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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寶印, 절 순례시 도장 받는 것)을 받거나 용무가 있으신 분들은 오른쪽 종루에 있는 종을 치신 뒤 납경소(納經所)로 오십시오."

2월 16일 오후 1시에 찾아간 효고현 간자키군에 자리한 곤고조지(金剛城寺, 금강성사) 일주문 입구에는 이러한 안내문이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인왕문을 들어서니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적막강산이었다.

구태여 종까지 칠 필요가 있나 싶어 살며시 경내로 들어가 종무소를 찾아도 눈에 안 띈다. 입간판에 적힌 납경소(納經所, 절 순례자들이 도장을 받는 곳)라도 찾아보려고 기웃거리다 보니 종루 뒤편 건물 안쪽에 납경소가 눈에 띄었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 ..."

몇 번을 부르고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3주 전 기자는 이곳 주지스님에게 한 통의 팩스를 보낸 적이 있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 절을 방문하고 싶으니 절에 내려오는 문헌 자료가 있으면 얻고 싶다는 짧은 내용의 팩스였다.

곤고조지 인왕문, 절로 들어가는 문이다.
▲ 인왕문 곤고조지 인왕문, 절로 들어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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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으로 우리의 대웅전에 해당
▲ 본당 본당으로 우리의 대웅전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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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문을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에 종루가 있는데 볼일이 있는 사람은 이 종을 치면 된다
▲ 종루 인왕문을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에 종루가 있는데 볼일이 있는 사람은 이 종을 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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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팩스를 보내고 며칠을 기다려도 답이 없어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때 주지스님은 "우리 절에 별로 자료가 없는데..."라면서 바튼 기침소리를 냈다. 목소리만으로도 몹시 건강이 안 좋은 듯했으나 일단 방문 날짜와 시간을 허락하여 이날 기자가 절을 찾아 간 것이었다.

납경소를 비롯하여 주지스님이 계실 만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여 다시 종루로 돌아와서 커다란 종을 뎅그렁 울려보았다. 종을 울리고 한참이 지나자 단정한 승려 복장을 갖춘 노스님이 납경소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인가?"라는 짧은 인사를 건넨 노스님은 기자를 납경소 안쪽의 응접실로 초대했다.

주지스님은 절의 유래가 적힌 두루마리를 조심스레 펴 보였다
▲ 두루마리 주지스님은 절의 유래가 적힌 두루마리를 조심스레 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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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속에 적힌 고구려 혜관스님 부분(고려는 고구려를 뜻함)
▲ 두루마리 2 두루마리 속에 적힌 고구려 혜관스님 부분(고려는 고구려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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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3년(1534)에 기록된 절의 유래가 적힌 두루마리
▲ 두루마리 3 천문3년(1534)에 기록된 절의 유래가 적힌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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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9살인 테라카와 슌테이(寺河俊禎) 주지스님은 건강이 약간 안 좋아 보였다. 그럼에도 기자를 응접실에 앉아 있으라 하고 작은 쟁반에 차를 타 내왔다. 그리고는 없다던 절의 자료를 주섬주섬 꺼내 보이셨다. 특히 두루마리에 절의 역사를 써 놓은 483여년 된 곤고조지연기(金剛城寺緣起)를 펴 보이며 고구려 혜관스님 이야기가 적혀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이 절은 스이코천황 5년 (推古天皇, 597),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이곳을 방문하여 나나쿠사산(七種山)에 올랐을 때 산의 영험을 느껴 국가안태(國家安泰)를 위한 기도처로 불사(佛寺)를 세우고자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이후 쇼토쿠태자의 유지를 받들어 고구려 혜관법사(慧灌法師)가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처음에 시게오카데라(滋岡寺)라고 이름 지었다. 혜관법사의 덕을 기리는 많은 이들이 재물을 보시하여 7당가람이 완성되었다."

주지스님이 보여준 두루마리로 된 곤고조지(金剛城寺) 유래는 <신서국순례안내(新西國巡禮案內), 48~49쪽>와, <하리마서국관음영장(播磨西國觀音靈場), 29~30쪽>에 기록되어 있었다.

주지스님은 이 두 책자뿐만 아니라 간자키군지(神崎郡誌, 神崎郡敎育會刊, 1942) 453쪽에 나오는 혜관스님 부분을 미리 복사를 해서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곤고조지를 혜관법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군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 되어 있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종무소 등이 들어 있는 건물이다.
▲ 종무소 앞에 보이는 건물은 종무소 등이 들어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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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경내는 연못 등이 있으며 규모가 크다
▲ 연못 절 경내는 연못 등이 있으며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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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혜관법사는 스스로 십일면관음상을 깎아 본존불로 삼고 천수 지장보살을 협시불로 모셔 가람을 완성하였으며 절 이름을 시게오카데라(滋岡寺)로 했다."

