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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복지재단의 함창환 팀장.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은 나랏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서 복 받았다고 했다.
 전남복지재단의 함창환 팀장.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은 나랏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서 복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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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죠.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정책도 중요하지만 복지의 대전제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겁니다."

'진정한 복지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음에 대한 함창환(51·전남복지재단 경영지원팀장) 씨의 말이다. 그는 오래 전 면사무소에서 근무할 때 추진했던 외딴 섬 주민 이주사업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사업을 마무리한 뒤에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사는 모자세대였는데, 답답해서 못 살겠다 하시더라고요. 전기가 들어오고, 냉장고와 전기밥솥도 쓰게 됐는데요. 섬에서는 모든 걸 어르신 마음대로 하셨는데, 이사 나오니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였습니다. 다시 섬으로 들어가서 살면 안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함창환 팀장의 손. 오른손 마비 증상으로 3년 동안 시련을 겪었는데, 오히려 장애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함창환 팀장의 손. 오른손 마비 증상으로 3년 동안 시련을 겪었는데, 오히려 장애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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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외딴 섬의 집을 철거해 버린 뒤여서 갈 곳도 없었다.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려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을이장과 부녀회장한테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술에 의지해 살던 아들에 이어, 어머니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었죠. 제가 편하게 누리는 문명이 다른 사람한테도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밀림에 살던 타잔을 도심의 아파트로 이주시켜 살게 한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일지라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함 씨는 그때부터 처지를 바꿔서,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평소 민원인을 만날 때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듣는다고.

함창환 팀장이 펴낸 책 《사회복지 공무원이라서 행복합니다》.‘고군분투 사회복지 공무원 성장기’라는 부제를 단 책은 함 씨가 26년 동안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애환을 담고 있다.
 함창환 팀장이 펴낸 책 《사회복지 공무원이라서 행복합니다》.‘고군분투 사회복지 공무원 성장기’라는 부제를 단 책은 함 씨가 26년 동안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애환을 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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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함 씨가 최근 <사회복지 공무원이라서 행복합니다>는 책을 펴냈다. '고군분투 사회복지 공무원 성장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는 함씨가 26년 동안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애환이 담겨 있다.

별다른 기교나 가식 없이 꾸미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이 소탈하게 썼다. 그동안 한 일을 뽐내기보다는 시련을 이겨낸 과정과 경험을 통한 뉘우침이 짙게 배어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나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실수를 미리 막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책은 ▲내 고향 섬마을에 돌아오다 ▲배움은 나의 밑천 ▲관심과 사랑이 복지다 ▲생각지 못한 일도 공무원은 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에서 일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정복지도 나의 책임 등 6개 주제로 나눠져 있다. 분량은 모두 244쪽에 이른다.

1991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처음 발령받아 근무했던 신안 임자도 시절 이야기가 많다. 섬마을의 말단 공무원으로 주민과 호흡하며 좌충우돌했던 이야기가 흥미롭다. 본연의 복지업무 외에 경리, 선거, 환경 등 다른 일이 맡겨지더라도 불평하기보다 일을 배우는 기회로 삼은 과정도 담겨있다. 해마다 한두 차례 바닷가로 밀려와 골머리를 썩였던 변사체 처리 경험도 털어놨다.

함창환 팀장이 전남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업무 관련 협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2일 일요일이다.
 함창환 팀장이 전남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업무 관련 협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2일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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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분들이 많잖아요. 한 푼 두 푼 모은 호주머니를 털고, 평생 모은 돈을 쏟아 붓기도 하고요. 저는 나랏돈으로 많은 분들을, 그것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잖아요. 왜 행복하지 않겠어요? 저의 복이죠. 과분할 정도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함씨가 사회복지 공무원을 택한 이유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임용받기 직전이었다. '사회복지 공무원' 1세대인 셈이다. 함씨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사무소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복지업무와 행정을 익혔다. 이후 신안군청에서 3년 근무하고 지난 2003년 전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도 공부했다.

전남복지재단이 입주해 있는 전라남도사회복지회관.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에 있다.
 전남복지재단이 입주해 있는 전라남도사회복지회관.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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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마비 증상으로 시련을 겪은 것도 전화위복이 됐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고 3년 만에 회복됐다. 지금은 조금 불편할 정도. 일상에 큰 지장은 없다. 장애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였다.

"사회복지 초창기가 더 나았어요. 대상자를 전산관리하고 지원금을 입금하는 지금하고 비교할 때요. 그때는 쌀 포대를 짊어지고 상대를 찾아갔거든요. 얼굴을 직접 보고, 안부도 묻고, 건강도 살피고요. 제 공무원 생활 보람의 8할을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할 때 얻은 것 같습니다."

함씨의 회고다. 그는 지금도 동료나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공무원은 관리자가 아닌, 주민의 심부름꾼이고 대변자가 돼야 한다고. 사회복지 공무원은 더더욱 발로 뛰고,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동안 제가 해온 일이 최선이었고, 완벽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족한 일도 있었지만, 의도와 다른 결과로 마음 아픈 일도 있었으니까요. 다만 주민을 위한 진정성을 갖고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진정으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일도 그렇게 할 것이고요."

환하게 웃는 함씨의 얼굴에 자신감과 함께 자긍심이 배어난다.

전남복지재단을 나서는 함창환 팀장. 지난 2월 12일 일요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들를 곳이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남복지재단을 나서는 함창환 팀장. 지난 2월 12일 일요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들를 곳이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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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함창환, #전남복지재단, #사회복지공무원, #사회복지 공무원이라서 행복합니다,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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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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