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연구가들이 언급했던 영화적 저항 운동 중 주목할 만한 활동에 뭐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봉기했던 카프(KAPF: Korean Artists Proletariat Federation;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 영화 운동 그리고 지금 이 지면에서 다룰 1970년대 유신 정치 시절에 활동했던 '영상시대' 를 꼽을 수 있다.

영상시대(1975)는 5명, 당시 최고의 흥행 감독 4명과(이장호, 김호선, 홍파, 하길종, 이원세→홍의봉)과 1명의 영화 평론가(변인식)로 이루어진 영화 운동 집단이다. 정권에 반대하거나 정치, 사회 색이 짙은 영화의 규제를 강화했던 '유신 영화법'(정식 법령이 아니고, 유신 기간에 이루어졌다 하여 불렸던 이름)으로 고통받고 있던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회복시켜 지켜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박정희, 영화를 정권에 악용하다


박정희 정권은 영화를 정권 수호의 기제로 이용했다. 1973년 유신 헌법과 함께 제4차 영화법 개정을 실행했는데, 이는 제3차 개정 시 완화했던 조항들을 복귀시키고 영화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영화학자 안재석은 이 영화개정법이 "영화에 대한 정부의 보호 육성을 가장한 '정책적 통제의 수단'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상, 영화들을 이중 검열하고 국책영화를 의무적으로 생산하게 하는 등의 정책은 텔레비전의 증가로 하락하고 있던 한국영화시장을 더욱 궁지로 내몰았다. 이러한 정치적, 산업적인 상황들로 인해, 1970년대 들어 한국 영화는 급격한 쇠퇴에 이르고, 소위 말하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에 이르게 된다.

영화제작의 편수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만들어진 영화들의 질이 낮다 하여 일컫게 된, '한국영화의 암흑기'라는 표현은 많은 영화학자 혹은 역사가들이 바라보는 1970년대 영화계에 대한 전반적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낙인으로 인해 1970년대 한국 영화사나 영화들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영상시대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도 동 주제의 선행 연구의 부재의 이유가 적지 않다. 1970년대는 제작 편수나 시장 규모 면에서는 한국영화의 불황기였던 것이 맞다. 하지만 '질 낮은 영화들'이 판을 쳤던 '암흑기'라고 보는 것은 1970년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1980년대 한국영화의 결정적인 양분이 되는 청년 영화들, 그리고 이들의 영화사적인 활동들을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 주장이다.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하여, 1975년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1976년 김호선의 <여자들만 사는 거리> 와 1977년 <겨울여자> 등의 연이은 흥행은 1970년대에 이르러, 1960년대 신상옥, 이만희 세대의 소위 말하는 '거장' 감독들로부터 완전한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들 흥행 감독들은 자신들의 작품에만 몰두하는 것에서 탈피해 영화 공동체를 만들어 기존의 한국영화의 '질적인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그들은 1975년 7월 18일 발족식을 하고 '한국 영화의 예술화 캠페인'이라는 아젠다 아래, 그 포문을 열었다. (안재석 <영상시대 연구> 참고)

그들은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총 4개의 계간지를 발행하고, 지면을 통해 한국으로 수입되지 못한 예술 영화를 소개하거나 신인 영화감독 오디션을 주최하는 등의 괄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 연출가 오디션에서 장길수(<은마는 오지 않는다>)나 신승수(<장사의 꿈>)같은, 후에 한국 영화사의 굵직한 인재가 될 신인 감독들이 발굴되었다.

따라서, 3년여간의 길지 않은 그들의 행보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음에도 의미 있는 영화사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사실상 영화 운동 자체가 전체적인 한국영화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과 미학적인 기준은 영화 운동을 통해 전파되었다. 사실상 이 시기의 그들의 영화들에서 그러한 시도들의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이장호 감독은 1980년대에 넘어서도 많은 흥행작을 남기고 그의 영화들이 많은 영화 후배 감독들에 의해 회자하고 참고 되었다.


"'비키니 섬의 거북이'처럼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나 방향 상실로 허덕여온 한국영화… 우리는 아직껏 이 땅에 영화는 있었어도 영화예술은 부재했음을 알고 있다… '새 세대가 만든 새 영화', 이것은 구각을 깨는 신선한 바람, 즉 회칠한 무덤 같은 권위주의를 향한 예리한 투창이어야 한다. 과연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누벨바그'나 '뉴 시네마'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던가?" - 영상시대의 선언문 중에서

일단 영상시대의 선언문을 보면 그들이 외국의 영화 운동들, 예를 들어 프렌치 뉴웨이브나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같은 동시대의 새로운 영화적 시도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들은 이러한 시도들로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한국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되, 그것은 '권위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예리한' 영화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 아래 사회이슈나 정치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다뤄서는 안 되었던 검열에 대항해, 그런데도 관객이 공감하는 현실을 관통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의지로 해석이 된다.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가치


영상시대의 동인들이 만들었던, 종종 '호스티스 물'로 폄하되어왔던 영화들 역시 이러한 투창 같은 작품들로 해석 가능하다. 자칫 삼류영화로 오해할 수 있는, 창녀들을 주제로 한 호스티스 영화. 하지만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홍파 등은 노동자 계층의 여성이 산업화 시대에 감내해야 했던 성/노동 착취를 그려냈다. 당시 박정희 정권 영화 검열이 하층 계급의 영화 속에서의 재현에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호스티스 영화 같은 성인물의 '가면'이 없다면 검열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만든 호스티스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이 모두 현실적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하층민 중에서도 가장 아래 계급인, 시골 출신 창녀들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으로, 혹은 동시대 아픔을 재현하는 하나의 에이전트로 메이저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사람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이나 했을까.

내가 영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기고한 글이 호스티스 장르와 1970년대 정권에 관한 글이었던 듯하다. 이 영화들과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이유는, 이 영화들은 한 영화학자가 언급했던 "정치적인 암흑기의 사생아" 이상의 의미 있는 시도(신인 배우의 주인공 등용, 창녀의 주제화, 영화 음악의 전문화, 실험적인 미장센 등)로 한국 영화계는 고전 영화에서 현대영화로 결정적인 이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직도 포털 사이트 백과사전이나 그 외 많은 학술지에서 1970년대 한국영화사는 '암흑기'라는 통칭 아래, 연구 가치를 폄하할 가능성을 품은 채 존속 되어왔다. 이 지면으로 만나는 독자들이 1970년대 영화 운동에 참여했던 영상시대 동인들 그리고 동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의 중추적인 서사 아래 존재했던 영화들에 역사적인 비석을 헌정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