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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한 책이 연일 사림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통해 인물에 대해 깊은 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리더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시민기자로 가입하면 누구나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난 싸움과 대립의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내 위치와 이념을 단단히 만들어가고, 정치를 동경했다. 모순적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정치는 나에게 '밉지만 싫어할 수 없는(좋은) 것'이었다. 난 정치가 좋았지만, 정치인은 싫었다.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든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욕심 많은 기회주의자로 보였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 유시민이었다. 그의 신념과 옳음이 부러웠다. 단단한 가치관과 철학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좋았다. 과거의 싸움닭 유시민도 좋고, 인상이 한결 편해진 입정치가 유시민도 좋다. 작가 유시민도 좋아하기에 그의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다. 정치인을 처음 좋아해 봤고, 어느덧 사람 유시민을 깊이 좋아하며 존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유시민이 좋아서 정치와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깊게 알려고 노력했다.

안희정의 책 얘기를 하는데 웬 유시민이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안희정은 내게 유시민 다음이었다.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해 본 정치인이 안희정이라는 말이다. 유시민에게 날카로움과 신념이 있다면, 안희정에겐 솔직함과 책임이 있었다. 유시민이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면, 안희정은 누구라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희정은 정치라는 진흙탕 속에서 내가 찾아낸 두 번째 진주였다. 안희정을 좋아하면서 유시민을 좋아하기 시작할 때와 같은 순서를 밟았다. 그의 인터뷰와 연설 영상을 찾아보고, 그의 생애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의 책도 샀다. 유시민을 좋아할 때처럼(다른 유시민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좀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이번 대선에서 안희정을 지지한다. 왜 안희정이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고, 안희정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사회와 정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다. 난 그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본다. 하지만 난 선거권도, 정치권도 없는 만 17세 청소년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도 난 정치적 행동과 글로서 선거권이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으니 정치권을 가진 것과 다름없다고 믿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나의 부모부터, 어디선가 내 글을 읽을 이름도 모르는 유권자까지 말이다. 사족이 길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안희정이 좋다는 말과 이 글이 '청소년 안희정 지지자'의 정치적 행동이라는 말이다. 이제 책 속의 안희정을 만나보자!

책 속의 안희정

<안희정의 함께, 혁명>의 표지이다.
▲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의 함께, 혁명>의 표지이다.
ⓒ 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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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이 나라를 발전시키겠다.'가 아니라 '세상의 많은 전문가들, 지도자들과 소통하고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서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라고 다짐한다.(p114)

국민은 대통령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 그에 따라 대통령 후보들은 이룰 수 없는 공약들을 들고나온다. 개발도상국 시기에나 가능한 수준의 경제성장률부터 '증세 없는 복지', 그리고 '창조 경제'까지... 당선을 위해 들고 나오는 많은 공약들이 터무니없다.

자신의 공약 중 반절만 넘게 이행하면 꽤 잘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재명의 (자기 말로) 공약 이행률 96%가 시민들에게 먹혀들어간다. 공약을 지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뭔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이유가 있다.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제가 되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고, 단 51%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억지 공약들을 양산한다. 그렇게 자리에 오른 머슴들은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되려 주인인 국민을 억압한다. 안희정은 이를 '머슴에게 두들겨 맞아 왔다'고 표현한다.

안희정은 여기에 의문을 품고 반박한다. 민주주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양산'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시장질서 내에서 개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기회와 희망을 보여주고, 정당한 노동과 노력이 기만당하지 않도록 공정한 거래질서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p226)이라고 한다.

노무현의 7% 경제성장률 약속과 이명박의 747 공약(경제성장률 7%, 1인당 GDP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현명한 농부는 적절히 피 뽑아주고 적절히 물 주는 일을 하는 것이지, 몇 월까지 꽃을 피우게 하겠다고 목표를 내걸지 않는다"(p224)며 비판한다.

그는 훌륭한 책임정치인이다. 내가 안희정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한다. 아쉽더라도 솔직히 말한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이 51%(유권자의 절반 이상)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협치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난 그의 최대 장점을 그가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찾는다. 그의 민주주의관은 내가 그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액체금속 터미네이터가 용광로에 들어가 마지막을 고하는 장면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액체금속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다 녹아버린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용광로에 있는 쇳물 덩어리가 휴머니즘이고, 거기에서 다채롭게 나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이기도 하고, 동학운동이기도 하고, 황건적의 난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라고.'(p40)

내가 그를 지지하는 두 번째 이유는 휴머니즘이다. 그의 경제 정책은 꽤 자유주의적이다. 그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하지만, 자유 시장 질서를 중시하느냐,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중시하느냐를 두고 좌파와 우파를 논한다면 그의 시각은 진보라기엔 우파적이다.

내 시각과도 꽤 많은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내가 '인권 친화적'이라는 부분에서 그와 생각을 함께 한다. 그는 시장 질서를 중시하면서도 "뙤약볕 밑에서 몸을 움직여 집을 짓는 이의 노동이 사무실에서 문서를 만들고 토론하는 사람의 노동보다 평가 절하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구조적 편견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색채를 '휴머니즘'에서 찾는다. 결국에 진보가 가야 할 종착역은 '휴머니즘'이라고 믿는다. 난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안희정이 대통령이 된다면 약자가 억울한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소수자가 더 존중받는 세상이 오리라 믿는다. 내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진보 정치인' 안희정을 지지하는 이유다.

