채워지지 않자 고심했다. 특히 겨울에 쓰는 보급품들이 문제였다. 뾰족한 방법이 없자, 전산에 계절을 바꿔서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전산 재산을 정리하던 시기는 2013년 11월이었다. 당연히 보급규정에 의하면, 겨울용 보급품은 교육연대가 아닌 입영심사대에서 보급했어야 했다.

하지만 K중사는 이를 무시하고, 연대에서 겨울용 보급품을 줬다고 입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더구나 당시 입영한 훈련병은 약 3000명이었는데 이들 중 900명만 조작하고 나머지는 정상적으로 보급한 것으로 입력하라고 했다. 여름용 보급품의 재고를 전산 조작으로 겨우 맞췄는데, 조작을 과도하게 할 경우 다시 틀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마지막 수법은 이중 삭감이었다. 한 번 줬다고 입력한 것을, 또 한 번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주로 전투화 등 재고가 많이 모자랐던 품목들이 대상이 됐다. K중사는 전달에 1번 삭감하고 다음달에 다시 1번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달에 작업을 하면 결산서에 2번 삭감한 것으로 찍혀 나오기 때문이었다. 마치 전달에 했어야 할 삭감 처리를, 빠뜨려서 다음달에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위장이었다.

육군 2사단 법무부에서 보내온 증인소환장
 육군 2사단 법무부에서 보내온 증인소환장
ⓒ 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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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은 손쉽게 무시됐다

문제는 '결산서'였다. 각 연대는 전산 재산을 정리한 뒤, 왜 이렇게 처리했는지를 근거로 작성해서 상급부대에 제출해야 했다. 그것이 결산서였다. 상급부대는 이 내용을 토대로, 입영 인원 등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검증했다. 당연히 실제로 훈련병에게 준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줬다고 하거나, 주지 않은 것을 줬다고 하거나, 전달에 준 것을 또 줬다고 쓰는 것은 통할 리 없었다.

그런데 K중사는 상급부대가 결산서를 대충 보기 때문에, 인원을 조작해도 이를 밝혀내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결산서마저 허위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부대장 서명까지 나에게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도를 넘는 지시가 계속됐다. 나는 "분명히 차후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그는 모두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상급부대의 검증 절차는 그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무시됐다.

하지만 그런 K중사 역시 막상 결산서를 제출하기는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는 결국 6개월 분의 결산서를 미제출한 채, 2014년 2월 부대를 떠났다. 심지어 후임자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꼬리는 금방 밟혔다. 상급부대에서 '00연대에 미제출한 결산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내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K중사가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부대를 떠난 지 불과 1주일 만이었다.

K중사는 후임자 O중사에게 "사소한 실수"였다고 해명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러면서 뒤로는 나에게 비밀스럽게 접촉해왔다. 심지어 휴가중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내, 부대 밖에서 따로 만나자는 연락도 해왔다. 그는 다시 전산을 조작하자고 말했지만, 더 이상 은폐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간부들에게 이 사고의 전말을 보고했다.

[어느 보급병의 반성문 : 중]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육군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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