혜관스님이 처음에 지은 시게오카데라(滋岡寺)는 이후 홍법대사(弘法大師,774-835) 때 지금의 곤고조지(金剛城寺)로 바뀌었다. 당시 혜관스님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십일면관음상은 본존에 모셔져 있으며 공개하지 않는 비불(秘佛)이다.  주지스님께 진짜 혜관스님때 것이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전해져옵니다"라는 짧은 답만 들려주었다.

"우리 절은 창건 이래 여러 번의 화재를 만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명치정부의 불교탄압 정책으로 명치3년(1870)에는 절의 토지를 모두 몰수당하고 말았지요. 이후 명치 40년(1907)부터 소화30년(1975)에 이르는 약 70년간 꾸준한 불사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입니다. 이제 이 절은 둘째 아들이 이어갈 겁니다."

주지스님의 간략한 이야기 속에는 근세이후 일본 불교가 걸어 온 길이 압축되어 있었다. 메이지정부의 폐불훼석(廢佛毁釋)은 그야말로 광풍(狂風)이었다. 중국의 분서갱유와 다를 바 없는 대대적인 불교 탄압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절들이 산문(山門) 폐쇄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올해 89살인 테라카와 주지스님의 인자한 모습
▲ 테라카와 올해 89살인 테라카와 주지스님의 인자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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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공포된 태정관포고(일명 신불분리령'神仏分離令')는 천삼백 여 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불교문화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뿌리 뽑는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주석하고 있던 절에서 쫓겨난 승려들은 신사(神社)의 신직(神職)으로 전향해야 했고 인류문화유산에 빛나는 숱한 불상과 불구(佛具)는 상당수 훼손되고 말았다.

폐불훼석이 철저했던 사츠마번(薩摩藩)에서는 사원 1616개소가 절의 간판을 내려야 했고 환속한 승려만도 2966명에 달했다고 하니 곤고조지의 형편 또한 다를 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워낙 큰 규모의 절이었던 덕인지 지금의 규모 또한 적지 않아 보였다. 본당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도 넉넉한 토지 위에 세워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방에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하고 있어 무척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 곤고조지가 들어서 있는 나나구사산(七種山)은 효고8경(兵庫8景)에 속할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라 등산객들도 많다고 한다.

절 입구에 있는 절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
▲ 안내판 절 입구에 있는 절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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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혜관법사 창건이라고 쓰여있음(고려란 고구려를 뜻함)
▲ 혜관법사 고구려 혜관법사 창건이라고 쓰여있음(고려란 고구려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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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불편한 주지스님이 먼 곳에서 온 기자를 위해 여러 자료를 복사해 놓고 반듯한 복장을 갖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사모님(일본에서는 승려들이 결혼함) 이 외출중이라고 손수 찻물을 끓여 정성스런 차 대접을 해주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고구려 출신 혜관스님에 관한 일본쪽 기록은 다음과 같은 일본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의 최초승정이자 삼론종의 시조로 알려진 분이다.

『日本書紀』『元亨釋書』『本朝高僧傳』『續日本紀』,『日本三代實錄』,『日本紀略』,『類聚國史』,『三論師資傳』,『僧鋼補任(興福寺本)』,『僧鋼補任抄出』,『扶桑略記』,『日本高僧傳要文抄』,『東大寺具書』,『內典塵露章』,『三論祖師全集』,『東大寺續要錄』,『三會定日記』,『東大寺圓照行狀』,『東國高僧傳』,『淨土法門源流章』,『寧樂逸文』,『平安逸文』,『鎌倉逸文』,『大日本古典文書』,『大日本史料』,『淨土依憑經律論章疏目錄』,『三論宗章疏』,『東域傳燈目錄』,『諸宗章疏錄』, 『大正新修大藏經』,『日本大藏經』,『群書類從』,『續群書類從』,『續續群書類從』 등

모쪼록 고구려 혜관스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곤고조지(金剛城寺)를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산문을 나섰다.

* 진언종 곤고조지(金剛城寺) 찾아가는 길
주소: 兵庫県神崎郡福崎町田口236
전화: 0790-22-0014
히메이지역(姫路駅)에서 반탄선(播但線)을 타고 30분쯤 가서  후쿠사키역(福崎駅 )에 내려 택시로 5분 거리. 후쿠사키역에서 4킬로 거리에 절이 있지만 걷기에는 좀 멀고 택시 외에는 다른 교통 수단이 없다. 1400엔 정도이며 내릴 때 명함을 받아두었다가 절에서 전화를 하면 택시가 와준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곤고조지, #효고현, #테라카와 슌테이, #혜관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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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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