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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도 나고 쪼글쪼글해져 식감이 떨어진 묵은 감자.
 싹도 나고 쪼글쪼글해져 식감이 떨어진 묵은 감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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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친정에서 감자 한 상자를 보내주시곤 하는데요. 쪄먹거나 삶아 으깨 샐러드도 해먹고, 채 썰어 볶거나 갈치조림에 넣는 등, 처음 한동안은 열심히 해먹는데도 이즈음엔 조금씩 남아 싹이 나곤 합니다.

'눈 딱 감고 몇 개만 사서 포실 포실하게 쪄 먹어볼까. 아니! 아니, (묵은 감자) 버리게 될지 몰라. 올해는 어떻게든 싹 나기 전에 해먹어야지. 그래서 이즈음에는 햇감자도 좀 먹어보고….'

농사지어 보내주신 것이라 어떻게든 해먹긴 하나, 다 먹어 치울 때까지 집에서 보관한 것과 달리 탱글탱글한 슈퍼마켓의 감자 앞에서 망설이곤 했습니다. 쪼글쪼글한 감자를 떠올리며 생각도 복잡해지고요. 제때, 제대로 해먹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벌써 몇 년째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좀 적게 달라고 할까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요. 칠남매 각각의 것을 한꺼번에 박스에 담고 택배로 보내시는데 별도로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오히려 번거로워 보이더라고요.

어차피 택배로 보낼 것. 감자 대신 무엇을 채워 보낼까? 고민도 하시는 것 같고. 추석 무렵이면 남은 감자 좀 가져가라고 할 때도 있을 만큼 두 분이 잡숫고도 남을 때도 있고. 그래서 '그냥 주시는 대로 받아, 열심히 먹자'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유독 바빴습니다. 오늘 저녁엔 감자볶음 해먹어야지 하다가도 껍질 까는 것조차 귀찮아 있는 반찬으로 그냥 먹은 적도 많답니다. 그러고 보니 감자전도 몇 번밖에 해먹지 못했네요. 그래서 다른 해보다 더 많은 양의 감자가 남고 말았습니다.

멸치육수로 간단하게 해본 감장옹심이랍니다.
 멸치육수로 간단하게 해본 감장옹심이랍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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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초겨울부터 감자에 싹이 돋아 자라고 있음을 봤는데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아 몇 주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설 연휴에 싹을 모두 잘라내고 작은 박스에 정리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다 먹나? 감자를 정리한 후 며칠간 머릿속에 쪼글쪼글한 감자가 꽉 차 있었습니다.

친정언니는 싹이 돋기 시작하면 껍질을 벗겨 삶아 버터 녹인 프라이팬에 굴려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고속도로 휴게소 버터구이 감자처럼. 그렇게 하면 금방 먹을 수 있다고요. 두세 개로 반찬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감자채볶음이나 감자전은 좋아해도 버터구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해마다 이즈음이면 식감이 떨어진 감자를 어떻게든지 먹으려는 노력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되는데요. 엊그제 토요일 아침 색다르게 해먹을 방법이 없을까?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감자옹심이'가 걸려들더라고요.

"색다른 식감이 좋은데! 담백하고. 겉은 탱글탱글하고 속은 쫄깃쫄깃한 것이 깊고 묘하네!"

아래는 이처럼 감탄하며 한 그릇 뚝딱! 감자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남편도 한입에 반한 감자옹심이 만드는 방법이랍니다.

손질한 감자를 강판에 간 후 베보자기로 짜 나온 건더기로 반죽하면 된다.
 손질한 감자를 강판에 간 후 베보자기로 짜 나온 건더기로 반죽하면 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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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한 감자를 베로 짜면 물이 나온다(보는 방향 왼쪽)  버리지 말고 물을 조금 부어 앙금을 가라앉혀 반죽에 섞는다(보는 방향 오른쪽)
 손질한 감자를 베로 짜면 물이 나온다(보는 방향 왼쪽) 버리지 말고 물을 조금 부어 앙금을 가라앉혀 반죽에 섞는다(보는 방향 오른쪽)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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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갈아 베보자기로 짠 거더기에 가라앉힌 앙금과 표고버섯가루, 전부가루를 넣어 반죽해 치댄후 메추리알 정도 크기로 빚는다.
 감자를 갈아 베보자기로 짠 거더기에 가라앉힌 앙금과 표고버섯가루, 전부가루를 넣어 반죽해 치댄후 메추리알 정도 크기로 빚는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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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은 감자, 표고버섯가루, 감자전분, 호박이나 당근(취향에 따라), 대파와 다진 마늘, 소금, 그리고 육수(처음 해보는 것이라 간단하게 멸치육수로), 베보자기와 강판 정도입니다.

쪼글쪼글해진 감자는 껍질을 벗기기도 강판에 갈기도 좀 힘이 들죠. 버리는 것도 많아지고.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두면 탱탱해져 손질하기 쉽답니다. 싹은 물론 설 연휴 끝에 정리하며 싹을 잘라낸 부분도 도려냈습니다. 껍질 벗겨 물에 담그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아시죠?

