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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문외한이긴 하지만, 한때 난 미술관 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누구는 미술작품 감상을 두고 '영혼을 다듬는 일'이라며 상찬했다지만, 감각도 없고 교양도 모자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체력과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낯선 작품을 이해해본답시고 외국어로 된 해설을 읽거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즐거움이기는커녕 차라리 고역이다.

미술관의 규모가 크건 작건, 또 유명한 작품이 소장돼 있건 말건, 관람 시간이 대체로 비슷했던 이유다. 일단 지루하고 피곤하면 그걸로 관람은 끝이었다. 도중 휴게실에 자판기라도 보이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캔 음료를 홀짝거리며 전시실마다 왜 의자가 마련돼 있지 않을까 투덜거리곤 했다.

그럼에도 '교양인'인 척이라도 하려면 미술관 가는 걸 포기할 순 없었다. 해외여행 중 어느 도시를 찾든 맨 먼저 가는 곳도 좋든 싫든 미술관이었다. 대개 고풍스러운 유럽의 미술관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증명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선지 지나고 보면 사진은 남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뭘 보고 느꼈는지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오후 무료입장 시간이 되면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 프라도 미술관 입구의 모습 오후 무료입장 시간이 되면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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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 또 다시 오나 싶어 그저 관행처럼 오간 미술관이 시나브로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관에 대한 무지와 오랜 편견을 깨준 건 벽에 걸린 작품이 아닌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작품이 주는 감동보다 그것 앞에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이 내겐 미술관의 진짜 볼거리였다.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 중 불과 몇 점의 대표작 앞에서 안내원의 짧은 설명을 듣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단체 관광객들과는 달리,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리고' 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백발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기껏해야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미술관이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 번은 그들을 미행하듯 따라다닌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낯선 장면 하나. 그들은 작품을 절대 눈으로만 감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손이든, 주머니든, 가방 안이든, 미술관과 관련된 안내 책자를 펼쳐가며 본다는 것. 규모가 큰 미술관의 경우, 전시된 작품에 대해 해설해 놓은 소책자를 따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람객들은 대개 입장권과 함께 구매한다.

영어나 현지의 언어에 익숙지 않아 오디오 가이드가 별무소용인 경우에는 안내 책자가 더욱 요긴하다. 설령 오디오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해도, 설명이 특정한 몇몇 작품에 한정돼 있는데다 지나치게 소략하여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말을 지원하는 오디오 가이드는 드물 뿐만 아니라 어설픈 구글 번역기 수준인 곳이 많다.

미술관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미술관 내부 미술관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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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그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느 미술관을 가든 관련 책은 반드시 챙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이 오래가지도 않을뿐더러 그 희미한 기억조차도 작품 앞에 서면 하얗게 지워지는 게 다반사다. 고작 책에 소개됐던 작품이라는 것 정도만 떠올릴 뿐이다. 무게가 만만치 않지만, 배낭을 꾸릴 때에 옷을 한두 벌 덜 챙길지언정 책을 포기할 순 없는 이유다.

일단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본 뒤, 그 자리에서 책을 펴고 관련 설명을 찬찬히 읽는 것이다. 그런 후 고개 들어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걸 경험하게 된다. 몰랐던 걸 순간 알게 됐다는 희열감은 아팠던 다리조차 날아갈 듯 가볍게 만든다. 매 작품마다 그런 '선물'을 안겨준다고 보면, 미술관은 말 그대로 보물창고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느 미술관, 어느 작품이든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여행의 절반은 준비하는 과정이고, 특히 미술관을 방문하는 여정이라면 관련 책 한두 권쯤 사서 읽는 건 기본이다. 미술관에 가면 전시실보다 휴게실을 먼저 찾던 나를 변화시킨 건, 결국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함께 읽던 책이었던 셈이다.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관람 방식은 다양했다. 한 청년이 의자에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다.
▲ 그림을 모사하는 청년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관람 방식은 다양했다. 한 청년이 의자에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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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일주일이나 머문 것은 순전히 미술관 때문이었다. 잠시 인근 톨레도와 세고비아를 다녀온 걸 제외하면, 내내 미술관 안에서만 지냈다. 마치 직원인 양 아침에 출근해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오후 폐관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식이었다. 하루에 한 곳만 둘러보는 것도 빠듯했으니, 마드리드는 일주일로도 어림없는 곳이었다.

발에 치이는 것이 미술관이라더니, 과연 마드리드는 미술관의 도시였다. 다양한 주제의 소규모 지역 미술관까지 보태면 그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많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 등 세계의 내로라는 명소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이웃해 있어,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부담 없이 관람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들을 불과 며칠 동안 모두 섭렵하겠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욕심이었다. 계획이야 오전, 오후 대 시간별로 나누어 치밀하게 짰지만, 미술관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금세 깨닫게 된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면, 몇날 며칠로도 부족한 곳이 유럽의 미술관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러시아의 에르미타주와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마냥 시간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이방인 여행자 입장에서 쓸 수 있는 최대치이기도 했다. 관람동선을 따라 보고, 읽고, 걸으며 바삐 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두툼한 책 한 권을 다 읽어야 비로소 미술관 관람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해결했다. 메뉴라 해봐야 기껏 샌드위치나 크루아상에 커피와 주스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미술관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저녁 때 그곳에서 두 번 마주친 건 종업원만은 아니었다. 손님들도 하나같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점심 때 봤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데면데면해 하는 내게 그들은 미소를 건넸다.

미술관으로 견학을 온 아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교실이 된 미술관 미술관으로 견학을 온 아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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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지친 일부 단체 관광객을 제외하면,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도 진지하다. 우리가 미술 교과서에서 이름이나 잠깐 접하고 마는 화가들을 그들은 마치 친구나 이웃처럼 대하듯 불렀다. 아이들 입에서조차 벨라스케스와 고야, 엘 그레코 등의 이름이 스스럼없이 불려지고, 어느 전시실에서든 작품을 두고 토론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케치북을 들고 와 작품 앞에서 따라 그리는 청년, 기껏해야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작품 앞에 철퍼덕 앉혀놓고 미술 수업을 하는 교사, 나란히 걸린 같은 화가의 두 작품을 비교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백발의 노부부, 그리고 아예 전시실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베끼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까지, 수백 년 된 미술관은 지금도 그렇게 살아있었다.

미술관 관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타고난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들의 미술관 사랑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육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부단히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온 아이들이 커서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미술관을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한 아이가 전시실에 엎드려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다. 관람객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 '놀이방'이 된 전시실 한 아이가 전시실에 엎드려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다. 관람객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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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다. 어느 미술관이든 무료입장 시간이 운영된다는 점이다. 대개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폐관 2시간 전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호주머니가 가벼운 이방인 여행자들과 가난한 지역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도 한다. 웬만한 성당조차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스페인에서 미술관은 다른 관광지에 견줘 입장료가 비싼 편에 속한다.

무료입장 시간의 운영은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는 관광 상품인 미술관을 적어도 공공재로 보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심미안을 길러주고,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내로라는 그 어떤 걸작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구석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미술관에 가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우리 아이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소풍이나 체험학습 장소를 고르라면 미술관은 등산과 더불어 맨 뒤에 자리하기 일쑤다. 요즘 들어 그러한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영상물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첨단 4D 환경은커녕 변변한 컴퓨터 한 대 마련돼 있지 않아도 아이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스페인의 미술관을 보며, 결국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누구 말마따나, 박물관이고 미술관이고 모두 '전자오락실'이 돼가는 현실에서 프라도 미술관의 '낡은' 풍경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태그:#스페인, #미술관, #프라도미술관, #소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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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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