책 밖의 내가 책 속의 안희정을 만나고

뭐랄까, 나와 굉장히 마음이 잘 맞는 아저씨가 책 속에서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난 거기에 계속해서 맞장구를 쳤다. 내 생각을 더 단단하고 구체적인 글로 풀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도 있었다.

내 생각이랑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안희정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자 안희정은 자기 생각이 다 맞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며,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할 사람이라 나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우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글을 참 잘 쓴다. 시적이기도 하다. 꽤 오래 글을 쓴 게 보인다. 평소에 쓰고 기록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은 이런 글을 못 쓴다. 말과 글이 다른 맛이 있는 사람이다. 원론적인 '민주주의'만 반복하는 '진지충', '민주주의충'이라며 안희정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글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말보다 더 깊은 성찰과 생각, 그리고 그의 민주주의가 허울뿐인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말과 글이 어렵다는 사람도 많다. 번역투와 멋내기용 문장 표현이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의 나라 사랑과 깊은 고민이 담담하게 전해진다. 꽤 멋스럽게 보이기마저 한다.

아는 분이 그랬다. 안희정이 대통령이 되면 훌륭한 보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자에 가깝기에 '보수'라는 말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의 인권 친화적인 모습과 신좌파적 기질을 더 봐줬으면 좋겠다. 그의 휴머니즘에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난 그런 훌륭한 '경제적 보수' 대통령이라면 환영하고 지지한다.

글로 안희정을 만나고 나니 이런 대통령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이 그려진다. 설레고 기다려진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을 안희정'과' 함께, 혁명으로 읽고 싶다.

[덧붙이는 책 속의 말들]

(p7)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만들어진 철학이자 제도다.
☞ 그는 자신의 정책과 생각이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배제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안다.

(p75) 뒤엎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혁명에 뛰어든 20세기 대한민국의 나는 파괴력만을 위한 극한 자기투쟁과 헌신을 요구했다. 그래서 대안을 고민하기보다 투쟁을 위한 투쟁에 집착하지 않았던가.
☞ 그는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의 역할과 가능성을 되새긴다.

(p86) 여전히 정파적 고려에 따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주장과 억지가 눈 앞에서 펼쳐지기도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내포한 시끄러움이다.
☞ 그가 충남에서 1대 3의 여소야대 도정을 경험하며 느낀 점이다. 그의 포용력과 관용력이 느껴진다.

(p133)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나의 논리가 정의'라는 폭력적 태도가 내게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p152) 당시만 해도 나는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우리 시골에선 "애들을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면 안 된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자랐다. 더군다나 사내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나는 아이들이 버릇없게 군다 싶으면 손을 대기도 했다.

(p155) 방황이나 고통은 함께해주되 저항을 허락해주는 아버지가 되고자 했다.
☞ 안희정은 자식에게 폭력만은 쓰지 말라고 가르쳤다는데(많이 공감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자식에게 손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었다. 크게 실망했다. 그는 그런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지만, 꽤 당당하게 고백했다. (대선주자로서 내놓는 책에 가정폭력이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인가.) 아버지가 자식에게 손을 대는 것이 그닥 부끄러운 일이 아닌 그와 우리 사회가 미웠다. 저항을 '허락'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잘못되었다. 저항은 인간의 특성과 권리로, 아버지라는 사람이 허락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다.

(p228) 사실 나는 고용과 해고, 투자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평생직장과 유동적이지 않고 융통성 없는 고용과 해고에 반대하는 그의 뜻은 이해한다. 책 속에서 노동이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생활 기반이 약해지거나 파괴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품는 걸 보아, 사용자 입장에서만 노동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대목이었다.

(p259) 마지막 페이지(색지)에는 그의 시가 실렸다.
허름한 어선 한 척이 물 위를 가로질러 간다.
뱃머리가 수면을 가르고
갈라놓은 그 길 위로 배의 몸체와 뒤꽁무니가 빠져나가며 물결이 파도쳤다.
한참을 지나 물결치는 파동이 수면 위에 번지고 번져
마침내 내가 있는 호숫가 기슭에 도달했다.
찰랑거리는 그 물결소리에서
좀 전에 지나간 뱃전의 억센 물갈퀴질이 전해졌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와 같다.
모두 한 그릇에 담겨 있다.
그 속에서 눈물과 웃음이 파동과 입자가 되어
끊임없이 물결치고 요동친다.
그 격랑을 평화로운 질서로 자리 잡게 하는 일
다시 민주주의다.
(2014. 9. 13)

덧붙이는 글 | 안희정의 함께, 혁명 / 안희정 / 웅진지식하우스
기자의 블로그 (http://youthr.tistory.com) 에도 올라가는 글입니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6)


태그:#안희정, #안희정의 함께, 혁명,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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