손질한 감자를 강판에 갈아줍니다. 그런 후 베보자기에 짜는데, 만져보아 수분이 느껴지지 않고 포슬포슬한 상태, 뭉칠 수 있을 정도까지 짜주면 됩니다. 이때 나오는 물은 버리지 말고, 물을 조금 더 부어 30분 정도 그대로 두면 흰색의 앙금이 그릇 바닥에 생긴답니다. 이것을 말린 것이 전분인데요. 버리지 말고 짜서 나온 건더기에 넣고 반죽하면 된답니다.

반죽에 물은 전혀 넣지 마세요. 손에 달라붙거나 수분이 좀 느껴진다 싶으면 감자전분을 조금 넣으면 됩니다. 표고버섯가루도 넣어 반죽하면 감칠맛이 나서 좋은데, 버섯의 향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조금만~! 너무 많이 넣으면 감자의 식감이 줄어요.

반죽은 치댈수록 쫄깃해진다는 것, 알죠? 감자전분을 섞었기 때문인지 조금 치댔는데도 아주 많이 쫄깃하더군요. 치댄 후 메추리알보다 조금 작게(취향에 따라) 경단을 만들면 됩니다.

나머지는 수제비나 떡국 끓일 때와 같아요. 미리 준비한 육수가 팔팔 끓으면 빚어 놓은 경단과 (취향에 따라 준비한) 당근 채 썬 것, 호박, 마늘 다진 것, 파를 넣고 한소끔 끓이면 된답니다. 육수가 끓을 때 미리 간을 했더니 편하고 좋더라고요.

경단을 넣은 후 풀어지면 어쩌나? 눌러 붙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습니다. 경단색이 조금 투명해질 때 냄비 바닥을 볶음할 때 쓰는 나무 수저로 살짝 긁어줬죠. 경단을 뜨는 듯. 여하간 하나도 터지지도, 눌러 붙지도 않았답니다. 모양도 동글동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들깨가루를 풀어 들깨탕처럼 끓인 감자옹심이. 들깨가루와 마늘, 약간의 소금간만으로 해봤는데 개인적으로 더 좋네요. 들깨와 감자의 궁합도 좋다고 하네요.
 들깨가루를 풀어 들깨탕처럼 끓인 감자옹심이. 들깨가루와 마늘, 약간의 소금간만으로 해봤는데 개인적으로 더 좋네요. 들깨와 감자의 궁합도 좋다고 하네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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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강판에 갈지 말고 믹서기로 갈면 훨씬 쉽게 자주 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감자옹심이, 두가지 쫄깃함이 느껴집니다. 남편은 감자를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인데, 맛있다는 말이 진심이었나 봅니다.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감자전을 부칠 때도 믹서기에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감자옹심이 꽤나 먹고 자랐다는 사람이 말하더라고요. "믹서기로 갈면 강판에 갈았을 때의 식감을 느낄 수 없다"고.

남편이 맛있게 먹어서 친구에게 자랑했더니 레시피를 알려달라고요. 그래서 알려줬더니 "번거로울 것 같다"며 정색하더군요.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답니다. 밀가루 대신 강판에 갈아 베로 짠 감자건더기로 반죽을 해 수제비 끓이듯 하면 된다고 생각, 일단 한번 해보시기를요.

여하간 이젠 싹튼 감자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 좋네요. 물론 싹튼 감자만이 아닌 모든 감자로 해먹을 수 있는 감자옹심이이지만. 아니, 이젠 싹이 나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감자가 남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있는 들깨가루 등에 굴려봤습니다.
 집에 있는 들깨가루 등에 굴려봤습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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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해서 뜨거운 여름날 해먹으면 더 좋겠단 생각도 들고, 새롭게 알게 된 감자 음식이니 한동안 많이 해먹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남편도 감탄까지 할 정도로 좋아하니 말이죠. 싹이 난 감자는 손질하며 버리는 것이 많아 늘 아쉬웠던 터라 감자옹심이 만들기가 정말 좋네요.

감자옹심이를 처음 맛본 것은 몇 년 전, 도움을 준 것에 고맙다며 대접받는 것으로였습니다. 감자옹심이를 하는 음식점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집에서, 누구나 쉽게 해먹을 수 없는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으로만 생각해왔답니다.

이런 음식을 아무 때나 해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누군가에게 손수 만들어 대접할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네요. 어른들께 해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친정아버지는 강판에 갈아 부친 감자전을 참 좋아하는데요.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아, 해드릴 수 있어서 설레기도 합니다.

들깨탕처럼도 끓여봤는데, 개인적으로 더 맛있네요. 감자옹심이를 먹으며 생각해 본건데, 끓는 물에 데쳐서, 미리 준비한 고물에 굴려 어린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간식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감자떡처럼 소를 넣거나, 궁합이 맞는 식재료 가루를 반죽에 섞어 빚어 찌면 나름 별미가 될 것도 같고요. 참, 김치수제비처럼 김치와 함께 끓여먹어도 좋을 것 같지 않나요?


태그:#감자옹심이, #들깨감자옹심이, #묵은감자(싹튼감자), #감자떡(수제비), #별미음식(한끼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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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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